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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도시우스의 죽음과 로마의 멸망

1. 테오도시우스 1세의 죽음과 로마의 변화

동로마의 테오도스우스황제는 테살로니카 폭동을 제대로 진압하고 이민족을 우대하고 이민족과 로마인이 평등하다는 기본 방침에 어긋나는 로마인들을 가차없이 죽였습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황제권이 약했던 서로마의 발렌티니아누스는 이런 조화로운 정책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프랑크족 장군인 아르보가스트에게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아르보가스트의 반란은 종교문제 때문입니다. 아르보가스트는 이교도인 게르만이었고, 로마 카톨릭 교회가 아리우스파 등과 싸우은 교리 싸움을 지겹게 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기독교를 경멸하면서 이교도를 믿는 유게니우스를 황제로 옹립하려 했지요. 테오도시우스는 이러한 상황을 묵과할 수 없어서 서로마로 쳐들어갔습니다. 그리곤 제우스교(주피터의 번개)를 믿는 이교도 아르보가스트와 유게니우스를 죽여버립니다.

실제 동, 서로마의 진정한 통치자는 테오도스우스였지요. 테오도스우스는 많은 전쟁으로 기운이 약해져서 곧 죽게됩니다. 이 노 황제는 동서로마를 각각 아들들에게 맡깁니다. 서로마는 아르카디우스, 동로마는 호노리우스에게 맡기지만 둘 다 유능하지는 못했습니다. 따라서 동서로마의 황제들은 이민족 장군들에게 의지하게 되는데, 문제는 이민족 장군들의 성향에 따라 국운이 바뀌었다는 점입니다.

이민족 장군중 반달족의 스틸리코는 테오도시우스의 이념에 따라 로마와 이민족을 기독교 이념 속에서 융화시키려고 했습니다. 또 한명의 이민족 장군인 서고트의 알라리크 장군은 스스로 서고트 왕이 되어 로마를 멸망시키고 정권을 잡으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로마 제국의 명장 2명은 로마파와 반로마파로 분리되어 전쟁을 벌였는데, 전쟁은 스틸리코의 일방적 승리로 끝나고 알라리크는 서고트 지역으로 물러나 서고트 왕으로서 재기를 노리게 됩니다. 이후 다른 게르만 족인 동고트, 프랑크 족의 침입도 스틸리코가 막아 버리면서 스틸리코는 황제 다음으로 권력을 잡는 최고의 장군이 되었습니다. 그의 딸은 황후가 되었고, 그는 집정관이 되었습니다.

2. 로마의 위기

스틸리코가 동로마 황제를 능가할 정도로 공로가 많자,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아들이자 무능한 황제 호노리우스는 질투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스틸리코를 죽이기 위해 수백개의 반역죄 덫을 설치하고 스틸리코가 어느 하나의 덫에 걸리기를 기다렸습니다. 로마를 위해 전쟁을 거듭하던 스틸리코는 어느 순간 자신이 반역자가 되어 모시던 황제의 적이 되었다는 것을 안 순간 이미 로마의 군대는 스틸리코를 죽이러 오고 있었습니다. 스틸리코는 성당으로 도망가 부하들에게 자신을 죽일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부하들은 단순히 몇 달 복역하면 된다라고 말했습니다. 부하들 역시 그렇게 생각했으니까요. 그러나 스틸리코가 부하들을 죽일 수 없어서 항복하는 순간, 황제는 '스틸리코를 죽이라'는 명령을 바로 내립니다. 스틸리코가 죽고, 동로마내 모든 게르만 용병들은 로마 군인들에 의해 학살당합니다. 호노리우스 황제는 그를 죽이고 웃었습니다.

그러나 호노리우스가 생각 못한게 있었습니다. 게르만 국가인 서고트족 알라리크가 스틸리코가 죽자마자 다시 쳐들어온 것입니다. 알라리크는 테오도스우스 황제는 존경했고, 스틸리코는 친구였지만 새로운 황제는 경멸하였습니다. 알라리크는 로마 문화는 존경했지만, 망해가는 로마의 비열함을 존경하지는 않았습니다. 알라리크는 이민족이라 차별했던 로마를 박살낼 것인가, 로마 문명만은 후세에 전할 것인가 고민했습니다.

이 때 호노리우스는 알라리크 군대를 막을 방법이 없자, 전쟁의 책임을 스틸리코의 가족에게 돌려 시틸리코의 가족을 모두 죽여 버리고, 제우스신의 제사를 부활하며 기독교인들을 탄압하게 시작했습니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알라리크는 더 이상 동로마를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로마에 총공격 명령을 내리면서 옛 테오도스우스 황제가 세운 교회 시설을 제외한 모든 로마의 문명을 파괴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로마의 타락한 시민들은 모두 도륙당했습니다. 서로마의 문명은 점차 회복불능이 되어갑니다. 살아남은 것은 기독교인들이었고, 로마인들은 죽어가면서 이 기독교인들에게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사건에 충격을 먹어 그 유명한 <신국론>을 저술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특히, 그는 2부에서 로마의 타락과 재앙은 절대 기독교인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였고, 기독교인을 보호하는 입장에서 초기 기독교 교부 철학의 체계를 잡기 시작합니다.

   로마는 이제 바람앞에 등불처럼, 훅 불면 망할 것 같은 위치가 되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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