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통사의 서언문 - 캉 유웨이 내가 예전에 인도를 여행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어느 인도 사람이 <우리 인도인들은 개나 고양이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라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아마도 나라를 잃은 비통함에 가슴이 아파서 하는 말을 것이다. 또 어떤 베트남 사람이 말하기를, <우리가 왜 새나 짐승, 혹은 초목으로 태어나지 않고 불행하게 인간으로 태어났는지 마음이 아픕니다>라고 하는 말도 들었다. 이 모든 것들이 망국민이 되어 너무나 비틍한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고양이나 개만도 못하다고 하는 그 말 속에서 그들의 아픔을 알 수가 있었다. 예전에 어떤 우리나라 시인이 물하기를 <푸른 어린 나무야, 아무것도 모르는 네가 부럽기만 하구나>라고 한 것을 보니, 확실히 인간이 초목만도 못함을 말한 것이리라. 나는 세계를 돌아다니며 망한 나라들을 살펴 보았는데, 유럽에서는 폴란드, 이스라엘, 아시아에서는 인도, 미얀마, 베트남, 자바, 말레이시아를 너머 아메리카의 멕시코를 다니면서 망국의 백성들을 보고, 그들의 참혹한 모습을 자세히 보았다. 그들은 슬피 울었고, 그들의 얼굴은 참담한 어둠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것은 그들이 사람축에도 들지 못하는 대접을 받고 있기에 그런 것이니 어찌 이상하지 않겠는가? 멕시코가 스페인에게 망하자 그들의 책은 불태워졌고, 그들의 문자는 사라졌으며, 그들의 지식인들은 살육당하였다. 폴란드가 러시아와 독일에게 분할당하자 폴란드의 말과 글은 금지되었고, 심지어 폴란드 사람들이 땅을 사는 것조차도 금지되었다. 콩고가 벨기에에게 망하자 벨기에 사람들은 콩고인을 노예로 삼았고 마음대로 옆구리를 찌르고 팔다리를 꺽고 가슴을 도려내며 몸을 마음대로 베었다. 이러한 광경들을 인간으로서 차마 볼 수가 있겠는가? 인도는 나라가 망한 지 백년이 되었어도 자국민이 문관의 높은 자리에는 오를 수가 없게 되었고, 무관이라 해도 천부장이 될 수 없었다. 의사, 법률가, 기술자도 그 직책의 장이 되지 못한다. 도살장의 칼도 7일에 한 번은 점검을 받아야 하고, 작은 칼 조차도 몸에 지닐 수가 없었으며, 우체국에는 관원을 많이 주재시켜 놓고 편지를 다 뜯어보게 하고는 한마디라도 영국을 범하는 구절이 있으면 반역죄를 적용하여 교수형에 처하였다. 우리나라가 아직 망하지는 않았지만...(중략)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이다. (중략).... 지금 일본사람들이 대한제국을 점령함에 있어 전후 체결한 조약이 10여가지나 되었는데, 그 조약문을 읽어보면 모두가 대서특필할 내용들이다. 즉, <조선 영토를 보존케 하여 제 3국의 침략으로보터 보호해준다. 황실의 존엄을 보존해준다. 조선과 일본의 우의와 동아의 평화를 오래도록 유지하도록 한다. 조선의 독립, 치안, 부강을 도와준다> 등의 내용이다. 그리고 곧바로 통감을 설치하여 정권을 빼앗고 얼마 있지 않아서 베트남처럼 만들었다. 심지어 일본에 합병되는 시기에 이르러서도 영토와 치안을 보전한다고까지 한다. 그럼에도 한국인(대한제국인)들은 그들이 독립하는 것을 돕고, 황제라고 불러주자 거국적으로 환호하면서 일본사람들의 의를 숭상하는 덕을 칭송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 권력을 지닌 귀족들이 금전과 작위를 받고, 그들의 이간책을 곧이 들으며서 그들에게 지휘권을 넘겨주었고, 더구나 그들을 위해 일까지 대신해 줌으로서 스스로 명망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리하여 13년만에 영토를 빼앗기고 노예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한국통사를 읽으면, 일본이 한국을 망하게 하는 술책이 코뿔소의 뿔을 태우는 것과 같고 쌀 알을 일일이 세는 것과 같으니 두렵고 애통하고 놀랍고 분통할 따름이라. 대체로 약하면 겸병을 당하고, 몽매하면 공격을 당하고, 혼란스러우면 탈취당하고, 망하면 멸시를 받는 것이다. 옛날부터 나라에 도덕이란 것이 없으면 교활한 것들만 생각하게 되어 사람을 속이는 술책만이 난무하게 되고, 이를 통해 남의 나라를 탈취하는 것이 고금천하에 일관되어 온 도리이다. 한국인이 일본인에게 무엇을 원망하겠는가? 이미 한국인들은 혼란해 있고, 이미 약해져 있고, 이미 무지몽매하기까지 하니 다만 다른 나라 사람에게 속임을 당하는 것이 슬퍼할 따름이다. 한국인을 어린 아이처럼 다루어서 가끔씩 대추나 밤을 먹이면 좋아하여 따르고, 회초리로 겁을 주면 무서워서 풀이 죽고, 때로는 서로 싸우도록 유도하면 같은 형제까리도 싸우게 된다. 이렇게 하는 동안 결국은 한국을 강점하여 그들을 마음대로 하니 그저 어린애처럼 엉엉 울 뿐이다. 비록 충신애국지사들이 있다 할지라도, 싹이 트기 전에 먼저 보지 못하고, 위태롭지 않을 때 분발하지 못한다면, 이미 그 난무함이 혼란스러워 결국은 반드시 망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예전에 미얀마를 여행하면서 망국의 대부들을 방문하는중에, 재정부 대신인 오동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는 자기 나라가 망하게 된 연유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해 주었다. <이미 우리 미얀마는 끝났소. 다만 근래의 중국을 보건데 아마도 우리 미얀마의 전철을 밝는 것과 같은 양상이니 반드시 경계하고 신속히 이에 대한 대비가 이루어지기를 바라겠소.>라고 하였다. 그 때 내가 들은 그의 큰 목소리는 마치 사자가 울부짖는 것 같아서 귀가 3일간이나 멍멍하고, 머리를 들어도 볼 수가 없었으며 발로 걷기조차 힘들었다. 이제 <한국통사>를 읽어보니, 망한 나라가 반드시 거치게 되는 과정이 더욱 선명하게 나타나 있다. 스스로 태백광노라 부르는 이가 있었는데, 그는 예전 한국의 유신으로서 절개가 높고 학문이 풍부하며 문장의 필체가 뛰어나고 필력이 웅건하며 세찼다. 그는 고국이 망한 것을 슬퍼하면서 이 통사를 저술하여 나라가 망한 데 대한 슬픔을 표현하였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흐르는 눈물을 어쩔 수가 없어 옷길을 적시곤 하였다. 조자환은 <죽은 자를 슬퍼하면서 그를 생각하며 그의 뜻을 실행해야 한다>고 하였다. 우리 국민들은 이 책을 읽고 우리나라의 장래 모습이 이처럼 되지 않을지 두려워하고 걱정해야 할 것이다. 나 또한 이 통사를 읽으면서 마음에 동하는 바가 있어서 나 스스로가 먼저 분발하고자 한다. 중국이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는 해도 분발하지 않으면 제 2의 조선이 될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니 그저 한숨만 지을 뿐이다. 공자 2465년에(1915년 2월) |
캉유웨이는 중국 근대화를 이끈 선구적인 인물로 우리에게는 <변법자강운동>으로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이 당시는 열강의 중국침략이 가시화되고 독일 등이 중국에 적극적으로 진출하던 시기였습니다. 캉 유웨이는 중국과 가장 가깝고 밀접한 역사적 관련성을 가진 조선의 이야기를 한국통사로 읽고 서구 열강에 대한 아시아 각국의 문제점을 진지하게 생각하였다고 합니다.
캉유웨이는 변법자강의 핵심을 일본의 메이지 유신과 같은 서구화로 인식하였습니다. 망국의 치욕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왕조를 지킨다는 틀을 벗어나 법치주의의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고 생각하였고, 그가 주장한 개화의 핵심은 <서구식 입헌군주제의 정착>이었습니다.
박은식은 한국통사를 지으면서 스스로 나라를 지키지 못한 자로서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그는 한국통사의 저자를 <태백광노>라고 하였습니다. 태백광노란, 나라를 잃은 미친 노예라는 뜻으로, 민족을 지키지 못한 그의 한을 잘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한국통사는 대원군이 집권하고 고종이 왕위에 오른 시기는 1863년의 정치사부터 나라를 잃은 1910년과 신민회가 해산된 1911년까지의 역사를 통사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국통사에서는 나라를 잃은 원인을 서구적인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즉, 서구와 같이 개화되지 못하고, 일본과 같이 문물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 약자로서 강자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 사회진화론에 입각하여 제국주의 국가들에게 점령당할 수밖에 없는 몽매한 국민들의 한이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캉유웨이 역시 이 책을 읽고 크게 공강한 부분은 스스로 강해져야 하며, 강해지기 위해서는 민족 정신을 끝까지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었을 것입니다. 민족의 한을 풀기 위해서는 몽매한 우리 민중이 강해져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죠.
그러나, 한국통사 이후 3.1운동을 본 박은식 선생은 <사회진화론>적인 입장을 버립니다. 약자라서 강자에게 지배받았다는 것, 우리가 무능해서 일본에 지배당했다는 것을 점차 부정하면서 민중을 기반으로 한 민족주의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주장하게 된 것이죠. 3.1운동으로 인해 분출된 민족의 힘과 청산리 대첩 등을 통해 바라본 독립운동의 정신 등은 <한국독립운동의 혈사>라는 책에서 다시 정리됩니다. 우리가 파탄적인 붕당정치와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치, 백성들의 무능함과 일본에 대한 아첨으로 나라를 잃은 것이 아니였고, 우리 민중은 끊임없이 일제에 대해 항거하고 있었다는 관점으로 다시 정리되죠.
물론, 한국통사 역시 민족주의적인 부분이 강한 책입니다. 단군부터의 민족정신, 역사를 바라보는 것에 있어서 국혼과 국백 이야기 등은 한국통사를 읽을 때 꼭 봐두셔야 할 중요한 대목이지요. 이미 다 소개했기 때문에 오늘은 캉 유웨이에 대한 글을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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