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애국계몽운동
애국계몽운동은 사회진화론에 바탕을 두고 과거 개화파였던 사람들의 이념을 계승, 발전 시킨 형태라 할 수 있다. 주로 교육과 산업, 언론 활동 등을 통해 국민들을 계몽시키고 실력을 양성하여 자주적인 근대 국가를 수립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독립협회는 정치단체이지 애국계몽단체로 분류하지 않는다.
대표적인 애국 계몽단체는 아래와 같다
1) 보안회(1904) :
일본이 러일전쟁 때 군용지 조차, 철도 부설 등의 구실을 내세우고, 오랜 전통이었던 개간을 통한 경작권(耕作權 : 농사지을 권리, 실질적으로는 소유권)을 획득하려 하자, 농광회사를 조직하여 대항하였다. 보안회의 농광회사는 몇몇 안되는 성공사례이니 꼭 알아두자.
2) 헌정연구회(1905) -> 대한 자강회(1906) -> 대한 협회(1907)
헌정(憲政), 즉 헌법정치를 주장한 단체다. 고종이 살아있었음으로 그 때 당시의 헌법정치는 입헌군주제를 뜻하는 것이었으며, 헌법을 통한 국민의 민권 확대를 주장하였다. 헌정연구회는 대한 자강회로 이어졌다.
대한 자강회는 고종 강제퇴위 반대 운동을 전개하였으나 일본 통감부의 강제로 해산되었가 대한협회로 다시금 계승되었다.
3) 신민회(1907 ~ 1911)
안창호, 양기탁 등이 평안도 중심으로 조직한 공화정을 처음으로 주장한 조직이다. 아무래도 그 때 당시에도 고종은 건재했고, 순종 또한 왕위를 이어받은 상황이었음으로 공화정을 주장한다는 것은 대한제국으로부터도 곱지 않은 눈길을 사게 됐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비밀결사로 활동했다고 생각된다. 전국적으로 퍼져 상당한 규모의 단체에 이르르게 된다. 그들은 여타 애국단체와 같이 태극서(점(書店))관, (도)자기회사 등의 회사를 경영하였고, 대성, 오산학교 등을 세워 민족 교육을 실시하였다. 신민회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여타 애국 계몽단체와는 달리 무장독립투쟁에도 상당히 호의적이어서 해외에 독립운동기지를 건설하였다.(의병활동을 직접적으로 지원한 것은 아니다. 착각하지 말자.)
신민회는 1911년, 안중근의 사촌형제였던 안명근이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기 위해 돌아다니다 일본경찰에게 잡혔고(안악사건), 일본은 조작된 총독 암살을 조작하여 평양도에 있던 배일(일본을 배척하는) 지식인들 105인을 잡아들이게 된다(105인 사건). 공교롭게도 그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민회의 멤버였고, 더 이상 비밀결사의 의미가 없어지자 해산하였다. 신민회는 1911년 해산하였고, 이후에 이루어지는 독립군 기지 건설은 엄격히 말하자면 전(前) 신민회 멤버들이 했다는 것이지 신민회가 직접했다고 하는 것은 사실과 거리가 멀었다 하겠다.
14. 일본과 청의 경제 침탈
1) 무역
개항 직후의 무역은 크게 3분기로 나눌 수 있다. 개항(18760), 임오군란(1882), 청일전쟁(1894)이 그것이다.
가) 개항(1876), 시장점유정도 : 일 > 청
강화도조약으로 조선을 개항시킨 일본은 우선 경제적인 침략부터 시작하였다. 개항 직후에는 일본인이 활동할 수 있는 범위가 개항장 주변 10리로 제한(거류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주로 개항장 주변에서의 경제적 침략이 두드러졌다. 그 당시 일본의 공업이라는 것도 한심한 수준이었기 때문에 주로 영국산 면제품 따위를 상하이, 홍콩 등에서 영국상인들에게부터 구입하여 국내 시장에 중계하여 팔아넘겼다.(중계무역) 하지만, 일본인들의 활동범위는 거류지로 제한되어 있음으로 일본상인들이 사들인 영국 면제품들은 토착 상인(여각, 객주, 보부상) 등을 통해 국내에 널리 유통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일 - 여각, 객주, 보부상 - 조선인 소비자'의 형태를 중계무역이라고 하지 않고, 앞에서 말한 '영 - 일 - 조선', 이러한 형태를 일본이 중계무역 했다고 하는 것이다. 주 수입품은 면제품이었음으로, 우리나라의 면화생산, 가내 수공업등은 큰 타격을 입게 된다.
( * 주의 : 지주는 개항이 되었어도 수입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거류지의 일본인들은 고리대나 선대제(혹은 입도선매(立稻先賣 : 곡물 따위가 논에 서있(立)을 때 미리 사들임)을 통해 폭리를 취하고 터무니 없는 가격으로 쌀을 사갔다. 이러한 형태를 '약탈적 무역' 이라 한다.
나) 임오군란(1882), 시장점유도 : 일 ≒ 청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으로 인해 청나라 상인들의 내지(內地, 조선 내지) 통상이 가능해지자, 중간과정인 객주, 여각, 보부상 따위를 거쳐갈 필요가 없어졌으므로, 객주, 보부상, 여각과 우리나라 고유의 토착상인들은 차차 몰락하게 되거나 그들끼리 힘을 합쳐 근대적 상인으로 도약하게 된다.(황국협회 -> 공진회 -> 황국중앙총상회(1898) 등) 청 상인 뿐만 아니라 일본의 상인들까지도 내지 통상권을 얻게 되는데, 그 이후로는 청 상인과 일본 상인들의 본격적인 대결구도가 성립되게 된다.
참고로 황국중앙총상회가 거의 10년 뒤에나 생기게 된 것은 민중의식의 성장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다) 청일전쟁(1894) 이후, 시정점유도 : 일본 독점
청일 전쟁에서의 청나라의 패배는 상인들의 대립에도 영향을 끼쳤다. 종이 호랑이임 드러나게된 청나라와 청나라 상인들은 조선에서의 입지가 곤란하게 되어 물러갔다. 삼국간섭에서 고개를 떨굴 수 밖에 없는 일본이었긴 하지만, 실질적으로 이 때부터 거의 일본의 지배는 굳어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라) 수출입 경향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개항 이후에는 산업혁명의 상징인 대량의 면제품이 일본상인들을 통해 들어오게 된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 쌀, 콩, 쇠가죽과 같은 원자재(1차 산업에서 얻어진 결과물)을 수출하게 되는데, 개항 직후 같은 경우는 쇠가죽의 수출량이 제일 많았다. 하지만 점점 일본이 산업화에 성공해 감에 따라, 수출에 있어서도 일본 자국의 면제품의 비율을 높이고, 영국산 면제품의 비율을 점점 줄여간다. 당시 산업사회로 거듭나고 있던 일본은 저임금 정책을 유지하기 위해 저곡가 정책을 폈으며, 그러므로 인해 우리나라에서 사가는 쌀의 양도 개항 직후와 비교하여 압도적인 차이를 나타내었다.(수출량의 50%, 혹은 그 이상정도.)
2) 이권침탈
이권 침탈은 아관 파천 이후 최혜국 대우 조항의 악용으로 가속화 되었다. 주로 눈여겨 볼 것은 철도, 산림 채벌권, 광산 채굴권 등이 있는데, 철도 같은 경우 철도 부설권을 맨 처음 누가 얻었던 간에 '결국' 일본으로 넘어가게 되고, 산림 채벌권은 러시아의 독점으로,압록강, 두만강, 울릉도 등의 산림을 채벌할 수 있었지만, 러일전쟁에서 일본에게 패배하자, 포츠머스 강화조약(조선에서의 모든 이권을 일본에게 양도하고, 신경 끄기로 함.)에서 일본에게 양도하였다. 광산 같은 경우 '노다지'로 유명한 운산 광산 정도를 미국이 관리하였다는 것만 알아두면 될 것 같다.
3) 토지 약탈
토지약탈 역시 무역처럼 개항 직후, 청일전쟁 후, 러일 전쟁 기간 3분기로 나눠볼 수 있다. 일본인들은 개항 직후는 거류지 내에서만 활동할 수 있었으므로, 거류지 안에 있는 조선인들을 상대로 하여 고리대를 하여, 그 돈을 갚지 못하는 사람들의 땅이나 집 등을 빼앗아갔다. 청일전쟁 이후, 일본인들은 거류지 제한도 없어지고 라이벌이었던 청을 몰아냈음으로 최대의 곡창지역이었던 전주, 나주, 군산 일대에 대규모의 농장을 손쉽게 경영할 수있었다. 러일전쟁 기간에는 철도 부지와 군용지(軍用地, 한일의정서(1904) 내용 中)를 명분으로 대규모의 토지를 약탈하였다.
4) 화폐 정리 사업(1905, 2006 수능)
1차 한일협약으로 고문정치가 시작됨으로써, 일본인 제정 고문 메가타와 친일 미국인 스티븐슨이 외교고문으로 일본으로부터 파견되었다. 제정 고문인 메가타는 당시 우리나라의 화폐와 유통 구조가 구시대의 그것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하면서 화폐와 화폐의 유통을근대화 시킨다는 명목으로 화폐정리 사업을 시작하였다.(1905) 화폐정리사업은 당시 유통되고 있던 조선의 상태를 고려하여 백동화를 제일(Not 現 제일, 일본 은행) 은행권으로 교환하였는데, 대부분의 백동화가 상태가 좋지 않다(이른바 악화, 惡貨)는 구실로 교환을 주지 않아, 실질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제일은행권(이른바 양화, 良貨)이 귀해지면서 물가가 폭등하였다(2006 수능). 그와 함께 국내 은행과 각종 민간 회사 등이 모두 도산하기도 하으며 우리나라가 발권력(돈을 뽑아내는 능력)을 상실함으로써, 일본에 대한 경제적인 예속이 심화되었다.
Tip. 고문들
1.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으로 왔던 고문
1) 마진창 : 청인
2) 묄렌도르프 : 청이 파견한 독일인. 외교고문. 후에 한러 통상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2. 한일협약(1904)
1) 메가타 : 일본인, 화폐정리사업
2) 스티븐슨 : 친일 미국인. 끝내 전명훈, 장일환 의사에 의해 제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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