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만 조선
위만이 왕이 되어 왕검에 도읍하였을 때는 마침 효혜고후의 때로서 천하가 처음으로 안정된 시기였다. 요동태수가 위만으로 외신(外臣)을 삼아 요새 밖의 오랑캐를 막아 변방에서 도둑질하지 못하게 하고 오랑캐의 군장들이 천자께 들어가 뵙고자 하는 자는 이를 이를 막지 않도록 하자고 하니 천자가 이를 허락하였다. 이 때문에 위만이 군사의 위엄과 재물을 얻게 되자 그 옆의 작은 고을을 침략하여 항복을 시키니 진번과 임둔도 모두 와서 복속하여 땅이 수천리나 되었다. 위만이 왕위를 아들에게 전하고 다시 손자 우거에 이르자 한나라에서 도망온 사람들을 유인한 것이 자못 많았다. 또 일찍이 들어와 천자를 뵙지 않으면서 진번의 곁에 있는 나라들이 글을 올려 천자를 뵙고자 해도 가로막아 통하지 못하게 했다. 원봉 2년(기원전 111년)에 한에서는 섭하를 사신으로 보내어 달래고 타일렀으나 우거는 끝내 조서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섭하는 돌아가다가 국경 근처 패수에 도착하자 부하를 시켜 자기를 배웅나온 조선비왕 장(長)을 죽인 다음 달아났다. 돌아가서 이 사실을 천자에게 보고하여 요동동부동위가 되었다. 조선은 섭하를 원수로 여거 요동을 습격하였다. <사기> 권115, 조선열전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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