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에 나오는 한국사 자료들 - 북사 왜국전
왜국은 백제와 신라의 동남쪽에 있다. 수륙으로 도합 삼천 리나 되는 곳으로 큰 바다 속에서 산과 섬을 의지해서 산다. 위나라 때에 그들은 역관을 보내서 중국과 통햇는데, 나라가 삼십여개나 되고 저마다 모두 왕이라 일컬은다. 오랑캐들은 잇수를 따지지 못한다. 그래서 다만 날짜를 가지고 계산한다. 그 나라 국경은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다섯 달 걸리고 남쪽에서 북쪽까지는 석 달이 걸리는데 어디나 끝간 곳은 바다이다. 그 곳 지세는 동쪽은 높고 서쪽은 얕다. 그들이 있는 곳을 야마퇴라고 하는데 위지에서 말한 야마대가 이것이다. 또는 말하기를, 그 나라는 낙랑의 군 경계와 대방군에서 모두 일만이천 리나 되는 회계 동쪽에 있어 담이와 서로 가깝다고 한다. 그들의 풍속은 모두 몸뚱이에 먹물로 글씨를 넣는다. 그들은 자칭 태백의 자손이라고 한다. 대방으로 해서 왜국에 가려면 바다로 해서 조선국을 거쳐 남쪽으로 잠시 가다가 또 동쪽으로도 가서 칠천여 리를 가다가 바다 하나를 건너고 또 남쪽으로 천여 리를 가다가 바다 하나를 건넌다. 그 바다는 넓이가 천여 리나 되고 이름을 한해라고 한다. 일지국에 이르러서 또 바다 하나를 건너는데 이 바다는 넓이가 처녕 리나 되고 바다를 건너면 말로국이란 나라에 이른다. 여기에서 또 동남쪽으로 육지가 오백 리를 가면 이도국에 이르고, 또 동남쪽으로 백 리를 가면 노국에 도착한다. 여기에서 또 동쪽으로 백 리를 가면 불미국에 이르고, 또 남쪽으로 수로로 이십일을 가면 투마국에 이르고, 또 남쪽으로 수로로 십일 동안을 가고 다시 육로로 한 달을 가면 야마대국에 도착하는데, 이곳이 즉 왜왕이 있는 도읍이다. 한나라 광무제 때 사신을 보내서 입조시키고 자칭 대부라고 했다. 안제 때에 또 사신을 보내서 조공을 바치고 자기 나라를 왜노국이라 했다. 영제 굉화년중에 그들의 나라가 어지러워 저희들끼리 서로 싸우느라고 여러 해 동안 주인이 없었다. 한 여자가 있는데 이름을 비미호라 하고 귀신을 부려서 모든 사람을 혹하게 하므로 나라 사람들은 그를 세워 공동의 왕으로 삼았다. 그 여인은 남편이 없고, 두 남자가 음식을 날라다 바치고 말을 통해서 전해 주곤 했다. 그 왕이 거처하는 곳에는 궁실이 있고 누각과 성책들이 있어서, 군사들이 무기를 가지고 호위하고 있는데 그 법이 몹시 엄했다. 위나라 경초 삼년에 공손문의를 죽인 후에 비미호는 비로소 사신을 보내 조공을 바치니, 위나라 임금은 그에게 금인과 자수를 주었다. 정시년중에 비미호가 죽자 다시 남자 왕을 세웠다. 그러나 온 나라 사람들은 그 남자 왕에게 복종하지 않고 저희들끼리 다시 죽이고 야단이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다시 비미호의 일갓집 딸 대여를 세워 왕으로 삼았다. 그런 뒤에 다시 남자 왕을 세워 가지고 모두 중국의 벼슬과 명령을 받았다. 이렇게 하여 강좌에서는 진, 송, 제, 양을 거치는 동안 언제나 조공 바치는 것이 끊어지지 않았다. 진나라를 평정하자 개황 이십년에 이르러 왜왕이 성은 아매요, 자는 다리사비고요, 호는 아배계미라 하는데 사신을 보내서 대궐에 들어오자 제는 맡은 관리를 시켜 그 나라의 풍속을 물어보도록 했다. 이에 사신이 말하기를, [왜왕은 하늘로 형을 삼고 태양으로 아우를 삼기 때문에 날이 밝을 무렵에 나가서 정사를 듣고 무릎을 꿇고 앉았다가 해서 돋은 뒤에는 사무를 끝냅니다] 한다. 문제는 이 말을 듣고, [이것은 크게 의리에 맞지 않는 일이다] 하고 훈령을 내려 이것을 고치게 했다. 왜왕의 아내는 성이 계미요 후궁이 육,칠백 명이나 되고, 태자는 이름을 화가미다불리라 한다고 한다. 그 나라에는 성곽이 없고, 내관은 십이등급이 있다. 첫째는 대덕이요, 그 다음으로는 소덕, 대인, 소인, 대의, 소의, 대례, 소례, 대지, 소지, 대신, 소신 등의 차서로 되어 있다. 이들 관리에는 일정한 정원이 없다. 군니 일백이십 명이 있는데, 이것은 중국의 목재와 같다. 인구 팔십 호에 이니익 한 명씩을 두니, 이것은 지금의 이장과 같은 것이다. 또 이니익 열을 한 군니에게 소속시킨다. 그들의 복색은 남자는 저고리와 바지를 입는데 그 소매는 몹시 좁고도 작다. 신은 짚신을 신고 끈을 다리에 부뜰어맨다. 그러나 낮은 사람들은 맨발로 다니느 사람이 많다 .이들은 금이나 은으로 장식을 하지 못하고, 옷은 가로로 왼폭끼리 연결해서 두른다. 머리에는 관을 쓰지 않고 다만 머리를 양쪽 귀 위로 늘어뜨린다. 수나라 때에 이르러서야 그 왕은 비로소 관을 제정해 쓰기 시작했다. 그 관은 비단으로 만들고 금과 은으로 꽃을 만들어 장식한 것이다. 부인은 머리를 뒤로 묶어 늘어뜨리고 역시 치마와 저고리를 입는다. 치마에는 모두 선을 두른다. 대나무로 빗을 만들고 풀을 엮어 방석을 만들고 짐승의 가죽으로 옷도 만드는데, 무늬 있는 가죽으로 거죽을 한다. 활과 화살, 칼, 창, 도끼 등이 있고, 짐승의 가죽에 옻 칠을 해서 갑옷을 만든다. 화살촉은 뼈로 만든다. 비록 군사는 있어도 전쟁을 하는 일은 없다. 그 왕이 조회를 볼 때에는 반드시 의장을 베풀고 국악을 연주한다. 그들의 인구는 십만 호가 넘는데, 풍속에 남을 죽이거나 강도를 하거나 간음한 자는 모두 죽인다. 도둑질을 한 자는 그 값으로 재물을 빼앗고, 재물이 없는 자는 사람을 데려다가 죽기 전 종으로 부린다. 또 그 죄의 경중에 따라서 혹 귀양도 보내고, 혹 매도 때린다. 옥사를 다스릴 때에 만일 죄를 자백하지 않는 자가 있으면 나무로 그 무릎을 누르고 혹은 힘센 활로 목을 조르기도 하며, 혹은 조그만 돌을 끓는 물 속에 넣어 두고 손으로 그 돌을 찾아 내도록 하면 손이 이내 타버린다. 혹은 또 항아리속에 뱀을 넣어 두고 이것을 잡아내라고 하면 이내 손을 물리게 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몹시 욕심이 적고 조용해서 서로 송사를 하는 사람이 드물고 도둑질을 하는 자도 적다. 악기는 다섯 줄로 된 거문고와 피리가 있다. 남녀를 물론하고 모두 어깨나 얼굴에 검은 먹물을 넣어 글씨를 쓴다. 물 속에 들어가 생선을 잡고, 문자는 쓰지 않는다. 오직 나무에 새기거나 노끈을 묶어서 표적을 한다. 불법을 존경해서 백제에 가서 불경을 구해 간 뒤로 비로소 문자를 쓰기 시작했다. 점 치는 것을 알고 더우기 무당을 믿는다. 해마다 저월 초하루가 되면 반드시 활쏘기놀이를 하면서 술을 마시고 그 나머지 절후는 대략 중국과 같다. 바둑과 장기, 악삭, 저포 따위의 놀이를 즐긴다. 기후가 몹시 따뜻해서 풀이나 나무가 겨울에도 모두 푸르다. 또 땅이 기름지다. 바다가 많고 육지가 적다. 조그만 고리를 가마오지의 목에 걸어 주고, 물 속에 들어가 물고기를 잡게 하면 하루에도 백여 마리를 잡아낸다. 그들은 밥상이나 그릇이 없고 떡갈나무잎에 음식을 담아서 손으로 먹는다. 성질은 질박하고 곧아서 아담한 풍도가 있다. 여자가 많고 남자가 적다. 혼인하는 데는 같은 성끼리는 하지 않는다. 남녀끼리 서로 좋아하기만 하면 곧 혼인을 한다. 여자가 남자의 집에 가면 반드시 먼저 불을 밟은 뒤에 남편될 사람과 서로 인사를 한다. 여자는 음란한 짓이나 질투를 하지 않는다. 사람이 죽으면 관곽을 써서 장사를 지낸다. 죽은 사람의 처자나 형제들은 흰 옷으로 복을 입는다. 귀한 사람은 삼년 만에 장사를 지내고, 서인들은 날짜를 골라서 장사를 지낸다. 장사를 지낼 때에는 시체를 배 이에 놓고 육지에서 끌기도 하고, 혹은 조그만 수레를 쓰기도 한다. 아소산이란 산이 있는데, 그 산에 있는 돌에서 까닭없이 불이 일어나서 하늘에 닿았다. 이것을 이상하게 여겨서 제사를 드리고 기도를 한다. 여의보주가 있는데 그 빛이 푸르고 크기가 계란만이나 하며, 밤이 되면 빛을 뿜어낸다. 이것을 그들은 물고기의 눈동자라고 한다. 신라, 백제 등은 모두 왜국이 대국인데다가 보배스러운 물건이 많다고 해서 모두 우러러 보아서 항상 사신을 보내어 서로 왕래했다. 대업 삼년에 그들의 왕 다리사비고가 사신을 보내서 조공을 바쳐 왔다. 이 때 사신이 말하기를, [듣자 하니 해서의 보살천자가 불법을 중흥한다 하옵기로 사신을 보내서 조배를 드리고, 겸해서 중 수십명을 보내서 불법을 배우려 합니다] 했다. 그리고 그 왕의 국서에는 말하기를, [해가 돋는 곳의 천자는 해가 지는 곳의 천자에게 글을 보낸다...] 했다. 제는 이 글을 보고 기뻐하지 않고, 홍노경에게 이르기를, [오랑캐의 글에 무례한데가 있으니 앞으로는 다시 그들의 일을 내게 알리지 말라] 했다. 그 이듬해에 제는 문림랑 비세청을 사신으로 왜국에 보냈다. 그는 백제를 지나서 죽도에 이르러 남쪽으로 탐라국을 바라고 가다가 도사마국을 지났다. 그 나라는 멀리 큰 바다 속에 있었다. 또 동쪽으로는 일지국에 이르고, 또 죽사국에 이르며, 또 동쪽으로는 진왕국에 이르는데, 그 곳 사람들은 중국과 같았다. 이곳을 이주라고도 하지만 이것은 분명치 못하다. 또 다시 십여 나라를 지나니 바닷가에 이르렀다. 그리고 죽사국으로부터 동쪽은 모두 왜국에 소속되어 있었다. 이 때 왜왕이 소덕 하배 등을 시켜 수백 명을 데리고 의장을 갖추고 풍류를 울리면서 와서 맞았다. 그런 지 열흘이 되자 그는 또 대례 가다비를 보내서 이백여 기를 거느리고 와서 들에서 맞아 주었다. 이미 사신이 저들의 도읍에 이르자 왜국의 왕은 세청과 함께 와서 방물을 바쳤으나, 그 뒤로는 드디어 끊어지고 말았다.(北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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