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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 공포를 내려놓은 공포영화의 실험은 성공할까?

고양이 : 죽음을 보는 두 개의 눈

1. 공포를 내려놓은 공포 영화의 실험

고양이를 생각하면서 떠오르는 공포소설이 있다면 에드가 엘런포우의 '검은 고양이'일 것이다. 시체와 함께 벽에 밀봉된 고양이의 저주는 고양이를 요사스런 동물이라는 인식을 주었다.

2011년. 시체와 함께 갇힌 고양이들이 나오는 영화 '고양이'는 그 스케일이 엘런포우와는 사뭇 다르며, 영화의 의미는 소설과 정반대로 흘러간다.  21세기에 엄청난 숫자의 고양이들이 시체와 함께 밀봉되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 '고양이'는 개봉하기도 전에 동물 애호가들의 테러를 받아서 각 사이트에 평점 0점이 난무하는 특이한 이력을 남긴 영화가 되었다. 그 이유는 엘런포우의 소설을 연상하면서 애완동물에 대한 인식이 나빠질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리라...

'고양이가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데 이런 영화를.... 이 영화에 저주를 내릴거야!!!'  라고...

그러나 영화평론가들은 이 영화를 가장 기대되는 공포영화로 꼽았으며, 동물 애호가들의 생각도 영화를 보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애완동물로 친숙해진 고양이는 21세기에도 요물로서 저주를 내리는 동물인 것일까?

이 영화에서는 매니아들이 원하는 공포스러운 장면들이 많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더 나의 심장을 쫀득하게 자극해주세요' 라고 갈구하는 눈빛을 가진 매니아들이 실망할 듯 하다. 그럼 뭘로 공포영화라는 걸 증명하느냐구?

이 영화는 특이하게도 '좀 생각해봐야 전체 구성을 파악할 수 있는' 스토리 구조와 미스테리를 추적하는 전개방식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반면, 공포스러운 장면은 스토리 흐름상 꼭 필요한 부분에만 나오기 때문에, 경험이 많은 호러 영화광들은 어디서 무서운 장면이 나올 것인지 예측이 가능할 정도이다.

아니, 아예 '지금부터 5초후 무서운 장면이 시작되니 집중해주세요' 라고 설명해주는 듯 공포스러운 장면은 예고배경음과 함께 등장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이것이 과연 감독의 의도일까, 아니면  감독의 실수일까를 알아 맞추는 것이었다.

자, 그럼 한번 생각해보자. 공포영화의 공식은 관객석에서 지속적으로 '까악~'하는 소리가 나오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그런 공포영화가 대박을 쳤을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공포영화는 그 특성상 보는 계층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백만관객이면 소위 대박이라고 한다. 보통 50-100만 정도 평작을 하는 영화는 보다가 '깍~' 소리 나는 영화들이다.

그러나 진짜 대박 공포영화는 오히려 공포의 수위를 낮추고 다른 장르의 구조를 섞어서 넣어둔 영화들이다. 예를 들어 공포영화 최고 히트작으로 300만 관객을 돌파한 '장화홍련'은 공포라는 부분과 드라마라는 부분을 나누어 구성했다. 부모와 함께 지내는 공간은 일상적인 생활공간으로 드라마가 지속되고, 밀폐된 공간에서 구성되는 임수정과 문근영의 공간은 공포와 미스테리의 공간이다. 그리고 흥행의 비밀병기는 이 분리된 공간들 중 밀폐된 공간의 생활은 주인공의 상상이었다는 '반전'에 있었다.

공포만을 극대화한 영화는 100만 관객 이상을 기대하기 힘들다. 그러나 일반인들이 부담없이 볼 수 있는 평범한 공포와 탄탄한 영화 구조는 매니아층 외에 일반 관객을 불러모은다. 올해 상반기 공포영화 히트작인 화이트는 색다르고 다양한 공포를 통해 약 80만 관객을 불러모은 상태로 막을 내릴 예정이다. 반면, 다소 공포 수위가 낮추고 다른 부분으로 채우려고 한 고양이의 실험은 얼마나 관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까?

2. 초짜 영화의 색다른 맛

공포영화광들이라면 이 영화의 구조 뿐 아니라 인물들도 매우 생소할 것이다. 이제 갓 졸업한 작가의 졸업작품이 영화가 되었고, 공포영화를 처음 제작하는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으며, 박민영은 이 작품이 영화 데뷔작이다. 아역배우 김애론은 생애 첫 연기를 여기서 했다.

그러나 그들이 완전 생짜는 아니다. 장윤미 작가의 졸업 작품은 시, 밀양 등으로 해외에서 인정받은 이창동 감독이 극찬한 시나리오였다. 김동욱은 공포영화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충무로에서 이미 인정받은 시나리오에 반해서 출연했다고 밝힌바 있다. 변승욱 감독은 이전 작품에서 가능성 있는 감독으로 인정을 받았고, 박민영은 영화경험은 없지만 성균관 스캔들, 시티헌터 등으로 연기의 폭을 넓히면서 주가를 올리는 배우이다.

'이 조합은 전혀 공포영화 스타일이 아니잖아요' 를 외칠 수도 있겠고, '누가 이 공포영화를 공포스럽게 이끌어가지?' 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겠다. 그러나 영화를 본 후 그런 생각은 기우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 영화는 비록 자극적이고, '깜놀' 정도의 공포는 아니지만 공포장르라는 큰 틀은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잘 전달하였다.

하나 아쉬운 점은, 차라리 공포영화가 아니라 추리물 영화로 기준을 잡으면서 공포를 섞어주었으면 그 공포가 더욱 극대화되면서도 하고픈 말을 100% 전달하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관객들은 이미 공포영화라고 전제를 깔고 와서 보기 때문에 이 영화를 다른 각도에서 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 또 공포영화라고 규정된 특성상 다양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풀어놓을 수가 없는 '족쇄'를 차기 때문이다.

3. 알게 모르게 흩어져있는 조각들

이 영화는 하나의 스토리가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최소 3개 이상의 별도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는 듯 하다. 즉, 시간과 공간이 각자 다른 스토리가 있는데, 그 스토리가 점차 하나로 모이면서 말하고자 하는 큰 주제로 향해 간다. 그 3가지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1번. 박민영(소연)이 당한 아동학대와 폐쇄 공황 이야기

2번. 동물을 분양하는 팻숍과 동물을 살처분하는 처리장 이야기

3번. 514동 아파트에 얽힌 아동학대, 동물학대 이야기

원래 이 영화의 첫 이야기는 1번 이야기인 박민영 이야기인 듯 싶다. 그런데, 1번 이야기는 영화 처음과 중간 중간에 잠깐씩만 나오고 막판에는 박민영이 왜 아버지에게 학대당하고 병을 얻게 되었는지가 생략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1번 스토리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도대체 박민영이 아버지와 무슨 관계인 것인지 궁금할 수 밖에 없다. 추론하자면, 3번 이야기의 아동학대와 비슷한 상황이 있었을 것이라는 점 정도이다.

그 이유는 영화 러닝타임으로 쉽게 설명할 수 있다. 원래 공포영화는 80분 정도가 적당하며 100분을 넘기지 않는다. 100분이 넘게 '악악~' 거리면 영화 막판에 피로감이 쌓이기 때문이다. 또, 공포영화는 특성상 극장당 1개관 정도를 대여하는데 러닝타임이 길면 하루 상영 횟수가 줄어든다. 2시 30분짜리 영화인 트랜스포머3 와 같은 대작은 3배 이상 상영관을 대여하기 때문에 긴 상영 시간이 가능하다. 백만명을 노리는 영화가 천만명을 노리는 영화처럼 2시간 상영을 하면 관객을 모을 시간이 없다.

스토리에 치중하는 고양이는 상영시간이 이미 100분을 훌쩍 넘긴다. 박민영에 관련된 1번 스토리가 생략된 이유는 그것 때문일 것이다. 탄탄한 스토리 그대로 영화를 만든다면 150분은 족히 필요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탄탄한 줄거리로 긴장감을 주었더라도 막판에 결론이 빠져 있다면 영화를 본 이들은 전체 구성이 미흡하다고 생각하거나, 발편집을 했다고 여길 수 밖에 없다. 고양이를 '러닝타임'이 제한된 공포영화가 아니라 다른 장르를 표방해서 하고픈 이야기를 다 보여주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2번 이야기는 애완동물에 관심이 없는 팻숍 미용사와 가게 주인, 아무 감정없이 동물을 살처분하는 남자를 통해 본 애완동물의 실상이다. 이 이야기는 3번째 이야기와 합쳐지기 전까지 고양이들과 관련된 미스테리를 추적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

3번의 이야기는 공포의 근원이자 사건의 발단인 아파트에 대한 이야기이다. 줄거리를 다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이 아파트 주민들은 다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동일한 여인에게서도 이중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고양이는 사랑스러운 애완동물이지만, 늙어서 버려지면 더러운 짐승이라는 인식이 보인다. 또한 학대당하는 소녀는 학교가 끝나도 집에 들어가기를 꺼려하면서 고양이들과 놀 수밖에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고양이와 소녀는 동반자이자 친구이지만, 세상은 그들을 밀폐시키려고 한다.

이 모든 이야기는 '밀폐' 라는 키워드 속에서 박민영의 과거와 현재를 통해 하나의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합쳐지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삶과 죽음. 이해 모두 밀폐된 공간에서 이루어지며, 그것을 극복했을 때 박민영도 병에서 회복되고, 자신의 과거와 부모를 용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관객들이 그 내용을 이해하기 쉽도록 도우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경찰로 나온 김동욱이다. 

  엘런포우 소설의 고양이는 밀폐된 벽 속에서 저주의 눈빛을 하고 있지만, 영화 고양이에서의 고양이들는 인간의 손길을 거부당하고 반항하는 청소년들의 눈빛과 유사하다. (물론 작가나 감독은 엘런포우와 전혀 상관없이 작품을 만들었을 것이다. 소설과 비교하는 건 개인적인 취향 때문이다.)

이창동 감독이 극찬했던 시나리오의 구조는 바로 이 탄탄한 스토리 라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아쉽게도 1번 이야기가 삭제되고, 3번 이야기가 축소되어서 박민영이 사건을 해결하는 현재 관점 위주로 스토리가 구성되어 있는 듯 하다. 공포 영화라는 장르의 한계상 공포를 극대화 하기 위해 핵심 스토리만 가지고 이야기를 전개한 것 같은데, 사실 그것만으로도 이 공포영화는 탄탄한 미스테리 추적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크게 문제될 것이 없었다. 오히려 다른 일반 공포영화보다는 훨씬 훌륭하다는 평가를 내리고 싶다.

  그러나, 이렇게 박민영이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스토리로 영화를 구성했다면, 아예 원 시나리오와 다르게 부차적인 이야기를 다 생략하던가, 아니면 마지막 장면에서 뜬금없이 박민영이 아버지를 만나는 장면을 지워버렸어야 했다.  이 영화는 마지막에 정신병원에서 아버지를 면담하는 장면 때문에, 치밀한 기승전결을 가진 줄거리가 엉성하게 보이는 놀라운 효과를 가져오고야 말았다. (차라리 그 모든 관련 장면을 삭제했다면, 박민영과 김예론 중심으로만 이야기가 돌아가면서 탄탄한 스토리 라인이 살아났을 것이다.)

 
4. 동물을 이용한 상업 영화일까, 고발 영화일까?

사실 공포영화를 놓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왜냐면 기존의 공포영화들은 오로지 공포의 극대화를 위해 소재를 이용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하나의 큰 메시지를 두고, 메시지를 향해 스토리를 전개해가고 있으며, '공포'라는 것을 스토리를 위한 매개체로 활용하고 있다.

만약 고양이를 이용해서 공포를 극대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면 당연히 상업영화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과 관계없이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이상 당연히 상업영화가 맞다. 그러나 이 영화는 고양이가 요물이나 악의 상징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이기심이 낳은 피해자들이라는 것을 보여줌으로서 '고양이'로 보여줄 수 있는 공포감을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 즉, 공포영화라는 틀 안에서도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잃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쓴 흔적이 보인다. 

   사실, 공포심을 심어줄 목적이였다면 고양이를 얼마든지 더 무서운 존재로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서 고양이를 통해서 얼마나 큰 공포를 줄 수 있을까라고 기대한 매니아들에게 '그렇게 섬뜩하게 무섭진 않아' 라는 반응을 받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는 건 탄탄한 시나리오와 메시지로 승부한다는 새로운 전략일 터인데, 위에서 설명한 공포라는 장르의 한계상 그런 부분들도 100% 살려내지는 못하였다.

관객들이 공포영화를 바라보는 눈은 크게 보면 2가지이다. 순간순간의 공포를 통해 스릴을 맛보는 재미에 후한 점수를 주는 관객이 있다. 또, 공포가 전개되는 전체 맥락을 따라가면서 본인이 그 공포를 합리적으로 느끼고 공감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 두가지 관점과 별도로 이 영화는 공포영화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주었다. 이 영화는 뜬끔없는 귀신의 등장이나 자극적인 핏방울을 통해 감정을 끌어낸다는 설정에 무덤덤진 매니아들에게 색다른 공포장르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즉, 한국적 정서와 사회상황에 맞추어 탄탄한 스토리와 구성만으로도 색다른 공포물이 가능하겠구나라는 발상의 전환을 유도한 작품이다. 만약 공포영화에 대한 연구가 더 진행되고, 장르의 한계와 시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퓨전 공포가 가능하다면 '공포영화도 수백만 관객을 이끄는 장르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만약 직접적인 공포가 없는 상태에서도, 전반적으로 흐르는 긴장감만으로 공포 분위기를 끝까지 유지하는 영화가 가능하다면, 탄탄한 스토리를 통해 공포의 원인과 결과를 찾는 과정 자체가 섬뜩한 드라마로 구성할 수 있다면 공포영화도 매니아가 아닌 광범위한 지지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사실 깜짝깜짝 놀랄만한 순간적 공포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추리물이나 미스터리로 된 영화로 공포를 위장하면 거부감 없이 영화를 보기도 한다.)

   이 영화는 자체의 흥행과 상관없이 공포영화에서 다양한 실험과 도전이 계속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 World of History : HISTORI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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