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시대와 신문왕의 전제왕권 1 - 집사부 체제를 완성하다
이번 파트부터는 통일신라 전제왕권을 완성한 신문왕에 대한 포스팅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분야로 나누어 다양한 각도에서 포스팅하겠습니다. 신문왕을 자세히 포스팅하는 이유는 신문왕 자체가 통일신라의 문물을 정비하고, 완성한 사람이므로 신문왕을 <키워드>로 하여 통일신라의 전성기 체제를 바라보면 이해가 쉽기 때문입니다. 그럼 시작해보죠. 1. 통일이 되면서 <집사부 체제>가 강화되다 신라가 삼국통일이 된 것은 무열왕, 문무왕기를 거치면서입니다. 실제 나당전쟁후의 676년 삼국통일은 문무왕기에 이루어졌습니다. 문무왕이 삼국통일을 완성하면서 그 아들인 신문왕은 <통일 후 신라사회의 재편과 전제왕권의 성립>이라는 2가지 과제를 안고 등극하였습니다. 신문왕은 먼저 <집사부> 체제가 발전해오던 기존의 신라 제도를 확고히 합니다. 특히 집사부의 <중시> 지위를 폭넓게 인정하면서 기존 귀족 세력을 눌러 국왕중심의 강력한 중앙집권을 시도합니다. 보통 통일신라의 전제왕권을 논할 때, 전제왕권의 개념을 <강력한 국왕의 1인독재체제>라고 말하곤 하는데 그 부분은 약간 용어상 문제가 있는 듯 합니다. 왜냐면, 신문왕이 추구한 것은 국왕의 1인독재 시스템이 아니라, 국왕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중앙집권체제였기 때문입니다. 신문왕이 추구한 제도 개혁은 모든 중앙기구가 왕권에 복속되는 것이 아니라, 중국식 6전체제를 완성함으로서 국왕이 행정기구들과 효율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신문왕 때 시작된 것이 아니라 신라 법흥왕기 이래 계속 진행된 것이었습니다. 그럼 신라의 정치체제 발전과정을 간략히 포스팅해볼까요? 먼저 신라 국초에는 정무와 군사를 담당하는 <대보>가 있었는데, 이 기구는 이벌찬이나, 아찬 등 귀족들이 독점하는 기구였습니다. 신라 초기 구조 자체가 <귀족 6부 세력의 연합 국가>였기 때문에 귀족권이 강할 수밖에 없었죠. 이러한 귀족적 기구를 국가체제로 흡수하면서 귀족과 타협안을 제시한 것이 법흥왕입니다. 법흥왕은 상대등과 병부를 설치함으로서 귀족의 권리와 국왕의 권리를 타협하려 했습니다. 상대등 설치는 귀족 대표로서 국가가 <귀족의 권리>를 공식인정한 것을 말하지만, 귀족권이 국가 행정 체제로 흡수되었다는 것도 동시에 보여주는 것입니다. 또 병부를 설치함으로서 사병적 성격의 <귀족 각 부>의 군권을 국가가 흡수하였다는 것에 의미가 있습니다. 단, 병권의 수장은 귀족 집단이었지만 말이죠. 진흥왕은 <품주>를 설치합니다. 품주는 조세를 걷는 기구로 품주의 설치는 곧 왕권이 국가 지배권을 확보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실제 신라 전역에 대한 국왕의 독자적 지배가 미치는 시기는 진흥왕기부터입니다. 대표적인 예는 진흥왕이 귀족들과 합의에 의한 <공동하교>의 전례를 무시하고 국왕 혼자 <단독하교>를 내린다는 점에서 증명되죠. 이후 진평왕은 위화부, 조부, 예부 등을 설치합니다. 이러한 기구의 설치는 점차 신라의 중앙행정제도가 중국식 6전체제를 닮아감을 보여줍니다. 김춘추가 전권을 잡았던 진덕여왕기에는 진흥왕기의 품주가 분화되어 집사부, 창부로 나누어집니다. 특히 집사부의 중시가 설치되면서 법흥왕대의 <상대등>을 대신할 세력이 등장합니다. 신라중대의 상대등이 귀족권을 상징한다면, 중시는 왕권의 비서역할을 함으로서 왕권의 상대적 강화를 보여줍니다. 또 이방부가 설치되어 중국 6전체제가 대부분 완성되죠. 신문왕기에는 중시의 지위를 더욱 격상시켜 상대등을 유명무실한 존재로 전락시키고, 중시 아래 위화부 등 13개 부를 정리함으로서 행정업무를 가장 효율적으로 정비합니다. 따라서 신라는 초기 부족적인 체제를 없애지 않고, 계속적으로 부족한 부분만 설치하면서 중국 당나라식 6전조직(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 체제를 완성합니다. 또 지방을 감시하기 위한 중앙 감찰기구로는 사정부, 국립대학으로는 당과 같은 명칭인 국학을 설치하였습니다. 신라의 6전체제 명칭을 중국과 비교해 볼까요?
자 이렇게 완성된 신라의 정치체제는 신문왕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효율적으로 중앙집권을 완성하기 위한 시스템이었습니다. 보통 개론서들은 전제왕권을 군주 1인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초강력 울트라 왕권>을 말하지만, 이러한 시스템을 자세히 보면 전제왕권이 <군주 1인>을 위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전제왕권이란, 군주권이 신하권을 누를 정도로 극강해지면서 군주를 보좌하는 신료들과 함께 <중앙집권적 관료정치>가 완성되는 것을 말합니다. 특히, 신문왕기에는 강수, 설총, 이지성 등 6두품 출신이나 국학출신의 전문 관료군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이들과 함께 효율적인 국가 시스템을 운영했던 것이 통일신라의 전제왕권입니다. 신문왕은 과거의 제도를 효율적으로 정비하여 통일신라의 관료제 사회 시스템을 정비하고, 골품제적 모순을 일부 극복하려고 했던 것이지요. 그럼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의 변화상을 신문왕을 키워드로 한번 정리해볼까요? 다음 포스팅은 정치부분입니다. |
<http://historia.tistory.com 티스토리 역사블로그 - 히스토리아>
'퀴즈풀이 > 히스토리아 역사 스토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역사는 기성복의 틀 속으로 사상을 규정한다. (1) | 2007.05.10 |
---|---|
신문왕의 전제왕권 2 - 중앙집권화를 위해 귀족권을 억압하다. (1) | 2007.05.10 |
스콜라 철학사 4 - 보편논쟁 제 3장 : <온건한 실제론> (0) | 2007.05.10 |
스콜라 철학사 3 - 보편논쟁 제 2장 : <실제론> (2) | 2007.05.10 |
스콜라 철학사 2 - 보편논쟁 제 1장 : 보에티우스(철학의 위안) (7) | 2007.05.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