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혁거세 거서간(赫居世 居西干) |
신라 박씨(朴氏)의 시조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박혁거세라고 지칭된다. 이때 양산(楊山) 밑 나정(蘿井)이라는 우물 근처에 신기한 빛이 하늘에서 땅에 닿도록 비추고 있고, 흰말〔白馬〕 한 마리가 꿇어앉아 절하는 형상을 하고 있어 가보니 큰 알이 하나 있었다. 말은 하늘로 날아가고, 알을 깨고서 어린 사내아이가 나왔는데, 모양이 단정하고 아름다웠다. 동천(東泉)에 목욕시켰더니 몸에서 광채가 나고 새와 짐승들이 춤을 추었다. 알의 크기가 박〔瓠〕과 같다고 하여 성을 박(朴)이라 하였고, 그 광채로 인하여 이름을 혁거세 혹은 불구내(弗矩內)라고 하였다. 고허촌(高墟村) 촌장인 소벌공(蘇伐公, 혹은 蘇伐都利)이 데리고 가서 길렀다. 그리고 6촌의 촌장들은 신비롭고 기이하다고 하여 존경하였고, 나이 13세가 되어 이들에 의하여 왕으로 추대되었다. 이때 왕의 칭호는 거서간 또는 거슬한(居瑟邯)이라 하였고, 나라이름을 서나벌(徐那伐), 서라벌(徐羅伐), 서벌(徐伐) 혹은 사라(斯羅), 사로(斯盧)라 하였다. 서기전 53년에 알영(閼英)을 비(妃)로 맞아들였다. 이 건국설화는 성읍국가(城邑國家) 단계를 반영하는 것으로 6촌장이란 이미 신라의 개국 이전에 분거(分居)하여 살았던 고조선의 유민들이었다. 따라서, 토착세력을 압도한 유이민(流移民) 박씨 집단을 상정할 수 있으며, 말〔馬〕 및 천신하강(天神下降)의 모티프로 볼 때 이들은 말을 토템으로 하는 천신족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혁거세, 불구내 등이 광명을 의미한다는 데서도 그들의 태양숭배를 엿볼 수 있다. 그러나 개국연대가 전한 효선제 오봉 원년 갑자(前漢 孝宣帝 五鳳 元年 甲子, 서기전 57)라는 설은 문제가 있다. 혁거세는 서기전 37년 서울에 성을 쌓아 금성(金城)이라 하였고, 서기전 32년 금성에 궁실을 지었다. 이 단계의 사로국은 대체로 경주평야를 벗어나지는 못한 것 같다. 서기전 28년 낙랑이 침범해 왔으나 국경에 있는 백성들이 밤에 문을 잠그지 않으며 곡식더미가 들에 즐비한 것을 보고 ‘도덕(道德)의 나라’라 하고 스스로 물러갔다. 서기전 20년 마한 왕이 공물(貢物)을 보내지 않는다고 노하였으며, 이해에 호공(瓠公)을 마한에 사신으로 보냈다. 서기전 19년 마한왕이 죽자 사신을 보내어 조위(弔慰)하였다. 서기전 5년에는 동옥저에서 보낸 사신이 와서 말 20필을 바치기도 하였다. 죽은 뒤 사릉(蛇陵)에 장사지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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