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사치 사화를 통해 본 한군현의 정책
1. 염사치 사화의 내용
2. 고조선 멸망 후 한군현의 설치 한군현은 낙랑, 진번, 임둔, 현도 등으로 구성된 중국 한나라의 한4군을 말합니다. 고조선이 멸망한 후 한이 설치한 이 한사군은 그 위치에 있어서도 논쟁점이 많습니다. 신채호 등의 민족주의 학자들은 한사군이 압록강 너머에 있다고 주장하였지만, 싫증주의 학자들의 일반 학설은 평양을 중심으로 한 한반도 내에 한사군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한사군은 중심은 <낙랑군>이었습니다. 한나라는 이 낙랑을 중심으로 주변 현토군, 진번 및 임둔군을 두어 고조선의 옛 땅의 유민들을 관리, 감독하였습니다. 하지만, 중국계 지배계급은 고조선인들을 상당히 차별하였고, 따라서 한사군은 토착민과 유리된 지배체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즉, 고조선의 옛 땅에 설치했음에도 한나라와의 연락만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졌을 뿐, 유민들을 끌어안지 못한 것이죠. 이것이 한사군의 가장 큰 한계점입니다. 또 기존 씨족공동체 조직을 해체할 수도 없어서 고조선의 옛 유민들을 <읍락단위로 집단 복속>한 뒤 <읍락단위>로 지배해야 했습니다. 그 이유는 동예의 <책화>, <족외혼>등에서도 보이듯 당시 사회가 공동체적 사회질서를 강조하였기 때문에 이것을 무력으로 해체하기에는 너무 무리수가 많았기 때문이죠. 따라서 한군현은 직접 동이족을 다스리기 보다는 각 동이 부족의 <거수, 읍군, 삼로> 등의 지배자를 통해 각 마을을 통제하는 간접 지배방식을 택합니다. 이 간접지배체제 속에서 한군현의 사회문화적 문물이 각 지배집단의 <지배층>을 통해 한반도 각지에 전파되었습니다. 그리고, 한군현은 그 지배의 목적이 <상거래를 통한 막대한 이득>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료를 보면, 상당히 많은 공물을 원하고, 그 공물 내용에 따라 조공과 책봉 형식의 무역을 하였음이 보입니다. 또, 이러한 무역체계 속에서 사무역과 밀무역도 상당히 성행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 결과, 중국문물이 예맥한족의 사회에 무제한 침투되어, 법령이 증가하고, 사회구조가 복잡하게 변해갑니다. 3. 왕망의 신 정권 : 중국식 조공, 책봉의 완성 단계 중국에서 한이 망하고 왕망 정권이 들어서면서 한은 중국식 조공 - 책봉 관계를 실질적으로 완성하였습니다. 왕망은 지나칠 정도의 유교윤리를 통하여 주변국을 봉건질서로서 다스리려고 하였습니다. 스스로 천자라고 부르며, 주변국은 제후국의 취급을 하였던 것이죠. 따라서 주변국들은 천자국에 진상, 공조, 공납을 해야 했고, 그 공납 내용과 국가 규모에 따라서 왕망이 신하로서 주변국을 <책봉>하고 의책을 내려줍니다. 특히, 이러한 의책을 내려주어 집과 관직을 주는 제도는 주변 소국 지배집단들이 한나라에 <충성>하게 만드는 교모한 중국식 지배 체제였습니다. 바로 이러한 한나라의 정책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염사치 사화>입니다. 염사치 사화는 중국 입장에서는 <조공-책봉의 중화질서>를 보여주는 사료이지만, 우리측 입장에서는 <중국의 민족분열정책>에 넘어간 삼한 사회를 보여주는 사료로서 대조됩니다. 실제 이러한 분열정책에 고구려는 책구루를 쌓고 조복과 의책을 거부함으로서 반중국적인 정권으로 남지만, 부여와 삼한은 왕망정권의 조공-책봉 정책을 어느 정도 받아들여 우호적인 관계로 남습니다. 위 사료를 보면 진한의 우거수인 염사치는 결국 포상을 받게 되지요. (고구려 책구루에 대한 자료는 '구루'라는 검색어로 사이트내 다양한 검색이 가능합니다.) |
이 글에 대한 참고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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