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의 특징과 칭왕현상
1. 전국시대의 시작 전국시대가 시작된 배경은 춘추 전국시기 이후 출현한 군현제적 중앙국가체제의 등장과 연관됩니다. 14장에서 말했듯, 춘추 전국시대 중기에는 남방과 북방의 치열한 패자 다툼이 있었고, 이 시기에는 중화사상에 입각한 강력한 통일국가가 필요했습니다. 각 국가들은 주왕실을 대신하여 자신들이 약소국을 멸망시켜 중원의 주인으로서 활약하려 하였고, 이것은 곧 군현제도의 가속화를 가져왔습니다. 전국시대는 이러한 사회 분위기에서 춘추시대 북방의 패자였던 <진>나라의 가신인 한, 위, 조가 하극상으로 각각 독립국을 세운 것을 기점으로 합니다. 이것은 가신계급인 경, 대부의 성씨집단들이 제후집단에 반란을 일으켠 것을 말하며, 이제 주왕실과 제후라는 봉건질서의 주체들 외에 경, 대부라는 국인층들도 건국 주체로 성장한 것을 상징합니다. 이제 주왕실을 지킨다는 존왕양이는 사라졌고, 주왕실의 국인으로서 같은 하늘의 백성이라는 의식인 <예>는 필요없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강력한 영토에서 자신을 지켜줄 강력한 군주가 필요한 시기가 되었고, 군주는 자신을 보필한 현명한 인재와 강한 군대가 필요했습니다. 즉, 광대한 영역 국가에서 국왕인 인, 민을 직접 지배해야 했고, 강력한 중앙집권국가에 거대한 관료지배체제가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 반맹을 거듭하는 회맹질서는 필요없게 되었고, 국왕은 가부장권을 가진 모든 지배층(인)과 피지배층(민)의 아버지가 된 것입니다. 지방은 왕이 직접 다스리게 되었 거대한 군, 현 제도가 등장하였습니다. 즉, 전국시대의 시작을 기점으로 봉건제적인 씨족제는 사라지고, 봉건제적인 혈연관계는 타도된 것입니다. 2, 전국시대의 왕들은 군현제를 실시하기 시작한다. 군현제는 말 그대로, 왕이 지배하는 전국을 군, 현으로 나누어 왕이 파견한 신하에 의해 전국을 직접 지배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이 군현제는 현 - 군 - 향의 3층 구조로 되어 있었습니다. 현이란, 대국이 소급을 병합한 경우, 국가단위의 땅을 행정구역으로 개편한 행정구역입니다. 군은 변방지역이나, 작은 읍을 점령한 경우 설치한 작은 행정구역을 말합니다. 그런데, 전국시대의 현이 너무 큰 경우 몇 개로 쪼개어 다수의 군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향이란, 현 아래 설치된 행정구역인데, 씨족 공동체적 유제가 남아있는 씨족 마을을 말합니다. 현은 차춤 군에 흡수되어 소멸되어 가지만, <향>이라는 용어는 역사적으로 오랜 시간 동안 작은 공동체 마을을 지칭하는 말로 쓰입니다. 3. 칭왕 현상의 시작과 관제 개편 전국시대의 왕들은 이제 패자가 아닙니다. 이들은 주왕실을 모신다는 개념의 패자, 제후, 국군, 작이라는 칭호를 완전히 버립니다. 그들은 스스로 왕을 칭하는데, 이 시기는 각 국이 씨족적 기반을 버리고, 구귀족을 죽이며, 새로운 사회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실시한 변법의 실시 시기와 거의 일치합니다. 이제 왕은 누군가에게 존속된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가 하늘의 자손으로서 천하를 통일해야 하는 사명을 부여받았다라고 하는 이데올로기를 국가사회에 제시하면서 자신의 권위를 신성화하기 시작합니다. 각 국의 왕은 이제 지방의 군현제 정비와 함께 중앙 관제를 정비하고 변법을 시도합니다. 중앙 관제의 개편 목적은 종래 세습귀족과 다른 새로운 관료들이 새로운 관직에 필요했기 때문이며, 그 특징은 보다 전문적인 관리를 양성하기 위한 관직의 세분화였습니다. 그리고 내용은 행정권 - 군사권 - 지방권을 분리시키는 일이었으며, 이 분리된 권한은 각각 왕에게 귀속됨으로서 모든 국가의 총괄책임을 왕에게 부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즉, 종래 세습귀족들은 이제 왕에게 반항할 자리가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이 세습귀족들의 모든 특권을 왕에게 돌려 왕이 직접 모든 백성을 다스리는 체제를 <제민지배체제>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제민지배체제를 완성하기 위하여 사회 제도를 씨족적 질서에서 중앙집권질서로 통채로 바꾸는 것을 <변법>이라고 합니다. 그럼 새로운 제도를 살펴볼까요? 왕권 밑에서 행정을 총괄하고 재상으로서 활약하는 최고 전문직 관리를 <승상>이라고 칭합니다. 그러나 승상은 백관을 감시하여 왕권 강화를 위해 노력할 뿐 독자적으로 가진 권한은 별로 없습니다. 감찰은 <어사>가, 토지는 <사도>가, 재정은 <소부>라는 부서가 담당했습니다. 또 효율적인 영토확장을 위해 징병제를 실시했지만, 이러한 군사제도 역시 문, 무 관리들을 분할하여 각각의 임무를 따로 두었습니다. 특히 장군 아래 <위>라는 호위대장을 두었는데, 이 위가 진시황의 통일 후 <태위>가 되어 군사권을 총괄하는 총수개념이 됩니다. 지방 제도도 확실히 분할합니다. 군의 태수는 <군수>, 현의 태수는 <현승>, 향리는 자치적인 토착세력, 지방 군사는 <위>에게 각각 분담하는 제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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