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사 이야기 21 - 역사의 흐름은 유통경제의 발달이었다.
1. 막부의 중농정책과 떠오르는 상인들 에도막부는 다른 막부들 보다 훨씬 더 철저한 중농정책을 실시한 막부였습니다. 이전 가마쿠라 막부가 국내외 무역을 통한 재정 확보를 중시한 것과는 달리, 에도막부는 사회 분위기를 엄격하게 통제하고, 어느 정도 잉여생산물이 축척된 농업 자본을 막부의 재산으로 삼았습니다. 직업의 근간은 농업이었고, 성리학적 분위기에 의해 상공업은 천시되었습니다. 그러나 17세기 이후, 발전하는 사회 경제적 변화를 막부가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농업기술의 발달과 중국, 조선에서 선진 농법이 계속들어오면서 농경지의 면적은 계속 증가하고, 개간이 계속 이루어졌습니다. 조선 시대 후기에 광작(넓은 영토를 가지고 농사짓는 것)이 성행하고, 농촌경제의 발달로 토지를 확보한 부농과 토지가 없는 빈농으로 신분이 분화되어 가죠? 에도 막부 역시 같은 시기 같은 상황을 겪게 됩니다. 정부가 농업을 강조하면서 농업 생산력은 엄청나게 성장했고, 그 결과 농업을 통해 거대한 이윤을 창출한 부유한 농민(부농)과 토지를 잃고 농업 노동자로 전락한 빈곤한 농민(빈농)이 등장합니다. 조선 시대 농업경제 발달이 양반층에도 부유한 양반과 몰락한 양반을 초래했듯이, 일본에서도 무사층의 분화를 초래하게 됩니다. 부유한 무사들은 영주가 되어 엄청난 재력을 축척하지만, 빈곤해진 무사들은 사회에 불만을 갖게 됩니다. 또 빈곤해진 무사들은 조금밖에 없는 토지에서 최대한 세금을 쥐어짜기 위해 농민들에게 많은 세금과 부역을 강요하게 되어, 사회가 동요하고 농민반란이 많아지게 됩니다. 조선시대 임술민란이나 홍경래의 난과 같은 사회 분위기를 생각해보세요. 반면, 농업경제의 발달로 남는 생산물을 시장에 유통하려는 세력이 등장하면서 5일장이 확대되고, 재산을 축척한 상인집단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 대상인 집단은 농촌경제를 이끌어간 부농출신도 있었고, 처음부터 상업과 수공업을 동시에 시작하여 유통경제의 신화를 이룬 인물들도 있었습니다. 18세기가 되면 농업을 중시하는 막부의 경제정책이 점차 무너지고, 도시 중산층이 등장하면서 에도 막부의 전통적인 카스트적 신분질서를 위협하기 시작합니다. 2. 대상인이 출현하였으나, 정부는 이들을 끌어안지 못하다. 상품화폐경제의 발달은 조선, 명, 에도막부 후기의 공통점입니다. 그러나 각 국가들은 이렇게 축척된 상업자본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였습니다. 동아시아 국가의 당시 관학은 모두 성리학이었습니다. 3국가 모두 후기에 좀더 실용적인 양명학이 성행하고 실학과 국학이 등장했지만, 일시적인 유행에 불과하거나, 지배집단에서 소외된 이들이 받아들인 학문이였습니다. 전통적인 농업주의의 유교이념에서는 <중농주의>를 근간으로 토지에서 세금을 걷는 것이 경제의 원칙이라는 입장을 계속 고수하였습니다. 에도 막부 역시 성장하는 상업자본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갈피를 못잡고 있었습니다. 상품화폐경제의 발달로 미쓰이 등 재벌가가 등장하였고, 이 재벌가들은 금융업을 통해 막부, 번보다 더 큰 경제적 위세를 떨치게 되었죠. 대상인들은 동업자 조합을 만들고 물품에 대한 독점권을 얻어 상품 가격을 통제하였습니다. 서양식 길드 체제와 비슷하다고 할까요? 상공업자들은 도시의 대상인들과 결탁하여 서로간 상업규칙을 마련하고 동업조합의 운영절차를 작성하였습니다. 서로간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상업의 운영방식을 정하고 정해진 규칙 안에서 도시내 상공업을 완전 독점 장악하였습니다. 에도 막부는 중농정책을 고집하면서도 이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미 국가 경제권은 상업자본이 가지고 있었고, 쇼군과 다이묘도 금융업자들에게 많은 부채를 지고, 상업자본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막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농업이 근본산업이다>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전통 농업경제이념인 성리학을 백성들에게 계속 주입하는 정도였습니다. 또, 지나친 상공업에 의한 <사치>는 위험하다는 입장에서 <검약령>을 내리고, 상업에 종사하는 소상인들을 농업으로 복귀시키는 <귀농령>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에도 막부에서 등장한 상업자본 역시 명, 조선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사회로의 경제적 근대화에 성공한 사례>로 볼 수가 없습니다. 일부 일본학자들은 명, 조선과 달리 일본의 자본주의는 이미 에도 막부 말기에 등장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성립하려면, 그 자본이 사회전체의 유통경제를 장악하고 자본에 의한 새로운 신분질서와 경제질서가 확립되어야 합니다. 비록, 에도막부에서 이전과 다른 상업자본이 등장했다고는 하지만, 그 자본은 도시내 동업조합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자본으로 근대적 독점 자본주의와는 성격이 다른 자본인 듯 합니다. 또, 축척된 상업자본은 막부의 군사력에 의해 언제든지 빼앗길 수 있는 위태로운 것이었고, 실제 막부는 상업자본이 막부에 위협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 언제든지 상업자본을 제거하려고 했습니다. 즉, 에도 막부의 상업자본은 막부와 결탁하거나, 막부 재정에 협조하는 형태로 살아남아야 했기 때문에 진정한 자본주의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일본학자들이 주장하는 에도 막부기 일본의 근대화론은 아직 시기 상조의 이론같습니다. (에도 막부가 일본에서 경제적 근대화를 이루었다면, 신해통공이 이루어지고 상공업이 활성화된 조선 정조 때도 근대화 기점으로 생각해 볼만 하네요.) 3. 도시 중산층의 문화가 등장하다. 에도 막부 후기, 급격하게 발달한 상공업은 무사계급과 다른 <중산계급>이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중산계급이란, 도시 상인계급을 말합니다. 어느 정도 재력이 있는 도시 상인들은 기존 무사 계급의 문화와 차별되는 좀더 서민적인 문화를 만들게 됩니다. 보통 도시를 거점으로 성장한 도시 상인 집단을 <죠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도시 중산 문화를 <죠닌 문화>라고 부르죠. 죠닌 문화의 핵심은 상인과 농민들에게 글과 예절 등을 가르치는 학교가 전국적으로 등장하여 <교육의 기회 확대>가 이루어졌다는 것에 있습니다. 중산층들은 더 높은 문화와 신분 상승을 위해 장남에게는 교육의 기회를 주고, 차남 이하는 상인교육을 시켜 가문을 유지하였죠. 이 죠닌 문화는 서민적인 통속소설, 가부키 등을 향유하고 즐기는 문화로 발전합니다. 18세기 이후 일본의 겐로쿠 문화, 가세이 문화 등 새로운 문화가 등장하면서 무사 중심의 상층 문화가 점차 상인 계급의 문화로 이동하였습니다. 특히, 돈 있는 상인들은 일본 풍속화가 들의 그림을 집안에 보관하는 것이 문화의 척도라 생각해서, 풍속화(우키요에), 목판화(니시키에) 등의 회화 기술이 발전하게 됩니다. 또, 중국 당나라 시기 견당사에 의해 보급되기 시작한 차를 마시는 예법(다도)이 지배층을 넘어 죠닌층에게 확대되어, 다도 예법은 일본인 모두에게 교양을 판가름 하는 척도가 되기도 합니다. 4. 성리학보다는 실학이 필요한 시기이다. 조선 후기, 성리학의 이념주의적이고 교조주의적인 경향을 탈피하여 새롭운 관점에서 유학을 바라보고, 백성과 국가에 실제로 필요한 학문을 연구하자는 경향을 역사학계에서는 <실학>이라고 부릅니다. 조선의 실학은 <토지 경작자에게 토지를 맡긴다>는 이념의 중농학파, <상공업을 통한 부국강병을 실현한다>는 중상학파, <우리 것을 알아 실사구시로 활용한다>는 국학론 등이 있었죠. 일본 역시 새로운 경향의 사회이념이 유사한 시기에 등장합니다. 일본 에도 막부의 국가 유학은 조선에서 건너간 <성리학>이었습니다. 성리학 중에서도 군신상하의 대의명분과 사무라이 윤리에 활용하기 좋은 <주자학>이었죠. 막부 지배층은 막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성리학의 충성, 의리, 대의명분, 국가 윤리 등을 활용하였습니다. 그러나, 막부 후기가 되면서 양명학자들이 많이 늘어납니다. 양명학은 사물의 이치를 깨닫는 것이 우선이라는 성리학의 <격물치지>보다, 실천과 수양이 먼저라는 <지행합일>을 강조하는 학문이었습니다. 상공업이 발달하고 사회분위기가 개방적으로 변화하면서 양명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죠. 그러나, 막부는 사회 동요를 막기 위해 양명학을 금지하고, 국가 관학은 오로지 성리학이라고 강조합니다. 양명학은 책을 읽는 깨달음보다 실천이 우선이라는 간명한 논리로 지배계층에서 소외당한 하층 무사나 도시 상공업자에게 환영받습니다. 또 성리학이 강조하는 강력한 중앙집권체제의 논리와 다르게, 지역의 자율성이나 도시의 상공업 활동에 관대한 성향이 있기 때문에 막부에서는 양명학을 <반체제적인 불순한 사상>으로 생각하였답니다. 명대의 양명학이 조선을 거쳐 일본에 들어왔다면, 청대의 고증학도 일본에 수입되었습니다. 고증학은 중국 청조 시기에 사물의 참 뜻을 깨닫고, 원전의 올바른 뜻이 무엇인지를 연구하는 신유학이었습니다. 중국 청나라가 이민족인 만주족 왕조이기 때문에 유학 활동이 철학적이지 못하게 된 것에서 비롯된 학문이지요. 일본에서도 이 고증학의 영향을 받아 공자, 맹자 등 중국 선진 유학자들의 원전을 연구하는 파가 등장하는 데, 이러한 파를 <고학파>라고 합니다. 또 하나, 에도 막부기 유행한 사상 중의 하나는 <난학>입니다. 에도 막부는 강력한 쇄국정책을 펼친 까닭에 교류했던 서양 국가는 네덜란드 뿐이었습니다. 난학은 네덜란드의 학문이라는 뜻으로, 서양 의학서 등을 일본식으로 해석하면서 서양 학문을 연구하는 경향을 말합니다. 그러나, 에도 막부 후기에 가장 중요한 사상은 <국학>입니다. 국학은 조선으로 말하면 <실학>이라고 볼 수 있는 학문이죠. 에도 막부기에는, 상공업이 발달하여 서민 문화가 널리 보급된 반면, 쇄국 정책으로 외래 문화와 사상은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양명학이나 고학, 난학 등이 들어왔지만 지배층 일부의 학문이었고, 서민들 개개인이 인식할 만한 학문은 아니였죠. 국학은 서민문화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사상이 전파되면서 이 일련의 사상들을 묶어 <일본 고유의 학문>이라며 부르는 말입니다. 일단 번학, 향학 등 서민교육기관이 증가하면서 서민적인 유학 교육으로 <도덕과 윤리 교육>이 등장하였고, 서민적인 오락이자 문학인 일본 고유의 가부키 양식이 완성됩니다. 또 풍자소설(센류)와 돌림노래(연가), 쿄카 등이 유행하였죠. 안도 쇼에키는 무가사 농민들을 수탈하는 사회가 과연 옳은 사회인가를 비판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서민적인 학문 전통 속에서 일본 고전과 일본 고대사를 연구해서 독자적인 일본사를 완성하고 서민들에게 전파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졌습니다. 이들을 흔히 <국학론자>라고 합니다. 이들은 중국식 이념인 유교와 불교를 배격하고 일본 자체에서도 고대부터 내려온 사상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 고대부터 내려온 고유 사상이란, 국수주의적인 관점에서의 <존왕왕이 사상>입니다. 천황은 하늘의 자손이라는 <천손강림>을 이념적으로 정리하여, 왕권의 강화가 일본 역사의 발전방향임을 강조합니다. 또 일본 고유의 사상인 <신도>를 복고해서 일본인의 정신을 하나로 묶어야 한다고도 말합니다. 이 국학사상이 일본에 미친 영향은 너무나 지대하였습니다. 일본 근대기 왕을 중심으로 모이자는 <근왕운동>, 조선을 쳐들어가 일본의 우월함을 증명하자는 <정한론> 등의 기초 이념이 국학 사상에서 이미 보여지기 때문이죠. 다음 장에서는 에도 막부가 동요하면서 막부타도운동이 전개되는 시점의 이야기를 전개해보겠습니다. 막부 타도운동이 성공한 그 다음 이야기는 메이지 유신이 되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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