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중세의 발전 과정 2편
1. 9-10c 영국사 : 앵글로-색슨 왕국이 시작되다 9c 영국사는 앵글로-색슨 왕국의 알프레드 대왕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1편에서 앵글로-색슨이라는 게르만 계통의 민족이 켈트족을 몰아내고 잉글랜드 지방의 주류 민족으로 자리잡았음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이들 앵글로-색슨 민족은 하나의 국가단위를 구성하지 못하고 수많은 소국체제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중국으로 보면 춘추전국시대요, 그리스로 보면 후기 폴리스 난립기이고, 우리 역사로 보면 초기철기시대의 각국난립 수준의 <철기> 국가들이라고 보면 되겠네요. 이 분열된 앵글로-색슨족들은 스칸디나비아에서 건너온 데인족(노르만의 일파)가 침략해오면서 공동의 적을 막기 위해 뭉치기 시작합니다. 이 때 앵글로-색슨을 이끌었던 왕이 영국사에서 유명한 <알프레드 대왕>입니다. 알프레드는 데인족과 협상을 통해서 데인족과 앵글로족이 같이 살수 있는 공존의 길을 만들려고 하였습니다. 앵글로-색슨이 장원지역은 그대로 전통을 유지하되, 데인족이 머무는 데인로 지역은 독립적인 자영농을 육성하는 방법으로 효과적 통치를 시도한 것이지요. 이 알프레드의 강경책과 회유책을 동시에 쓰는 데인족 정책은 성공하였고, 잉글랜드에 남게 된 데인족은 앵글로-색슨족에 융화되었습니다. 당시 알프레드의 앵글로-색슨 통일국가는 모든 성년남자에게 병역을 부과하여 가장 효율적인 <군대운영>을 하는 유럽의 선진 부병제 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부병제를 운영하기 위한 기반으로 광대한 왕령을 왕이 직접 운영하였습니다. 왕령은 각각 <주>로 편제하여 주장관을 왕이 파견하였는데, 주장관을 임명하고 교체할 권한과 교회의 주교, 수도원장을 임명할 권한이 모두 왕에게 있었습니다. 이것은 유럽 대륙에서 실시한 중세 봉건제도를 보았을 때, 특이한 역사적 발전 방향으로 영국이 나아가는 것을 암시합니다. 실제, 이후 영국 사회는 대륙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독자적인 의회제도와 독특한 문화 사업을 전개하는 방향으로 국가 운영이 전개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알프레드의 왕권 강화는 고대 이집트나 아시아적 전제국가와 같은 수준의 왕권이 아니였습니다. 단지, 흩어진 부족들을 통합한 <부족 중의 왕> 수준에 불과한 것이죠. 실제, 앵글로-색슨 왕국에서는 국왕을 선출하는 의회 개념의 기관으로 <위탄게모트>가 있었습니다. 위탄게모트는 국정합의 기관이자 국왕선거 기관으로 활용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삼국의 제가, 정사암, 화백 등의 귀족회의체와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겠네요. 공통점은 왕권이 강화되는 기간에도 귀족회의체가 존재함으로서 왕권읠 제약하는 기능이 온전하였다는 것 아닐까요? 2. 11c 영국사 : 결국 노르만 왕조가 탄생하다. 앵글로-색슨 왕국은 강력했지만, 데인족들은 끊임없이 쳐들어왔습니다. 결국 11c에 이르면 덴마크의 왕 카누트가 잉글랜드 왕에 즉위하게 됩니다. 카누트가 사망한 뒤 위탄게모트 회의를 통해 에드워드 고해왕을 선출했는데, 이 에드워드 고해왕이 죽은 뒤 노르만족의 영국 침략이 본격화 됩니다. 앵글로-색슨족들은 데인족의 침입 이후 노르만 일파인 노르망디공 윌리엄과 치열한 격전을 벌였습니다. 결국 노르망디 윌리엄은 영국을 정복하였고, 그는 프랑스 북부의 노르망디를 비릇한 광대한 영토 위에 잉글랜드까지 점령함으로서 아주 광대한 영토를 가진 정복왕으로 군림하게 됩니다. 이 윌리엄기는 영국사회에서 아주 특이한 <중앙집권적 봉건제도>를 실시한 시기입니다. 그는 대륙북부의 정복자로서 봉건제도를 실시했지만, 그가 봉건제도를 실시한 것은 왕권이 약했기 때문에 영토를 기사에게 분봉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무척 강한 왕이었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측면에서 <막강한 군사력>을 지원해주는 기사에게 영토를 분봉한 것입니다. 그럼 노르만 왕조의 윌리엄 시대를 한번 볼까요? 일단 국왕을 선거할 수 있는 <위탄게모트>를 없애버립니다. 윌리엄은 대신 <왕실회의>를 구성해서 자신을 추종하는 유력한 봉건신하들로 회의를 구성했습니다. 왕실회의는 종전 위탄게모트가 가진 왕권제약의 기능이 상당히 줄어들었음을 의미합니다. 또, 그는 영국의 관습을 계속 존중하였습니다. 그는 대륙의 법을 영국에 적용하지 않았고, 관습법에 따라 모든 일을 처리하도록 하였습니다. 주의 법정을 담당하는 법관도 관습법에 의해 재판을 처리하였는데, 이 때부터 영국 특유의 <관습법>이 발전하게 됩니다. 영국에서는 지금도 성문법 못지 않게 관습법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노르만의 영주에게는 자신의 봉건영토를 관장할 수 있는 권한을 줍니다. 즉, 농노에 대한 재판권과 같은 권한을 준 것이지요. 유력한 영주는 대륙의 봉건제에서 흔히 보이는 <상급재판권>도 부여합니다. 상급재판권은 자신의 영지에 대한 재판권을 넘어 (자신의 영지에 관한 일이라면) 타영지에 까지 자신의 권한이 미치는 것을 말합니다. (봉건제도 설명한 포스트에서 자세히 설명해 놓았습니다. 이 사이트내에서 봉건제도로 검색해보세요.) 즉, 이렇게 봉건영주들의 권한을 인정하였기 때문에 윌리엄 시대는 강력한 왕권과 함께 봉건제가 존재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3. 윌리엄이 한 것은 봉건제도를 중앙에 귀속시킨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윌리엄의 중세 봉건제도는 영주들의 특권을 인정한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영주들에게 특권을 주면서도 그 영주들이 윌리엄에게 절대 반항할 수 없는 강력한 제도적 장치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제도적 장치를 볼까요? 첫 번째로 윌리엄은 영국 고해왕의 계승지아자, 대륙 북부의 지배자로서 강대한 왕령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즉, 봉건영주들은 감히 윌리엄에게 도전할 수 있는 엄두도 내지 못한 것이지요. 윌리엄의 강한 군사력은 다른 영주 몇몇이 뭉치더라도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둘째로 모든 영내의 자영농들은 농노로 취급하는 정책을 실시했는데, 영주들의 입장에서는 장원의 농노가 늘어나는 것이 좋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왕의 입장에서도 모든 자영농의 농노화는 국왕의 광대한 왕령에 속한 모든 농노들이 국왕에 대한 세금이상의 부역을 제공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셋째로, 윌리엄이 봉건제를 실시함으로서 색슨족, 노르만족을 불문하고 영토를 가진 자는 일정한 수의 기사를 왕에게 보내야 합니다. 그것을 통해 강력한 군사력을 국왕이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또, 국왕이 임명하는 주장관이 파견되어 각 영지의 행정과 사법을 통재하였기 때문에, 실제 봉건제도라고 하여도 영주들이 완전한 <불입권>을 행사할 수 없는 체제였습니다. 넷째로, 국왕은 임시세를 전국적으로 징수할 권리(덴게르트)를 확보하고 있었스빈다. 마지막으로, 윌리엄은 이것으로도 모자라 전국의 가신들을 소집하여 국왕에게 충성할 것을 강요하는 서약문을 작성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솔즈베리의 서약>입니다. 이것의 주요 내용은, 봉건영주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국왕에 대한 충성이 다른 주군에 대한 충성보다 상위에 있는 것이므로, 왕권에 대한 충성을 우선으로 한다는 내용입니다. 또 당시 국왕은 유명한 <둠즈데이의 북>을 만들어 통치자료로 활용하였습니다. 둠즈데이는 우리말로 하면 <토지대장>인데, 이것을 작성함으로서 국왕은 세금을 걷는 것과 행정업무에 대한 참조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영국 중세에서는 이 둠즈데이북이 중세를 파악하는 기본 자료로 활용됩니다. 우리나라의 신라 민정문서처럼 말이죠. 이 윌리엄의 강력한 치세력은 제후들의 반발을 가져오는 것이었지만, 윌리엄은 그것을 효과적으로 막아낼 수 있었습니다. 강력한 군사력과 리더쉽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윌리엄이 죽은 이후에는 제후들과의 끊임없는 마찰이 시작됩니다. 영국의 노르만 왕조는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이후 수많은 제도 개혁을 추진합니다. 이러한 제도 개혁을추진하였던 인물들이 헨리 1세, 헨리 2세, 존왕, 에드워데 1세와 3세 등이죠. 어떤 경우에는 왕권이 성장하였지만, 존왕기와 같은 경우에는 왕권이 제약을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영국의 왕권은 전반적으로 다른 지역보다 상당히 강한 편이었습니다. 윌리엄기부터 다져놓은 기반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럼 3편부터는 영국 왕권의 본격적인 성장을 이루는 플란타지네트 왕조와 대헌장 시대를 한번 다뤄보도록 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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