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체제의 동요와 드라콘의 법전
1. 식민운동이 시작되다. 그리스에서 평민이 성장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식민운동입니다. 그리스인들이 이제 본토를 넘어 소아시아(이오니아)로 진출하기 시작하면서 사회는 급변하게 됩니다. 먼저 화폐제도가 도입되는 등의 사회 경제적 변화가 있었고, 이것은 상공업에 종사하는 시민들이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 전쟁의 규모가 커지면서 귀족보다는 많은 수의 중장보병(팔랑크스)가 필요하게 되었는데, 평민들이 전쟁에 많이 참여하면서 <클레로스>라는 획득토지가 많아지게 됩니다. 보통 중무장한 평민들의 전쟁 전술을 역사에서는 <팔랑크스 전술>이라고 합니다. 그리스인들이 식민운동을 하게 된 배경에는, 도리아인들의 그리스 침략 이후 그리스 사회가 점차 안정되면서 인구가 증가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이제 그리스 세계가 더 큰 영역으로 확장할 때가 되었지요. 따라서 인구증가로 획득토지인 <클레로스>가 부족해진 가난한 농민들은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원했습니다. 또 귀족들은 더 많은 토지와 영토를 원했는데, 국내 귀족들끼리의 영토싸움을 피하고자 해외 영토로 눈을 돌린 것도 있습니다. 이렇게 그리스인들은 해외로 진출하여 많은 식민도시를 만듭니다.(로마의 평민성장 및 영토확장과도 비교하면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그리스인들이 해외에서 만든 식민도시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인이 진출하여 새롭게 개척한 해외도시들은 원래의 그리시 본토 도시(모시, 부모도시)의 지배를 받지 않는 독립시라는 점입니다. 즉, 식민도시는 식민지가 아니라 또 하나의 그리스로서 자유도시입니다. 부모도시와 새로운 도시는 평등한 관계로서 친밀한 유대관계를 가지는 도시인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지중해 영역에 성립된 그리스와 수많은 도시들을 보통 역사에서는 <범그리스 세계>라고 부릅니다. 자 이렇게 그리스 세계가 엄청나게 확대되었습니다. 그럼, 이러한 도시 확대가 평민에게 미친 영향은 무엇일까요? 모든 평민이 잘사는 민주주의 국가일까요? 노노... 절대 아닙니다. 이러한 식민도시의 개발은 그리스 세계에 빈부차만 엄청 크게 만들어놓았습니다. 즉, 식민운동은 계층분화만 가져온 것이지요. 살펴보자면, 식민도시 획득으로 무역, 상공업, 은광개발 등이 활발해졌는데, 당시 식민도시까지 넘어갈 수 있는 선박을 갖춘 재력가들은 소수입니다. 또 그 식민도시에서 선진적인 문화와 발달된 화폐경제를 피부로 느끼고 받아들 일 수 있는 계층도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럼 다수의 자영농들은? 대규모 화폐경제 발달로 대부분의 농민들은 그들이 가진 작은 규모의 토지를 엄청난 규모의 재력을 가진 대토지 소유자들에게 차즘 넘길 수밖에 없는 경우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즉, 큰 자본 앞에 작은 자본은 다 무너지는 것이지요. 이러한 현상으로 농민은 소작농이나 일용직노동자로 전락하게 됩니다. (이 현상은 로마가 카르타고를 정복하고 식민도시를 건설한 이후 급격하게 자영농민들이 망하는 현상이랑 유사합니다. 그리스 역사와 로마 역사는 초반에 비슷한 맥락으로 흘러갑니다.) 2. 부채 노비가 생성되고, 평민불만이 증대되다 자, 이제 한껏 성장해야 할 평민들의 시대에 오히려 평민들이 망해가는 이상한 현상이 발생하였습니다. 문제는 귀족들이 이 문제를 평민들을 위해 해결해주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평민들이 토지를 잃어가는 상황에서 이 당시 아테네에서는 <드라콘의 법전>이라는 역사상 최초의 성문 법전을 만듭니다. 근데, 이 법전의 출현으로 평민들은 귀족들을 원망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됩니다. 드라콘의 법전의 내용은 아주 엄격한 <중벌주의>와 <부채로 인한 자유상실>을 유도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입니다. 즉, 몰락해 가는 평민들을 구제해주는 것이 아니라, 빚(부채)를 진 평민들은 갚을 능력이 없으면 시민의 권리를 박탈해 버리겠다는 시대역행적 발상의 법을 만든 것이지요. 시민들은 분노합니다. 귀족들은 이 시민들의 분노를 알지만, 쉽게 개혁하지는 못합니다. 평민과 귀족들의 대립만 계속되는 상황에서 이를 해결하고자 나타난 지도자가 바로 <솔론>입니다. 참고 : 그리스 귀족정의 운영 기관 1. 아르콘 : 아테네 사회에서의 최고 정무 기관입니다. 이들은 민회가 선출하지만, 그리스 초기 민회(시민회)는 귀족들이 장악한 관계로 거의 귀족들이 대표를 뽑는다고 보면 됩니다. 초기에는 그 숫자가 적었지만, 군사, 종교, 민사 부분에서 각각 3명씩 선출하여 9명으로 숫자가 증가합니다. 이들은 1년동안 국가의 실제 행정을 책임 진 이후 아레오파구스 회의의 회원으로 임명입나다. 로마사회로 보면 집정관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2. 아레오파구스회의 : 귀족지배의 핵심기관으로, 유명한 귀족가문의 유력자들이 여기 소속됩니다. 아르콘도 1년만 실무를 보고나서는 이곳에서 활동합니다. 일반 시민의 민회는 거의 활동하지 못하는 것에 비해, 이 회의는 실제 귀족들을 위한 아테네 정치를 이끌어갑니다. 로마시대의 원로원과 같은 역할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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