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의 영토는 어디까지인가?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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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길 수(서경대 교수, 고구려연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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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발해는 단군조선 이후 가장 큰 영토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발해의 강역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이견이 있다. 특히 강역문제의 핵심은 요동지 방의 편입여부에 있다. 우선 지금까지 나온 발해 강역도를 4가지로 분류하고, 이어서 요동반 도가 발해 땅이었다는 것을 확인해 보기로 한다.
발해강역도
1. 요서지방이 일부 들어간 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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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唐晏 纂, 劉承幹 交, {渤海國志}, 求恕齋, 1919
② {조선전사} 5. 중세편, 19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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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요동지방이 들어간 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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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新妻利久, {渤海國史及び日本との國交史硏究}, 東京電氣大學出版局, 1969 한규철, {발해의 대외관계사}, 신서원, 1994
② 上田雄 孫永健, {일본발해교섭사}, 彩流社, 1994
③ 沿革圖七幅, 영남대학교 박물관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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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요동반도가 빠지고 압록강 입구가 경계간 된 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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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송기호, {발해를 찾아서}, 솔,
② 문교부 {국사}(상), 1990
③ 고등학교 {역사부도}, 동아출판사, 19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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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요동반도와 평안남북도가 빠진 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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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金毓 , {渤海國志長編}, 千華山館, 1934
② 최영희, {새역사부도}, 세계문화사, 1975
③ 중국사회과학원, {중국역사지도집} 제5책, 중국지도출판사, 1982
④ 北陸全力株式會社 {對岸諸國のおける渤海硏究論文集}, 19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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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의 영토는 어디까지인가?(2) - 발해의 서쪽 국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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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찍이 발해는 요동반도를 차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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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의 서쪽 강역문제는 요동의 지배여부와 집결된다. 이하 당나라의 요동지배는 중국 측 기록에 따른다하더라도 발해가 성립된 지 6년만인 714년 요서지방으로 완전 철수하였고, 여러 가지 정황으로 봐 그 이전에도 실제로 장악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하 간단히 이에 관계된 자료들을 간추려 본다.
1. 안동도호부는 발해 건국 이후 요동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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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686년 보장왕의 손자 고보원을 조선군왕으로 봉해 안동도호부의 옛 주민(舊戶)을 맡겨 통치(統攝)하려 하였으나 끝내 실행하지 못했다.(구당서 고려전) ---- 이 때 발해가 성립된다.
2) 699년 또 보장왕의 아들 고덕무를 안동도독에 제수하여 본번(本蕃)을 통솔하게 하였다. 이때부터 안동(도호부)에 있는 고구려의 옛 주민이 점차 줄어들어 돌궐, 말갈 등으로 흩어지 자 고씨의 군장은 마침내 끊기고 만다.(구당서 고려전) ---- 발해가 성립된 후 형식적으로나마 안동도호부를 유지하려했으나 실패한 기록이다. 여기서 말갈 땅으로 간 고구려인들은 바로 발해에 흡수된 것을 말하며 적어도 이때부터는 요동반도가 발해 땅이 된 것이다.
3) 714년 - 당나라, 요서지방 평주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한다. |
2. 732∼733 발해의 등주 공격 때 요동에는 당의 세력이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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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2년 9월 발해 장군 장문휴가 이끄는 발해 원정군은 바다길로 당나라 등주를 공격하여 등주자사 위준을 살해한다. 만일 가탐의 도리기에 나오듯이 압록강 하구에서 130리쯤 올라간 박작성이 국경선이라면 당나라를 침략할 대부대가 압록강 하구를 지키는 당나라군부터 무찔러야 했을 것이다. 발해 군이 현재 산동성인 등주를 공격하려면 반드시 압록강 입구를 떠나 해안선을 따라 항해하다 요동반도 끝에서 고군산 열도를 지나가야 한다. 만일 당나라가 요동반도를 차지하고 있었다 면 발해군의 대선단이 아무런 저항없이 등주를 공격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것은 요동반도 에 당나라 세력이 없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발해가 요동반도를 치지 않고 등주를 친 것도 요동반도를 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만일 요동반도에 당나라 세력이 있으면 그곳부 터 쳤을 것이다. 발해는 해군의 출병과 거의 같은 시기에 육로로 요서지방을 공격하였다. 그러자 당나라는 문제를 일으켰던 대문예를 유주에 보내 군사를 모아 싸우게 하고, 유주 절도사가 [하북채방처치사를 겸임하도록 해 상주, 낙주, 패주, 기주, 위주 등 총 16개 주와 안동도호부(평주)의 병력까지도 통솔하게 하였다 (자치통감 권 213 당기 현종 개원 20년) 한편 당나라는 당나라에 와 있던 신라 왕족 김사란을 신라에 보내 남쪽으로부터 발해를 침공하도록 한다(삼국사기 권 8, 신라본기 성덕왕 32년 7월). |
3. 요사 지리지에 반영된 요동반도의 발해 영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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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반도가 확실한 것만 몇 곳 간추린다(요사 권 38 지제8, 지리지 2, 동경도).
동경 요양부(東京 遼陽府) - 본래 조선(필자 주 : 단군조선)의 땅이다(本朝鮮之地). …… 당나라 고종이 고구려를 평정하고 여기에 안동도호부를 세웠는데 후에 발해 대씨의 소유가 되었다(唐高宗平高麗 於此置安東都護府, 後爲渤海大氏所有)
진주(辰州) 봉국군 절도 - 본래 고구려 개모성, 당 태종이 이세적을 만나 개모성을 격파 했다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발해가 개주(蓋州)로 바꾸었다.
노주(盧州) 현덕군 자사 - 본래 발해 삼노군이다. 옛날 5개 현으로 산양, 삼노, 한양, 백 암, 상암이었는데 모두 폐지했다. 철주(鐵州)는 본래 한나라 안시현이었는데 고구려 때 안시성이 되었다. 당 태종이 쳐들어 갔을 때 항복하지 않자 설인귀가 흰옷을 입고 성을 올라간 곳이 바로 이곳이다. .....발해 때 주를 두었는데 본래 위성, 하단, 창산 용진의 4개 현이다.
암주(巖州) 백암군 하 자사 - 본래 발해 백암성, 태종이 빼앗아 심주에 속하게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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