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 자강회
우리 대한이 종전에 자강의 방도를 강구치 아니하여 인민이 스스로 우매함에 굳어지고 국력이 쇠퇴하게 되어 드디어 오늘의 험난한 지경에 이르러 다른 나라의 보호를 받기까지 되었다. 이것은 모두 자강의 방도에 뜻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늘날 우리 한국은 3천리 강토와 2천만 동포가 있으니 힘써 자강하여 단체가 합하면 앞으로 부강한 전도를 바랄 수 있고 국권을 능히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자강의 방도를 강구하려 할 것 같으면 다른 곳에 있지 않고, 교육을 진작하고 산업을 일으키는 데 있으니 무릇 교육이 일어나지 않으면 인민의 지식이 열리지 않고, 산업이 일어나지 않으면 나라의 부가 강해지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한즉 인민의 지식을 열고 국력을 기르는 길은 교육과 산업의 발달에 달려 있다고 아니할 수 있겠는가! - 대한 자강회 취지문 - |
참고글 : 대한자강회는 1906년 헌정연구회를 계승하여 교육과 산업 등 실력 양성과 자강을 추구한 단체입니다. 특히, 고종양위 반대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치다가 해산되었습니다. 이후 신민회로 일부의 명맥이 이어지는 애국계몽운동 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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