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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풀이/역사 사료와 데이터

김부식의 삼국사기

 

삼국사기

1145년(인종 23) 국왕의 명령을 받은 김부식의 주도 아래 최산보(崔山甫) 등 8명의 참고(參考)와 김충효(金忠孝) 등 2명의 관구(管勾)가 편찬하였다. 이들은 자료의 수집과 정리에서 함께 작업했지만, 〈진삼국사기표(進三國史記表)〉와 머리말, 논찬(論贊) 및 사료의 선택, 인물의 평가 등은 김부식이 직접 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진삼국사기표〉에는 "사대부가 우리 역사를 잘 알지 못하니 유감이다. 중국 사서는 우리나라 사실을 간략히 적었고, 《고기(古記)》는 내용이 졸렬하므로 왕·신하·백성의 잘잘못을 가려 규범을 후세에 남기지 못하고 있다"고 하여 편찬 동기를 기록하고 있다.

구성은 크게 본기(本紀) 28권, 지(志) 9권, 연표(年表) 3권, 열전(列傳) 10권으로 이루어졌다.

그동안 이 책에서 가장 주목되어 왔던 것은 사론(史論)의 성격을 지닌 논찬(論贊)이다. 논찬은 신라본기 10개, 고구려본기 7개, 백제본기 6개, 열전 8개 등 모두 31개가 있다.

내용은 주로 유교적 덕치주의, 군신의 행동, 사대적인 예절 등 유교적 명분과 춘추대의를 견지한 것이지만 반면에 한국 역사의 독자성을 고려한 현실주의적 입장을 띠고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책은 신채호 등이 비난한 것처럼 사대적인 악서(惡書)는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책이 단순히 사대주의의 산물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은 이것이 편찬된 시기와도 관련된다. 즉 이 책은 고려 귀족문화가 최고로 발전하던 시기의 산물이었다. 이런 시대는 대체로 전 시기의 역사를 정리하는 때인데, 특히 당시에는 거란 및 여진과 전쟁한 뒤 강력한 국가의식이 대두하던 시기였다. 그러므로 이 책은 단지 유교정치 이념의 실현만이 아니라 국가의식의 구현이라는 차원에서 편찬되었던 것이다.

그밖에도 전근대 역사서의 특징인 술이부작(述而不作)의 객관성을 유지했는데, 이를 유지하기 위해 《고기》, 《신라고사(新羅古史)》, 《구삼국사(舊三國史)》, 《삼한고기(三韓古記)》와 최치원의 《제왕연대력(帝王年代曆)》 및 김대문의 《화랑세기》, 《고승전》, 《계림잡전》과 《삼국지》, 《후한서》, 《위서(魏書)》, 《진서(晉書)》, 《송서(宋書)》, 《남북사(南北史)》, 《구당서》, 《신당서》, 《자치통감》 등을 이용하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이 책은 오히려 한국 전근대 역사서술을 한 차원 높여주는 역할을 했는데 이 점은, 첫째 삼국을 1세기부터 완성된 국가로 파악하고 국왕을 절대적 지배자로 이해했으며, 둘째 천재지변과 인간활동을 연결시키면서 역사를 바라보고 국왕의 정치행동을 연결시켰으며, 셋째 역사를 교훈을 위한 것으로 파악했으며, 넷째 강한 국가의식과 자아의식을 강조하였고, 다섯째 역사에서의 개인의 역할을 강조하였다는 것에 잘 나타난다.

책은 1174년(명종 4) 사신을 통해 송나라에 보냈다는 기록으로 보아 이전에 초판을 간행했음을 알 수 있다. 그 뒤 13세기 후반에 성암본(誠庵本)이 만들어졌는데, 현재는 일부만 일본 궁내청(宮內廳)에 소장되어 있다. 다음으로 1394년(태조 3)에 3차 간행, 1512년(중종 7)에 4차 간행이 있었다. 4차 간행은 현재 완질의 형태로 옥산서원과 이병익(李炳翼)이 소장하고 있다. 그리고 1760년(영조 36)에 간행된 것이 있는데, 러시아과학원 동방연구소 상트페테르부르크지부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1995년 서울대학교 허성도(許成道)가 25년의 노력 끝에 CD-ROM책을 출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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