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규의난 썸네일형 리스트형 왕규의 난 - 고려 초기 휘몰아치는 호족간의 세력다툼 속에서 일어난 난 왕규의 난 "고려 초기의 상황은 너무나 어지러웠다. 그 복잡한 상황 속에서 왕규의 난은 아직도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왕규의 난의 기본적인 상황 배경은 태조 정책의 부작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태조가 호족들과 연합정권을 형성하기 위하여 호족들의 딸과 결혼한 것만 29차례이며, 역분전 등의 공신 지급, 사성정책, 중앙과 지방 호족들을 위한16관계제의 마련 등은 수많은 호족들에게 태조 사후 분란의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었습니다. 그 혼란을 정리하자면, 먼저 태조 사후 왕비가 연계한 호족들의 왕권에 대한 개입이 잦았다는 점입니다. 혜종기의 박술희 가문의 보호 아래 혜종 외척인 오씨 집안(전라도 나주집안)의 미약함은 왕에게 치명적인 것이었습니다. 또한 정종시 서경세력인 왕식렴의 보호, 왕실내 근.. 더보기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