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근현대사 사료
1971. 김대중의 후보연설(4.27 장충단 유세문)
서울시민여러분, 그동안 나는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 모든 국민들이 이번에야말로 기어이 정권교체를 이룩하자고 경상도에서, 전라도에서, 그리고 충청, 경기, 강원지방에서 궐기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필승의 신념을 가지고 싸웠지만 여기 장충공원에 모인 1백만 명을 넘는 세계에 유래가 없는 시민의 함성을 보고 우리의 승리는 이미 결정됐다는 것을 확인했다. 만일 이번에 정권교체를 이루지 못한다면 이 나라는 박정희씨의 영구집권의 총통체제로 바뀐다. 공화당은 이미 지난번 개헌 때 박정희씨를 남북통일이 될 때까지 대통령으로 있게 하려고 하였으나 당내의 반대, 야당 및 국민의 반발이 두려워 우선 3선 허용 정도로 끝났다. 나는 그들이 재집권하면 앞으로는 선거조차 없는 총통체제가 온다는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 야당 또한 이번 선거에서 지면 더 이상 싸울 힘이 없다. 따라서 이번 선거는 이 땅에 민주주의가 존속하고 발전하느냐의 마지막 기회다. 나는 집권하면 독재체제를 단호히 일소하겠다. 헌법을 고쳐 대통령은 2선 이상 못하도록 환원시키겠다. 그들의 주장대로 박대통령이 없으면 이 나라는 반공도, 국방도, 건설도 안된다면 만일 박대통령에게 내일이라도 무슨 일이 생긴다면 대한민국은 간판 내리고 문 닫아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여기서 민주주의의 근본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당선되면 또 알 수가 없다. 청와대라는 곳이 터가 나쁜지 그곳에 들어가는 사람마다 약속을 어기고 3선개헌을 했다. 박대통령의 4년 전 나의 선거구인 목포에 와서 "내가 3선개헌을 하려 한다느니 하는 것은 야당사람들의 모략이며 3선개헌은 절대로 안한다"고 말하더니 2년도 못돼 절대로 안한다던 3선개헌을 절대로 해버렸던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또 대통령이 되면 주위에 아부꾼이 생겨 논이 어두워질 수도 있다. 마치 공화당의 윤 모씨처럼 이승만 박사 때는 그분을 보고 '건국 이래의 영웅' 이라더니 박정권에서도 박대통령을 가리켜 '단군 이래의 대통령'이라고 한 사람이 내가 집권하면 또 내게 와서 '김대중 대통령은 천지개벽 이래의 영도자'라고 말 안하리란 보장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비록 장기집권의 욕심이 있더라도 3선금지 조항에 손을 못 대도록 헌법부칙에 3선금지 조항은 개정할 수 없다는 명문규정을 두도록 하겠다. 나는 정권을 잡으면 정보정치를 일소하겠다. 지금 이나라는 말만 백성이 주인이지 사실상 민주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시골에 가면 정보기관의 눈이 무서워 국민들은 야당 유세장에도 나오지 못하고 또 나왔다 하더라도 박수 한번 제대로 못 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정보정치, 암흑정치의 총본산인 정보기관을 없애겠다. 그들은 언론을 장악, 사실보도를 못하도록 강압하고 있으며 부정선거를 지휘하고 야당을 분열시키고 탄압할 뿐 아니라 심지어는 여당사람까지도 갖은 박해를 가하고 있다. 지난 3선개헌 때 정보기관은 어떻게 했는가? 개헌에 반대하는 여당의원들을 정보기관의 지하실로 몰고가 발길로 차고 몽둥이로 때려 강요했다. 개헌에 반대한다면서 탈당까지 했던 김종필씨가 오늘날 유세에서 자기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고 다니는 것도 모두 정보정치이의 한 소산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의 현실이다. 그뿐인가. 학원에 간섭하고, 경제계에도 작용, 모든 이권과 은행융자에까지 간여하고 있다. 그들은 기업인들에게 '김대중에게 정치자금을 주지 마라. 만약 주는 날이면 사업을 모두 망쳐놓겠다.'고 협박, 각서를 받고 또 '이런 사실을 밖에 나가서 말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또 한 장 받고 있다. 나는 집권하면 잡으라는 공산당은 안잡고 국민의 자유를 짓밟고 이 나라를 암흑정치로 몰고가는 정보기관을 단호히 폐지하겠다는 것을 거듭 약속한다. 공화당은 반공, 반공하면서 마치 반공을 자기네 혼자서 하는 듯이 떠들어대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독재정치는 우리가 무엇 때문에 반공을 하느냐는 의의를 상실케 하고 있다. 그것은 독재, 썩은 정치, 특권경제 등이 바로 공산당의 온상이 되며, 결과적으로 공산당을 키워주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정보기관이나 경찰의 정보과는 잡으라는 간첩은 안잡고, 전국적으로 밤잠을 안자고 혈안이 되어 잡으려는 것은 이 김대중뿐이다. 그뿐 아니라 국군을 정치적으로 악용, 군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전력이 저하되어 사고가 빈발하고 있다. 또 미의회나 국민간에는 '차라리 한국을 포기하자'는 여론이 일고 있으며 유엔에서는 겨우 과반수의 지지를 얻고 있는 정도이다.이러한 박정권의 여러 상황 속에서 진정한 안보란 있을 수 없다. 나는 집권하면 이러한 사태를 시정, 1년 이내에 국방태세 및 반공태세를 완비할 복안을 가지고 있다. 이 자리에서 책임있는 중요한 말을 하나 하겠다. 북괴 김일성이는 적어도 10년 내에는 절대로 휴전선을 넘어 남침을 못한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그럴 힘도 없거니와 아시아에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일본의 재무장이 불가피하다고 볼 때 이를 두려워하고 있는 중공과 소련이 김일성의 불장난을 제어하기 때문이다. 더욱 의미있는 것은 세계는 평화지향적이다. 최근 미국과 중공의 접근 무드를 보라. 심지어 닉슨 대통령 자신이 중공을 방문하고 싶다고 그랬고 딸의 신혼여행을 중공으로 보내소 싶다고까지 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다만 우리 내부의 불만, 불평, 불신 등의 사고다. 우리는 정치를 잘 해서 이 사고를 미리 막아야 하며 그것은 정권교체를 통해서만이 가능한 것이다. 나는 집권하면 향토예비군과 교련제도를 완전히 폐지하겠다. 향군이 경찰서 보초나 서고 중대장이 정보기관에 소집되어 야당 대통령후보 때려잡는 교육이나 받고, 한달에 돈 3천원, 5천원만 주면 훈련에 안나가도 다 도장 찍어주는 그런 예비군은 필요없다. 이는 오직 국민을 군사적 조직체로 묶어 반항을 못하게 하고 이 나라를 독재체제로 끌고 가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므로, 또 2중 병역의무요, 헌법위반이기 때문에 단호히 전면 폐지하겠다. 교련 역시 마찬가지다. 병역 기피자가 30만명이고 제2보충역이 40만명인데 무엇 때문에 대학생을 괴롭히는가. 요즘 대학교는 학교인지, 군대인지구별을 못할 정도다. 이 역시 정의감과 민주적 신념이 강한 대학생을 군사조직으로 꽉 묶어 반항 못하도록 하기 위한 짓이다. 나는 저들이 이 교련반대 데모를 거꾸로 선거에 악용할 것을 우려한다. 공화당은 요즘 나의 정책에 대해 일일이 트집만 잡고 있다. 이것은 그들이 국민 앞에 내세울 밑천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4대국 안전보장책을 제시한 것은 이땅에 제2의 노일, 청일전쟁, 제2의 6, 25를 초래하지 말자는 것인데 그것이 무엇이 나쁘단 말인가. 또 남북교류문제만 해도 김일성 파괴분자를 남침 안 시키고 침략 야욕을 포기한다면 동포끼리 기자, 체육 등 분야에서 서로 교류하고 편지라도 주고받자는 것이다. 세계에서 같은 민족끼리 편지조차 못하는 나라는 우리뿐인 것을 알아야 한다. 박대통령은 70년대 후반기에 신의주까지 고속도로를 놓는다느니, 금강산을 공동 개발한다느니 운운하고 있는데 무슨 잠꼬대 같은 솔직히 알 수가 없다. 지금 국제정세는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 미국의 저명한 학자, 정치인들도 나의; 이러한 안보론에 적극 찬의를 표하고 있으며 닉슨 대통령도 이미 지난 연초의 연두교서에서 아시아의 안보는 이 4대국에 달려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적어도 대통령이라면 국내정치에 안보를 악용하려 하지 말고 국제정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세계정세가 앞으로 10년, 20년 후에는 어떻게 될 것인지 앞을 내다보는 대통령학을 공부해야 될 것 아닌가. 공화당은 '중단 없는 전진'을 내걸고 있지만 민주주의도, 남북통일도 농촌, 중소기업들 모두가 후퇴하고 있는데 오직 전진하는 것이 있다는 것은 부정부패다. 나는 되도록 박대통령의 개인인격에 관한 것은 말하고 싶지 않지만 다만 박대통령은 부정부패에 아무 책임이 없고 주위사람이 썩었다는 말은 참을 수가 없다. 박대통령은 부정부패에 관한 법적, 행정적 책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의 책임까지 지고 있다. 바로 박대통령의 측근들이 몇십억원, 몇백억원씩 축재하고 있는데 어째서 박대통령이 책임이 없다는 말인가. 게다가 신문, 방송, 대학교등 5백억원의 재산을 가진 5, 16 장학회가 개인 것이라는 것이 그 사정을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 장학회는 말만 장학회지 갖은 특혜를 다 받으면서도 실제 장학금은 5백억원 재산의 5백분의 1인 1억원의 정기예금 금리 2천4백만원뿐인 것이다. 또 부정부패해서 긁어모은 돈은 일단 집권자의 손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부정선거하는 데 쓰여지고 있다. 청와대에서 지난번 2억원이상 350억원까지의 부정축재 공직자를 조사했더니 여당 정치인이 3백명이나 나왔다. 박씨는 지금 그 명단을 손에 쥐고 있지만 손을 댔다가는 공화당이 머리에서부터 꽁지까지 결딴이 날 것이기 때문에 손도 못대고 있다. 나는 대통령이 되면 내 단독으로 부정부패에 대한 전책임을 지겠다. 나의 재산을 공개등록하고 부정부패 추방법을 만들어 전국에 민간인이 참여하는 부정부패 적발위를 두고 정치와 행정의 부정을 적발하겠다. 이렇게 해서 나는 국민 여러분의 협조 아래 이 부정부패를 이 땅에서 뿌리째 뽑아 없앨 것을 여러분께 제의한다. 나는 정권을 잡으면 국내외에 걸친 민주거국 내각을 구성하겠으며 군대를 완전히 장악하겠다. 나는 내가 이번 선거에 승리했을 때 군대가 전면적으로 나를 지지하고 3군 총사령관이 나의 명령에 복종하도록 국내외의 완전한 보장을 받고 있으니 국민 여러분은 그런 말에 현혹되지 말기 바란다. 또 어떤 사람들은 신민당의 집권능력을 운위하고 있다. 5, 16 당시 국민은 박정희 소장의 이름조차 몰랐다. 그런 사람이 지난 10년동안 정치를 해왔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공화당은 인위적으로 경쟁자를 없앤 채 독주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우리 신민당을 보라. 우리의 위대한 지도자 유진산 당수께서 작년 지명대회에서 나를 후보로 밀지 않았지만 일단 결정이 내려진 뒤 70노구를 이끌고 전국대도시를 자식 같은 나와 함께 순회했고, 나와 경쟁했던 김영삼, 이철승 동지는 지금 이 나라에서 합석을 못하면서 경상도에서 전라도에서 뛰고 있다. 이제 부정선거 해볼 테면 해보라. 부정선거 할 테면 해보란 말이다. 만일 끝까지 부정선거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이 열화 같은 국민의 열망을 짓밟았다가는 제2의 이승만 정권의 말로를, 제2의 4,19를 각오하라는 그말이다. 4,19는 학생이 일으켰다. 5, 16은 군인들이 일으켰다. 그러나 4, 27혁명은 학생도 군인도 아닌 전국민의 협력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하여 5천년 역사상 처음으로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룩하자는 이러한 나의 뜻에 마음을 같이하는 국민이여 박수를 보내달라.나는 기어코 승리할 것이다. 그리고 여러분은 나와 함께 승리할 것이다. 여러분, 오는 7월 1일 새로운 대통령의 취임식에 청와대에서 만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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