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에 나오는 한국사 자료들 - 당서 동이전 일본전
일본은 옛날의 왜노이다. 중국 서울서 사천 리나 되는데, 바로 신라의 동남쪽으로서 바다 속 섬에 있다. 이 땅은 동서쪽으로는 오개월의 일정이 되고, 남북쪽으로는 삼개월의 일정이 된다. 나라에는 성곽이 없고, 나무를 엮어서 책락을 만들고 풀로 집을 해 인다. 나라 좌우에 조그만 섬들이 오십여 개나 되는데, 각자 모두 나라 이름이 있어 일본에 부속되어 있다. 여기에는 본솔 한 명과 검찰의 여러 부를 두어 두었다. 그 나라는 여자가 많고 남자가 적다. 글자가 있고 불법을 숭상한다. 그 관리들은 십이등급이 있고, 그 왕의 성은 아매씨로서 처음 임금은 자칭 천어중주라고 하는데 언염에 이르기 모두 삼십이대가 된다. 모두 존으로 왕호를 삼고, 축자성에서 거처했다. 언염의 아들 신무가 왕위에 서자 다시 천황이라고 이름하고 대화주로 옳겨가 있었다. 그 다음은 유정이요, 다음은 안녕, 의덕, 효소, 천안, 효령, 효원, 개화, 숭신, 수인, 경행, 성무, 중애로 계속되었다. 중애가 죽자 개화의 증손녀 신공으로 임금을 삼고, 그 뒤로 웅신, 인덕, 이중, 반정, 윤공, 안강, 웅략, 청녕, 현종, 인현, 무열, 계체, 안한, 선화, 흠명으로 계속되었으니 흠명 십일년이 곧 양나라 승성 원년에 해당한다. 그 다음은 민달이요 다음은 용명인데, 이는 또 목다리사비고로서 수나라 개황 말년에 해당되고, 이 때 비로소 중국과 상통하기 시작했다. 그 다음은 승준인데, 그가 죽자 흠명의 손자 여추고가 섰다. 그 다음은 서명이요, 그 다음은 황극이다. 그들의 풍속은 상투를 맺고 관과 띠는 없이 맨발로 다닌다. 폭건을 ㅗ뒤를 가리고 귀한 자는 비단을 쓴다. 부인은 순색으로 된 치마를 입으며 머리는 땋아서 뒤로 늘인다. 수나라 양제 때에 이르러 그 백성들에게 비단으로 만든 관을 주어 금과 옥으로 장식을 하게 했다. 무늬 있는 포목으로 옷을 만들어 입고 좌우에 은으로 만든 장식을 다는데, 그 길이가 팔촌이나 되고 이 장식이 많고 적은 것으로 그 사람의 귀천을 알게 되어 있었다. 태종 정관 오년에 그들이 사신을 보내서 입조하자 제는 먼 길에 온 것을 가상히 여겨 유사에게 명하여 세공을 바치지 말도록 했다. 그리고 신주자사 고인표를 보내서 위로하게 했더니 고인표는 그 왕과 예절에 대해서 다투다가 불평이 생겨서 천자의 명령도 전달하지 못하고 그대로 돌아왔다. 그런 뒤에 오랜만에 다시 신라 사신편에 글을 보내왔다. 영휘 초년에 그 왕 효덕이 즉위하자 연호를 고쳐 백치라 하고, 호백을 바쳐 왔는데 크기가 말만 했고, 마노석을 바쳐 왔는데 크기가 곡식 닷 되를 담을 그릇만했다. 이 때 신라가 고려, 백제에게 핍박을 당하자 고종이 글을 내려 군사를 내려 신라를 원조하라 했다. 그런 지 얼마 안 되어 효덕이 죽자 그 아들 천풍이 섰다가 이내 죽자 그 아들 천지가 즉위했다. 이듬해에 그들의 사신이 하이 사람과 함께 입조했다. 하이는 역시 바다속 섬에 사는데, 그 사신은 수염 길이가 사척이나 되었다. 천지가 죽자 아들 천무가 서고, 천무가 죽자 아들 총지가 섰다. 함형 원년에 사신을 보내서 고려 평정한 것을 하례하더니 이로부터 차츰 중국 말을 배워서 왜라는 이름을 싫어하여 나라 이름을 일본이라고 고쳤다. 그들의 사신이 말하기를, 그 나라는 해가 돋는 곳에 가깝다 해서 이렇게 이름을 지었다 한다. 또는 말하기를, 일본은 본래 적은 나라였는데, 왜에게 먹혀서 이로부터 그 이름을 얻어서 쓰는 것이라고 한다. 또 그는 망령되게 과장해서 자기 나라는 사방으로 수천 리나 되고, 남쪽과 서쪽은 모두 바다이며, 동쪽과 북쪽은 큰 산에 막혀 있고, 그 밖에는 곧 모인이라고 한다. 장안 원년에 그 왕 문무가 즉위하자 연호를 대보라 하고, 조신 진인 속전을 보내서 방물ㅇ르 바쳤다. 조신 진인이란 당나라의 상서와 같은 것이다. 그는 진덕관을 쓰고 이마에는 화려한 정자를 달았으며, 자줏빛 도포와 비단 띠를 띠었다. 진인은 학문을 좋아해서 능히 글을 지을 줄 알고 행동이 예법을 알았다. 무후가 그를 위해서 인덕전에서 잔치를 베풀고, 그에게 사선경을 제수했다. 그가 돌아가자 문무가 서고 아들 아용이 서고, 아용이 죽자 그 아들 성무가 계승해서 연호를 백구라 고쳤다. 개원 초년에 속전이 다시 입조하여 여러 선비들과 사귀어 경서를 배우기를 청하자, 사문조교 조현묵에게 명하여 홍로사의 스승을 삼아 그로 하여금 배우게 하고 상으로 여러 가지 책을 주어서 돌려 보냈다. 이 때 그의 부사로 왔던 중만이 중국을 사모해서 돌아가지 않으려 하여 성명을 고쳐 조형이라 하고, 좌보궐이란 벼슬을 거쳐서 배우고 아는 것이 많아 가지고 오래 있다가 돌아갔다. 성무가 죽자 그 딸 효명이 왕위를 계승하여 연호를 고쳐 청평승보라 했는데, 이것을 천보라고 부른다. 천보 이십년에 조형이 다시 중국에 와서 상원년중에 좌산기상시 안남도호에 발탁되었다. 이 지음 신라가 바닷길을 가로막자 육로로 해서 조공을 바쳤다. 효명이 죽고 대취가 서고 또 대취가 죽자 성무의 딸 고야희로 왕을 삼았다. 또 고야희가 죽자 백벽이 서서 건중 원년에 사신 진인흥능이 방물을 바쳤다. 이 진인이란 대개 벼슬 이름을 따서 성을 삼은 것이다. 흥능은 글씨를 잘 썼는데 그 나라 글씨는 마치 누에고치와 같아서 어떻게 만든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정원 말년에 그 왕을 환무라 했는데, 사신을 보내 입조하면서 그 아들 귤면세와 중 공해를 우리 나라에 두어 공부시켜 달라고 청했다. 그 뒤 이십여 년이 지나서 사신 고해진인이 와서 면세 등과 함께 돌아갔다. 그 다음으로는 낙락이 서고, 다음은 차아, 부화, 인명의 차서로 왕위를 계승했는데, 인명은 즉 개성 사년에 다시 사신을 보내 왔다. 그 다음은 문덕, 청화, 양성, 광효의 차례로 계승되었다. 광효의 원년은 우리 나라 광계 원년에 해당한다. 그 동쪽 바다 속에 또 야고, 파야, 다니의 세 조그만 나라가 있다. 이들 조그만 나라는 북쪽으로는 신라, 서북쪽으로는 백제와 떨어져 있고, 서남쪽은 바로 월주에 닿는다. 여기에서는 온갖 괴상스러운 물건들이 나온다고 한다.(唐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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