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 제국의 반포
“봉천 승운 황제(奉天承運皇帝)는 다음과 같이 조령(詔令)을 내린다. 짐은 생각건대, 단군(檀君)과 기자(箕子) 이후로 강토가 분리되어 각각 한 지역을 차지하고는 서로 패권을 다투어 오다가 고려(高麗) 때에 이르러서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을 통합하였으니, 이것이 ‘삼한(三韓)’을 통합한 것이다. |
우리 태조(太祖)가 왕위에 오른 초기에 국토 밖으로 영토를 더욱 넓혀 북쪽으로는 말갈(靺鞨)의 지경까지 이르러 상아, 가죽, 비단을 얻게 되었고, 남쪽으로는 탐라국(耽羅國)을 차지하여 귤, 유자, 해산물을 공납(貢納)으로 받게 되었다. 사천 리 강토에 하나의 통일된 왕업(王業)을 세웠으니, 예악(禮樂)과 법도는 당요(唐堯)와 우순(虞舜)을 이어받았고 국토는 공고히 다져져 우리 자손들에게 만대토록 길이 전할 반석같은 터전을 남겨 주었다. |
짐이 덕이 없다 보니 어려운 시기를 만났으나 상제(上帝)가 돌봐주신 덕택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안정되었으며 독립의 터전을 세우고 자주의 권리를 행사하게 되었다. 이에 여러 신하들과 백성들, 군사들과 장사꾼들이 한목소리로 대궐에 호소하면서 수십 차례나 상소를 올려 반드시 황제의 칭호를 올리려고 하였는데, 짐이 누차 사양하다가 끝내 사양할 수 없어서 올해 9월 17일 백악산(白嶽山)의 남쪽에서 천지(天地)에 고유제(告由祭)를 지내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국호를 ‘대한(大韓)’으로 정하고 이해를 광무(光武) 원년(元年)으로 삼으며, 종묘(宗廟)와 사직(社稷)의 신위판(神位版)을 태사(太社)와 태직(太稷)으로 고쳐 썼다. 왕후(王后) 민씨(閔氏)를 황후(皇后)로 책봉하고 왕태자(王太子)를 황태자(皇太子)로 책봉하였다. 이리하여 밝은 명을 높이 받들어 큰 의식을 비로소 거행하였다. 이에 역대의 고사(故事)를 상고하여 특별히 대사령(大赦令)을 행하노라. |
1. 조정에서 높은 벼슬과 후한 녹봉으로 신하들을 대우하는 것은 원래 그들이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나라의 안위(安危)는 전적으로 관리들이 탐오한가 청렴한가 하는 데 달려 있다. 관리들이 간사하고 탐욕스러우면 뇌물이 판을 치게 되어 못나고 간악한 자들이 요행으로 등용되고 공로가 없는 자들이 마구 상을 받으며 이서(吏胥)들이 문건을 농간하므로 백성들이 해를 입는 등, 정사가 문란해지는 것이 실로 여기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금년 10월 12일 이후부터 서울에 있는 크고 작은 아문(衙門)과 지방의 관찰사(觀察使), 부윤(府尹), 군수(郡守), 진위대(鎭衛隊) 장관들과 이서, 조역(皂役)으로서 단지 뇌물만을 탐내어 법을 어기고 백성들을 착취하는 자들은 법에 비추어 죄를 다스리되 대사령 이전의 것은 제외한다. |
1. 조관(朝官)로서 나이 80세 이상과 사서인(士庶人)으로서 나이가 90세 이상인 사람들은 각각 한 자급씩 가자(加資)하라. |
1. 지방에 나가 주둔하고 있는 군사들은 수고가 많은 만큼 그들의 집안에 대해서는 해부(該府)에서 후하게 돌봐 주라. |
1. 재주를 갖고서도 벼슬하지 않고 숨어 사는 선비로서 현재 쓸 만한 사람과 무예와 지략이 출중하고 담력이 남보다 뛰어난 사람은 대체로 그들이 있는 곳의 해당 관찰사가 사실대로 추천하고 해부(該部)에서 다시 조사해 보고 불러다가 적절히 뽑아 쓰라. |
1. 은혜로운 조서(詔書)에 ‘묵은 땅은 세금을 면제해 주고 장마와 가뭄의 피해를 입은 곳은 세금을 면제해주고 백성에게 부과된 일정 세금을 면제해 준다.’는 내용이 있으니, 다시는 시일을 끄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간혹 이미 다 바쳤는데도 지방관이 별개의 항목으로 지출해서 쓰거나 혹은 개인적으로 착복함으로써 백성들이 세금을 내지 않는다는 누명을 쓰게 된 것은 모두 면제하라. |
1. 각 처의 주인 없는 묵은 땅은 해당 지방관이 살펴보고 내용을 자세히 밝혀서 보고하면 관찰사(觀察使)가 다시 살펴보고 판단한 다음에 허위 날조한 것이 없으면 즉시 문서를 주어 돈과 곡식을 면제하여 주며, 그 땅은 백성들을 불러다가 개간하도록 하라. |
1. 문관(文官), 음관(蔭官), 무관(武官)으로서 조관은 7품 이하에게 각각 한 품계씩 올려 주라. |
1. 사람의 생명은 더없이 중하므로 역대로 모두 죄수를 세 번 심리하고 아뢰는 조목이 있었다. 죄보다 가볍게 잘못 처리한 형관(刑官)의 죄는 죄보다 무겁게 잘못 판결한 경우보다 가볍다. 대체로 형벌을 다루는 관리들은 제 의견만을 고집하지 말고 뇌물을 받거나 청탁을 따르지 말며 범죄의 실정을 캐내는 데 힘쓰라. |
1. 모반(謀叛), 강도, 살인, 간통, 절도 등 여섯 가지 범죄를 제외하고는 각각 한 등급을 감하라. |
1. 각도(各道)의 백성들 가운데 외롭고 가난하며 병든 사람들로서 돌보아 줄 사람이 없는 사람들은 해당 지방관이 유의하여 돌보아 주어 살 곳을 잃는 일이 없도록 하라. |
1. 큰 산과 큰 강의 묘우(廟宇) 가운데서 무너진 곳은 해당 지방관이 비용을 계산해서 해부(該部)에 보고하고 제때에 수리하며 공경하는 도리를 밝히라. |
1. 각 도의 도로와 교량 가운데 파괴된 것이 있으면 해당 지방관이 잘 조사하여 수리함으로써 나그네들이 다니는 데 편리하게 하라. |
1. 조서 안의 각 조목들에 대하여 해당 지방의 각 관리들은 요점을 갖추어서 마음을 다하여 행함으로써 되도록 은택이 백성들에게 미치도록 힘써서 백성들을 가엾게 생각하는 짐의 지극한 뜻을 저버리지 말라. 만약 낡은 틀을 그대로 답습하면서 한갓 겉치레로 책임이나 때우고 있는 데도 해당 관찰사가 잘 살펴보지도 않고 되는 대로 보고한다면 내부(內部)에서 일체 규찰하여 엄히 처리하라. |
아! 애당초 임금이 된 것은 하늘의 도움을 받은 것이고, 황제의 칭호를 선포한 것은 온 나라 백성들의 마음에 부합한 것이다. 낡은 것을 없애고 새로운 것을 도모하며 교화를 시행하여 풍속을 아름답게 하려고 하니, 세상에 선포하여 모두 듣고 알게 하라.” |
하였다.【홍문관 태학사(弘文館太學士) 김영수(金永壽)가 지었다.】 |
- 고종 실록, 고종 34년 10월 13일 -
- 광무의 뜻은 무엇일까요?
고종은 일제가 압박하는 구한말,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바꾸고, 연호를 광무라 하면서 <광무개혁>을 실시하였습니다. 대한제국의 의미는 <삼한을 계승하여 황제가 나라를 새롭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고조선 - 삼한 - 삼국시대 - 통일신라>로 이어지는 한반도의 <삼한정통론>을 계승하여 국호를 정한 것이지요.
여기서 뜻하지 않게 미심쩍은 것은 연호인 <광무>입니다. <대한>이야 <삼한의 큰 뜻>이라고 이해할 수 있지만, 광무는 뭘까요?
사실 고종이 정한 광무란, 후한의 건국자인 <광무제>를 염두에 두고 지은 연호입니다. 광무제는 한무제 때의 전성기였던 <전한>의 부활을 꿈꾸면서 <후한>을 건국하였습니다. 그리고 광무제 역시 한무제와 더불어 한나라의 위대한 제왕으로 역사에 기록되었습니다.
고종은, 사라져가는 조선의 국운을 보았고, 일제의 침탈로 인해 명성황후가 비참히 죽는 것도 목격하였습니다. 자신도 죽을 위기를 넘겼고 이미 <조선>이라는 근대화되지 못한 국가가 어떤 종말을 맞을 지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자기 스스로 <광무>라는 이름을 쓰게 됨으로서 불가능해 보였던 <전한>의 영광을 다시 재현한 광무제와 같이 한반도의 국운을 되살려 보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고종의 광무개혁은 그 뜻과는 다르게 <국운의 부활>을 가져오지 못하였습니다. 광무제가 살았던 시기와 고종이 살았던 시기의 사회가 너무 달랐던 탓일까요, 아니면 고종의 능력이 부족해서였을까요? <광무>란 연호는 그저 고종의 개혁 때 사용했던 연호라며 교과서에 1줄 실리는 정도에서 그 의미가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