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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전국의 분위기가 어수선한 가운데 어느덧 5월도 18일이 되었습니다.

따뜻한 봄날 여유롭게 나들이 다니던 시절이 그러워지내요!!

가정의 달,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등 5월은 이것 저것 기념할 날들이 많지만

40주년을 맞이한 광주민주화운동을 기념해보고자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코로나 19 물러가라!!

1945년 일제 강점에서의 해방 이후 우리나라는 민주화와 경제발전이라는 두가지 숙제를

받게 되었습니다. 우선적으로 해결하고자 했던 것은 경제문제였습니다. 1950년 이념의 갈등으로

민족간의 전쟁이 발발하고 난 직후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극빈국 대열에 올랐지요.

그러나 수많은 정치적 미숙으로 독재통치가 지속되는 가운데서도 국민들은 잘살고자 노력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철권통치기간 우리는 경제발전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박정희 대통령의 평가는 경제발전이나 군부 독재에 관련된 의견이 분분합니다. 하지만 저는 여기서

어느 한편의 이념을 따르고자 하는것이 아닙니다. 그 어려웠던 시기 국민들의 국민성을 말하고 싶습니다.

정부에서 경제 발전이라는 목표를 내걸자 국민들은 움직였습니다. 외국에 노동자로, 간호사로, 베트남 참전으로

국민들은 외화를 벌어오고, 수출주도형 산업에 국민들이 달려들며 100억불 수출의 금자탑도 세웠습니다.

저는 우리 대한민국의 발전은 항상 국민성에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위기때 힘을 발휘하는 멋진

민족이니까요. 경제가 위기면 국민들이 자기 재산을 털어 경제를 살립니다. 기름이 유출되면 국민들이 모두 기름을

닦으러 모입니다. 월드컵이 열릴때면 온국민이 한마음으로 염원을 보냅니다.

이번 코로나 사태도 마찬가지로 국민들의 참여와 희생이 전세계에서 가장 빨리 코로나를 극복할수 있게 만든 원동력이 아닌가 싶습니다. 역사적으로도 외적이 국가를 혼란케하면 언제나 나섰던 것은 의병이었습니다.

어쨌든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아가는 국민들의 다음 숙제는 민주화였습니다. 반공과 경제발전은 국가가 국민들에게 심어준 목표라면 민주화는 국민들의 염원이었습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 되며 국민들은

문민정부가 올것을 기대했습니다. 당초 10.26의 원인도 국민들의 유신독재에 대한 분노에 이은 부마항쟁이 기폭제였으니까요.

그러나 역사의 흐름은 국민들 뜻대로 진행되진 않았습니다. 신군부가 개입되고 또다른 독재의 시작을 알렸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그 불꽃이 부산, 마산에서 광주로 넘어갔습니다. 광주의 학생들이 민주화를 외치기 시작했고 탄압하던 신군부의 무자비함에 광주시민들이 동참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부는 이들을 용공세력으로 몰고 폭도로 규정하여 진압합니다.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정부의 탄압으로 광주민주화운동은 일단락되었지만 그 불씨는 여전히 살아서 5공화국을 압박하였습니다. 결국은 7년후 6월 항쟁으로 서울의 봄은 찾아왔습니다. 독재의 권력이 영원할 것이라고 믿었던 신군부도 결국은 국민의 뜻에 무너졌으며 현재는 세계적으로 성숙한 민주화를 이뤄낸 것입니다.

광주항쟁 궐기문

코로나로 전국민이 힘든 이시기 우리는 다시한번 뭉치고 있습니다. 위기에 강해지는 민족, 어려움을 단합으로 극복하는 민족이기에 대한민국은 힘이있는 것입니다. 국민들이 힘을 합쳐야할 이 시기에 40주년을 맞이하는 광주 민주화운동을 다시한번 생각하며 이 위기를 잘 극복하기를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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