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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풀이/히스토리아 역사 스토리

중국사 이야기 24 - (제자백가 3) 법가사상

중국춘추전국시대의 사상 3. 법가사상

법가사상은 혼란했던 춘추전국시대를 실제 통일 할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작용하였던 사상으로, <부국강병>을 추구하는 군주들에게는 가장 필요했으며, 시급했던 사상입니다. 3번째로 법가사상을 한 번 볼까요?

1. 법가의 필요성

법가가 춘추전국시대에 각국에 반영된 것은 이 사상이 급변하는 철기시대 혼란상에 가장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사상이었기 때문입니다. 혼란기의 정신없었던 사회 분위기 속에서는 <도덕, 윤리, 자연, 철학>을 조근조근 설명하는 것보다 <죽을래? 법지킬래?> 한 마디가 더 확실하게 먹힐 수밖에 없으니까요.

법가는 강력한 법치주의를 지향함으로서 효율적으로 조세를 걷고, 부국강병을 이루며, 이에 따라 왕권을 강화시키는 것에 기여했습니다. 진 나라가 통일에 성공한 이유도 이 법가주의를 통한 변법으로 <중앙집권적인> 국가체제를 확립했기 때문이지요.

당시 춘추전국시대에는 수많은 소국들이 난립하였는데, 이들은 아직도 주나라 이래 씨족공동체적인 구습을 버리지 못하였습니다. 이러한 구습을 타파하고, 구 귀족을 숙청하면서 왕권을 강화하려면, 새로운 제도와 획기적인 사회변화가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유가는 너무나 이상적인 측면에만 치우쳐 있었죠. 숙청해야 할 구귀족세력에게 <시경>을 읽어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리고 유가는 부국강병에 전혀 도움이 안됩니다. 묵가는 너무 서민중심적인 집단이었고, 도가는 국가의 질서 자체를 별로 인정하지 않는 학단이었습니다.

따라서 전국시대 군주들은 법가사상을 배경으로 강력한 <변법>을 시행하였고, 상앙, 이회, 추기 등이 실시한 각 국가의 변법은 실제 부국강병에 많은 기여를 했습니다. 전국시대에는 거의 대부분의 나라가 변법을 시행하여, 법을 지키지 않는 구귀족을 숙청하고, 제민지배를 확립하여 백성들을 법의 이념으로 통치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2. 법가사상의 시도

법가사상이 국가사상으로 대두한 것은 춘추시대 최강국인 진나라를 배신하고 하극상을 일으킨 <한, 위, 조> 삼국이 서로 경쟁하면서 부터입니다. 이전 춘추시대 제나라에서도 관중 등이 법가주의적 개혁을 시도했지만, 그것은 일부 수준이었고, 실제 <한, 위, 조> 3국은 치열한 중원의 한 복판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법에 의한 중앙집권을 시도하려했습니다.

특히, 법가사상은 그 특성상 엄법주의를 추구하므로, 법가를 도입한다는 것은 법가와 조금이라도 뜻이 맞지 않는 다른 사상들은 모두 버리거나 제단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법가는 기존 사상, 특히 정치적 라이벌 사상인 유가사상을 그 근본적 윈리인 <가족윤리>부터 비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상앙이 변법을 실시할 때, 분가정책으로 형제간, 심지어는 부자간에도 같은 집에 살수 없다라고 제도화한 것은 이러한 상황을 가장 극명하게 반영합니다.

3. 법가의 사상 체계

법가사상은 세치, 술치, 법치의 3단쳬계를 한비자가 정립하면서 사상적 이론이 완성됩니다.

일단, <세치>란 하늘의 다스림(천치)와도 통하는 말로, 신도가 주장하였습니다. 이것은 군주의 통치는 하늘에서 부여받은 위세를 바탕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즉, 군주는 신성하고 위대한 자로서, 감히 신하가 넘볼 수 없는 권력을 가졌다는 것을 정당화하는 이론입니다. 따라서 신하가 군주에게 복종하는 것은 유가에서 말하는 <덕>이나, 묵가가 말하는 <선양>의 개념이 아니라 그 <위세와 세력>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이 세치의 개념은 곧 <군주권의 신성화>라는 맥락에 닿아있습니다.

<술치>는 군주가 위세를 가지고 세치를 완성할 때 필요한 방법으로 신하를 다스리는 <기술>을 말합니다. 국왕은 강력한 권한을 과시하기 위해서 신하들을 벌벌 떨게 만들고, 강력한 카리스마로 관료들을 장악해야 하는데,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권모술수>를 적용해서라도 신하들을 휘어잡아야 합니다. 또 <관료제>를 정비하여, 국왕 밑에 관료들을 귀속시키고, 충신과 간신을 구별하는 능력을 갖춤으로서 신하들이 국왕을 두렵게 만드는 기술입니다. 즉 술치는 국왕이 신성하다는 <세치>를 이루기 위한 <기술>입니다. 술치를 강조한 사람은 신불해입니다.

<법치>는 군주가 부국강병을 이루기 위한 근본으로, 법에 의한 통치를 말합니다. 누구든 신분과 지위를 막론하고 법을 기본으로 상과 벌을 내리면, 국가는 자연스럽게 기틀이 잡히고 부국강병을 이룬다는 논리입니다. 변법을 추구하는 변법주의자들이 법치를 강조했으며, 대표적으로 상앙, 이사, 이회, 추기, 한비자 등이 주장하였습니다.

이러한 법치, 술치, 세치를 종합하여 법가주의를 완성한 사람이 <한비자> 입니다. 그는 <순자>의 제자이자, 이사와 동문으로 <성악설>에 기반하여 법치주의를 완성하였습니다. 그는 인간의 악함을 말하며, 엄형주의와 신상필벌을 강력히 주장하였습니다. 그는 술치, 세치는 사실 <법치>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 <법치>를 완성할 때, 군주의 술치, 세치는 자동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하였습니다.

따라서 강한 법치를 추구함으로서 백성, 관리, 국정을 모두 총괄할 수 있는데, 이중 관리를 통제하는 것에는 <술치>가 뒷받침되고, 국정을 운영하는 데에는 국왕의 위세(세치)가 이용된다고 말합니다. 실제 춘추전국을 통일한 진에서는 남방 초나라 출신인 한비자를 초빙하여 <법치>를 배우려고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한비자는 동문인 <이사>의 질투로 인해 진에서 쓸쓸히 죽게 되죠.

다음 장에서는 나머지 제자 백가 사상을 다뤄 보겠습니다.

이 글에 대한 참고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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