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왕
신문왕 즉위년 8월 16일에 왕은 교서를 내리어 가로되, ‘공이 있는 자에게 상을 주는 것은 옛 성인에 좋은 규정이요, 죄 있는 자에게 벌을 주는 것은 선왕의 아름다운 법이다. 과인이 조그만 몸과 적은 덕을 가지고 큰 기업을 승수하여, 식사도 폐하면서 또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자면서 신하와 더불어 국가를 편안케 하려 노력하는데, 상중에 난이 서울에서 일어날 줄을 뉘 생각하였으랴? 적괴인 흠돌, 홍원 등은 그 벼슬이 재능으로 높아간 것도 사실상 왕의은혜로 올라간 것이지만, 시종을 삼가거나 부귀를 보전치 못하고 불인과 불의로 위복을 작하고 관료를 모만하고 상하를 속고 포악한 마음을 드러내어 흉사한 자를 불러들이고 근수와 교결하여 화가 내외에 통하고 같은 악인들이 서로 도와 기일을 약정한 후 반역을 행하려 하였다. 과인이 위로 천지의 도움을 입고 아래로는 종묘의 영조를 받아 악이 쌓이고 죄가 가득찬 홈돌 등의 꾀가 발로되니, 이는 곧 인신이 공기한 것이요, 천지에 용납치 못하게 된 것이다. 정의를 범하고 미풍을 상함이 이에서 더 심한 것이 없다. 이러므로 병중을 모아 그 무도한 자들을 없애려 하매, 혹은 산곡으로 도망가고 혹은 궁궐에 와서 투항하였다. 그러나 그 여당을 탐색하여 모두 주살하고 3, 4일 동안에 죄수가 탕진함은 마지못해 한 일이었고, 이로 인하여 사인(士人)을 경동케 하였으니, 근심스런 마음은 어찌 조석으로 잊을 수 있으랴. 지금은 이미 그 요사스러운 무리가 깨끗히 제거되어 원근에 우환이 없으니 소집하였던 병마는 속히 돌아가게 하고 사방에 포고하여 이 뜻을 알게 하라’고 하였다. <삼국사기 권8 신라본기8 신문왕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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