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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풀이/역사 사료와 데이터

박혁거세 건국 설화 - 삼국사기 -

 

박혁거세 설화                          

시조, 성<박>씨,휘<혁거세>.<전한><효선제>,<오봉>원년,갑자,사월 병진[또는 정월 15일] 즉위, 부르기를 거서간이라 했고, 나이는 13세였고, 국호는<서라벌>. 먼저는 바로 <조선> 유민이었다. 나누어 사니 산골짜기를 사이로 하여 6촌이다

첫 번째 가르되 <알천><양산촌> , 두 번째 가르되<돌산><고로....(중략)

<나정>은 수풀 사이에 있었다. 말이 (히히힝) 우는 즉 가 보니까 홀연히 아니 보였다. 다만 있으니 큰 알이었다. 쪼개니 '이슬 과부아이'[이슬이 과하게 불어나]가 출하여 나왔다. 어찌 곧 거두어 마을을 기르지 않겠는가 급년 십여[삼]세에 기상 그렇게 일찍 이루었다. 6부인은 이로써 터가 생겼다. 신으로 따라 밀어 높이었다.이는 바로 세워야 할 임금이었으니 <진>사람 이었다. 이르기를 '표주박'이라 하여 '박'으로써 하였다. 처음에 큰 알 같은 표주박이었다. 옛날에 이로써 朴을 성으로 하였다.거서간, <지지>라 말하니 '임금'이다 [혹은 부르기를 '귀인'이라 갈 하여 칭하였다]

                                                                                         - 삼국사기  -

사료해석 : 고대 탄생 신화로서 신화적 요소가 상당히 많아 해석이 분분합니다. 고전적 해석은 거서간(귀인) 단계에서 신라는 점차 차차웅 - 이사금 - 마립간 - 왕 등의로 칭호가 바뀌면서 영토가 넓어지고 왕권이 강화돠는 것으로 보아 왕명의 변화 자체가 곧 신라 발전을 제시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즉, 초기 사로 6국의 언급은 곧 조그만 소국 규모 국가를 상징한다는 것이죠.

최근의 해석은 사로 6촌을 그냥 6부로 파악하면서 진한 소국 6국이 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한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많습니다. 즉, 초기부터 부족장이 연합한 큰 국가가 사로국이며, 이들 부족장들이 폐쇄적인 귀족 계급을 형성한 것이 골품제도라는 것입니다.(실제 골품제도의 아찬, 파진찬 등 "찬"이라는 명칭이 족장계열의 명칭이라는 주장이 많습니다.) 교과서적 해석은 생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