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지 곤지는 생리중이라는 표시?
재미있는 글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지금부터 소개된 글들은 여러 책에서 뽑은 연지곤지에 대한 내용들입니다. 1. 오늘은 임금님을 모시지 못합니다. 연지는 볼과 입술에 붉게 칠하는 전래의 화장품이다. 연지를 이마에 둥그렇게 찍어 바르면 그것이 곤지가 된다. 그런데 연지 곤지 찍기는 화장에 대한 우리 선조들의 전통적인 취향과는 어울리지 않게 뚜렸다. 색깔도 너무 선명하고 모양도 두드러진다. 왜 이런 화장을 하게 되었을까? 여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은 연지곤지가 원래 생리중이라는 표시였다는 설이다. 여염집 아녀자들이 그런 표시는 할 필요는 없겠고, 임금의 여자인 궁녀들이 '오늘은 임금님을 모시지 못합니다'라는 표시로 빰에 연지를 발랐다는 것이다. 지엄하신 임금님께 감히 '죄송하지만 저 오늘 생리중이거든요'라고 말할 수도 없는 일. 그래서 임금이 척 보면 알 수 있다록 얼굴에 생리를 연상시키는 붉은 색으로 칠했던 것인데, 그것이 여염으로 퍼져 유행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럴싸한 설이긴 하지만 생리의 표시라는 것을 알면서도 여성들이 연지 화장을 했다는 것은 잘 믿기지 않는다. 2. 발그레한 빰은 젊음과 처녀성의 상징 우리는 TV에서 방송되는 사극을 통해 전통 결혼식 장면에서 신부가 연지곤지를 찍고 다소곳이 앉아 있는 장면을 많이 보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옛 풍속에서 재혼하는 여성들은 볼과 이마에 연지를 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연지곤지 화장의 유래는 초혼과 재혼의 차이에서 찾는 것이 더 옳을 듯 싶다. 그렇다면 연지곤지 화장은 숫처녀임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나이 어린 처녀들은 화장을 전혀 하지 않아도 빰에 붉은 기가 돈다. 조금만 부끄러워도 뺨이 발그레해진다. 그러므로 발그레한 뺨은 젊음, 싱싱함, 처녀성의 상징이다.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뺨과 이마에 연지를 발랐을지도 모른다. 우리 민족은 전통적으로 희고 깨끗한 얼굴을 선호했다. 송나라 사람이 쓴 [고려도경]에 보면, 고려의 귀부인들은 연지 바르기를 즐겨하지 않고 그저 분을 바르는 정도였다는 그록이 나온다. 얼굴에 그림을 그리는 짙은 메이크업이 아니라 엷은 색조의 은은한 화장을 좋아했던 것이다. 짙은 화장에 대해서는 야용이라 하여 저항감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연지를 찍는 특별한 화장은 젊음과 처녀성을 표현해야 할 특별한 경우, 즉 결혼식 같은 경우에만 했다. 연지 화장은 신라 때부터 시작되었다. 연지는 신라인의 발명품인 것이다. 옛 기록을 찾아보면 연지를 만다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자연 염료를 이용하여 만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화학적 작업을 거쳐 만드는 것이다. 자연 염료로는 잇꽃을 썼다. 잇꽃은 1-2년생의 국화과 꽃인데 원래는 황색이며 약간 붉은 빛이 돈다. 이 잇꽃을 찧어서 물에 담그면 황색 색소는 물에 녹고 붉은 색 색소만 남는데, 이것을 약품 처리하면 붉은 색 연지가 나온다. 반면 화학적 작업을 거쳐 만든 것은 주사 연지다. 수은을 주성분으로 하는 주사라는 광물을 갈아서 계란 노른자 등에 섞어 솥에서 끓여서 만든다. 주사 연지는 잇꽃 연지보다 색깔도 붉고 윤택이 났다. 그러나 요즘 화장품 과용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처럼 이 주사 연지도 오래 사용하면 화장독이 생겼다. 그래서 민간보다는 궁중의 궁녀나 기생들이 주사 연지를 많이 썼다고 한다. 이 포스트의 원문 책 출처 : 뜻밖의 한국사(김경훈, 오늘의 책, 2006) ------------------------------------------------------------------------------- 참조 글 : <문화와 나 2003가을편 중에서> - 연지 곤지란 무엇인가? 연지는 붉은 화장품이나 염료를 총칭하는 말로, 화장에서 볼연지라는 말로 살아 있다. 연지는 홍화꽃으로 만들거나 광물성 염료인 주사로 만드는데, 오늘날에는 붉은 색종이를 동그랗게 오려서 붙이기도 한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이 연지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 연지를 찍는 우리 역사가 무척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연지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사기 흉노전』에서 찾을 수 있다. 알영 부인, 이알평 등 신라의 알자 계열에 등장하는 난생설화와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 첫 단추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알씨 부인이다. 알이 사람의 성이 되면 연이 되고, 씨가 사람의 이름에서는 지로 읽는다는 주석에 따르면, 알씨 부인은 연지 부인이 된다. 이 연지 부인이 연나라에 보낸 편지에 우리의 염료와 화장품의 역사를 밝혀 주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온다. “산 아래에 잇꽃(홍화)과 쪽이 있는데, 북쪽 사람들은 그것으로 비단을 노랗게 물들이고, 제일 붉고 선명한 꽃으로 연지를 만들어 얼굴을 꾸민다.” 또한 여기에서 우리는 잇꽃의 어원을 찾을 수 있다. 바로 연지 부인의 성이 이(易)씨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홍화는 잇꽃, 즉 연지 부인의 꽃이 된다. 그럼 신부의 이마 한가운데에 찍는 곤지는 무엇일까? 사전에는 연지와 함께 찍는 붉은 점이라고 되어 있다. 하지만 곤지가 인체 중심부인 이마 한가운데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연지보다 구체적인 의미가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젖먹이에게 왼손 바닥에 오른손 집게손가락을 댔다 떼었다 하는 동작을 유도할 때 ‘곤지곤지’라고 말한다는 사실은 우연치고는 참으로 묘하다. 신부의 곤지가 하나의 점이고, 젖먹이가 왼손에 찍는 곤지곤지도 하나의 점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재야 학자들의 해석은 곤은 땅, 즉 하늘과 땅의 도리를 알라고 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연지는 어떤 도리일까? 그 해답은 우리의 전통예절에서 찾을 수 있다. 절할 때 두 손을 교차시키며 나를 비롯하게 한 하늘을 생각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두 손은 하늘이 된다. 그 하늘에 곤지를 찍어 점을 맞대는 것은 곧 하늘과 땅이 만나는 것이다. 하늘과 땅은 음양을 상징하므로 곤지는 음양이 조화를 이루는 것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음양의 조화를 상징하는 고대 사인은 바로 하늘의 별자리인 심성(心星;서양의 전갈자리 아트라스)에서 찾을 수 있다. 심성은 지금부터 4000여 년 전 춘분날 해가 질 때 밤하늘에 떠오른 별이다. 그리고 그 별을 관장한 사람이 알백(閼伯)이었다. 그렇다면 신랑·신부가 마주 보고 있는 것은, 낮과 밤의 길이가 똑같은 날 지는 해와 떠오르는 심성이 마주 보고 있는 모습이다. 즉 신부는 해를 마주하는 안해다. 그 신부에게 연지와 곤지를 찍는 것은 바로 우리가 ‘아이’의 옛말인 ‘아해’, 즉 태양과 같이 이 세상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할 아이를 낳는 민족임을 상징한다. 또한 우리 건국신화에 나오는 쑥과 향나무는 또 다른 의미에서 역사적 상징성을 부여한다. 우리 장례의식 중 시신을 목욕시키고 옷을 갈아입히는 염습 과정에서 시신을 씻기는 물이 바로 이 쑥과 향나무를 삶은 물이란 사실은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밝히는 또 다른 길을 제공한다. 쑥은 바로 웅녀의 상징이고, 향나무는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려는 이상을 가진 환웅이 이 땅에 내려온 신단수의 상징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 연지곤지에 바르는 잇꽃이란 무엇일까? 잇꽃은 일명 홍 화(紅化)라는 이름으로도 불리 우는 예부터 널리 알려진 홍색 염료로 유명한 식물이다. 잇 꽃은 오랜 옛적부터 재배되어 왔으며 이집트에서는 B.C 2,500년의 제 6왕조시대의 비문에 잇 꽃의 기록이 있을 정도이며 고대 이집트에서는 미이라를 싸매는 천을 잇 꽃으로 물들여서 사용했다 하며 B.C1300년경의 왕의 무덤에서도 잇 꽃의 식물조각이 발견되고 있어서 이를 증명하고 있다. 기원 원년경에는 염료 및 기름을 얻기 위한 유지식물로 널리 재배되었으며, 인도에서도 기원전부터 재배했다는 기록이 있다. 중국에는 한(漢)나라 때 (B.C 2세기경) 장 건(張騫)이 서역(이란)에서 가져갔다고 전해지며 우리나라에서 들어온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고구려 때 (6세기)승려 담징(曇徵)이 일본으로 가졌다고 하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중국에서 들어와 고구려 초기에 흔히 재배되었던 식물임을 알 수 있다. 유럽에는 중세에 전파되었고 미국에는 스페인 사람이 멕시코를 거쳐 19세기 초에 염료작물로 도입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북미, 남미, 인도, 중국, 유럽남부, 일본, 동남아 등에서 염료 및 유료작물(油料作物)로 대량재배되고 있다. 잇 꽃은 학명을 Carthamus tinctorius 하는데 Carthamus 아랍어의 Korthom 즉, "염색한다"라는 말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며 종명의 thnctorius 도 "염색용의"라는 뜻이라 하니 이 식물이 고대에 염료로서의 위치가 얼마나 중요했던 가를 말해주고 있다. 영명의 Safflower는 사프란(Saffron)과 유사해서 사프란 대용으로 쓰이는 염료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 하며 dyer`s dsffron 이라는 이름도 있는데 역시 샤프란 염료라는 뜻이다. 잇 꽃에는 carthamin 이라는 물에 녹지 않는 적색 소(赤色素)와 safloryellow 라는 물에 잘 녹는 황색 소(黃色訴)가 있어서 염료로 이용할 때는 꽃을 물에 담그어 황색 소를 제거한 후 묽은 색소만을 이용하는 게 이것을 연지(燕脂)라 한다. 연지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옛날은(殷)나라 주 왕(紂王)의 왕비였던 요염하고 음탕하며 독 부로 유명한 달기가 연(燕)나라에서 가져다가 만들었기 때문에 "연지"라 했다 하며 진한 화장은 달기를 연상하여 천박하게 대접했다고 전한다. 옛날 중궁의 한나라 때는 천자제후의 궁녀(宮女)들의 월경이 있을 때는 잇 꽃에서 만들어진 붉은 연지를 얼굴에 묻혀서 월경 중 임을 표시했다 하며 나중에는 월경의 유무에 상관없이 화장용으로 연지를 볼, 입술, 손톱 등에 칠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나라에는 결혼식 때 새색시의 얼굴에 연지 곤지를 찍는 풍습이 있는데 이것은 붉은 색이 악귀를 물리친다는 주술적인 의미가 부여되어 있는 화장 술의 하나로서 결혼식의 신성함을 지키기 위해서 이다. ------------------------------------------------------------------- 연지곤지에 대한 내용은 역사 시간에 몽골이 우리나라를 쳐들어왔을 때, 생긴 몽고풍의 일종이라고 배웠는데, 다른 내용이 있군요. 책을 읽다가 재미있어서 옮겨 적어보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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