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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풀이/역사 사료와 데이터

이규보의 동명왕편 - 창작 동기

동명왕편(주몽설화)

이 작품은 고구려를 창건한 동명왕을 민족적 영웅으로 형상화한 영웅 서사시입니다. 서사시는 장중한 문체로 집단의 운명에 직결되는 심각한 주제를 다루는 장편의 이야기시의 이름인데, 특히 국가나 민족 또는 인류적 영웅의 행위를 중심으로 하는 역사적 사건을 그 주된 이야기거리로 삼은 것을 영웅 서사시라고 하지요. 우리 문학사의 경우 고전문학이나 현대문학을 막론하고 서사시가 매우 드문 형편인데, `동명왕편`은 고구려를 창건한 동명왕을 민족적 영웅으로 주인공화하여 하늘과 땅은 물론 수중 세계를 아우른 광활한 지역을 배경 삼아 기억하기에 편리한 오언시(五言詩)로 표현되고, 작자의 개인적인 정서나 사상보다는 커다란 역사 공동체로서의 당시 고려인의 신앙과 이념을 나타냄으로써 영웅서사시의 제반 요건을 충족하고 있는 귀중한 문학 유산입니다.

창작동기

이규보가 `동명왕편`을 지은 시기는 1193년(명종23)4월로 그의 나이 26세 때였습니다. 이 시기는 고려 사회의 대내외적 모순이 절정을 향하고있을 때였지요. 외적으로는 요나라의 수차례에 걸친 침공을 경험한데 이어 요나라의 뒤를 이은 금나라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고, 내적으로는 무신정변이라는 살육에 의한 지배층의 교체와 1190년(명종20)부터 시작되어 진행 중에 있던 민란으로 인해 고려 국가가 분열의 위기를 맞고 있기도 했구요. 이런 대내외적 정서가 이규보의 `동명왕편` 창작의 배경으로 작용하였음은 분명한 일입니다.

이 시절 이규보는 비록 과거시험에 합격은 하였으나 아직 관직에는 오르지 못하고 있었는데, 2년 전인 1191년(명종21), 아버지를 여읜 후로부터 개성 근교에 있는 천마산에 들어가 백운거사(白雲居士)라 스스로 호를 짓고 시와 술에 몰두하여 한가로운 날을 보내면서 대뇌외적 모순에 당면한 고려 사회를 관조하고 있었습니다. `구삼국사(舊三國史)`를 구해 읽고 동명왕의 사실에 대해 감명을 받는 등 고려인으로서의, 또 문학 청년으로서의 진지한 정열을 불태우던 시기가 바로 이때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일생을 통하여 관직에의 강렬한 욕구를 보여 당시 무신정권의 권력가인 최충헌 가문에 밀착되기까지 하였고, 그 결과 70세에 상국(相國)의 지위로서 은퇴하기까지 평탄한 벼슬살이를 할 정도로 철저한 현실주의자인 이규보의 성향으로 볼 때 진지한 정열을 불태우던 시절에 대내외적 모순을 극복할 상념에 젖고, 그것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함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인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이규보와 같이 현실에 뜻있는 고려 지식인들이 고려 사회가 당시에 맞고 있었던 위기의 원인을 상념한 관점을 추정하여 `동명왕편`의 창작 동기를 민족의식의 고양, 또는 국가의식의 발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동명왕편의 지은 동기는 서문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럼 서문부터 제시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