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 해군 2만명 당나라 등주를 공결(732년) |
|
발해가 건국한 초기는 동아시아의 국제질서가 전면적으로 재편되는 시기였다
당나라, 국방의 혹수말갈과 신라는 사방에서 신흥국가인 발해르 압박하였다. 이러한 위기상황을 타래하고, 전세를 역전 시키기 위한 몇가지 정책을 취했다. 즉 북으로 흑수말갈을 공격하였다. 또한 해양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옇다. 일본에 사신을 파견하여 우호관계를 맺은 발해는 신라와 적대적인 일본과 적극적인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732년에는 대규모의 수군을 동원하여 당나라의 등주(현재 산동반도 봉래시)를 공격하여 점령하였다. 당의 배후를 공격하여 해양력을 활용하면 효율적인 군사행동을 할 수 있다는 현실적인 힘과 의지를 당과 신라에 인식시켜 준 것이다. 뿐만 아니라 흑수말갈은 물론 기타 여러 말갈부 및 일본에게도 발해가 국제질서 재편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려는 목적 때문이다
| |
작성 : 윤명철
| |
이 글이 인용된 원문 : http://www.koguryo.org/(사단법인 고구려 연구회 사이트)
<http://historia.tistory.com 역사전문블로그 히스토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