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귀족과 농민의 생활상
지난날 신라는 두 나라에 가로막혀 북에서 얻어맞고 서에서 침범당하여 잠깐도 편안할 때가 없었다. 병사들의 뼈는 들판에 널려 있고 몸과 머리는 따로 멀리 떨어져서 뒹굴었다. .....이제 두 적국이 평정되고 사방이 편안하여 싸움에서 공을 세운 자에게도 아울러 상을 주고 전사한 영혼에게 벼슬을 추증하였다. .....백성 가운데 집이 가난하여 남의 곡식으로 사는 자와 흉년이 든 지역에 사는 자는 원금과 이자를 다 탕감하고, 풍년이 든 지역의 땅에 사는 자는 금년 추수기에 가서 원금만을 반환하고 이자는 받지 않되.... <삼국사기> 신라본기 문무왕 9년 당에 글을 올리고 겸하여 은 3만 3천6백 푼, 구리 3만 3천 푼, 바늘 4백 개, 우황 120푼, 금 120푼, 40승 포목 6필, 30승 포목 60필을 진상하였다. 이 해에 곡식이 귀하여 백성이 굶주렸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제7문무왕 12년 재상가에는 녹이 끊이지 않으며, 노예가 3천이고 이에 상당하는 수의 갑병(군인)과 소, 말, 돼지가 있었다. 바다 가운데 섬에서 길러 필요할 때 활로 쏘아 서 잡아먹었다. 곡식을 꾸어서 갚지 못하면 노비로 삼았다. <신당서> 동이열전 신라 9월 9일 왕이 좌우와 더불어 월상루에 올라 사면을 바라보니, 서울에 민가가 즐비하고 풍악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왕은 시중 민공을 돌아보며 ‘내가 들으니 지금 민간에서는 지붕을 기와로 덮고 짚을 쓰지 아니하며, 밥을 짓되 숯으로 짓고 나무를 쓰지 않는다고 하니 과연 그러한가?’ 하고 물으니, 민공이 ‘신도 역시 그와 같이 들었습니다.’ 하고, 이어서 ‘황상이 즉위한 이래 음양이 고르고 바람과 비도 순조로워 해마다 풍년이 들고 백성은 먹을 것이 넉넉하며 변경은 평온하고 시정은 안락하니, 이는 모두 임금의 덕이 크신 때문입니다.’ 라고 하였다. 왕은 기뻐하며 ‘이는 모두 경들이 보좌한 힘이다. 내가 무슨 덕이 있었겠는가?’ 라고 하였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제11 헌강왕 6년 정월, 굶어 죽는 백성이 많으므로 조를 한 사람당 하루 3승씩 7월까지 주게 하였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제8 성덕왕 6년 경덕왕 14년, 흉년이 들어 백성이 굶주리고 유행병마저 돌았다. 부모가 몹시 굶주리고 약한데다가 어머니는 또 옹질이 발생하여 거의 죽게 되니 향덕은 밤낮으로 입은 옷을 벗지 아니하고 정성을 다하여 위안하였다. 봉양할 것이 없자 자기의 볼기살을 베어 먹이고, 또 어머니의 옹질을 빨아서 낫게 하였다. 이 사실을 마을에서 주로 보고하고, 주에서는 왕에게 보고하니 왕은 명령을 내려 벼 3백 가마, 집 한 채, 식구 수에 따라 농토 얼마씩을 주게 하고 관원을 시켜 비석을 세워 사적을 기록하여 표본으로 삼게 하였다. 지금까지 사람들이 그 땅을 효가리(孝家里)라고 부른다. <삼국사기> 열전 제8 향덕 손순은 신라 모량리 사람이었다. 아버지가 죽은 후 처와 같이 남의 집에 일 을 하여 주고 식량을 얻어 늙은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손순에게는 어린 아이가 하나 있었는데 그 아이가 자기 어머니의 밥까지 빼앗아 먹는다고 해서 부부는 서로 의논하여 늙은 부모를 위하여 아이를 땅에 묻고자 하였다. 부부는 아이를 업고 뒷산으로 올라가 땅을 팠다. 땅을 파다가 돌로 만든 종이 나오자 부부는 놀라고 이상하게 여겨 그 종을 쳐보니 매우 아름다운 소리를 내었다. 부부는 이를 아이의 복이라고 여겨 아이를 업고 종을 가지고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 종을 다시 쳐보니 청정한 그 소리는 궁중 안까지 들렸다. 홍덕왕이 이 소리를 듣고 사람을 보내 조사한 결과 손순의 효성을 알고 집과 곡식을 내렸다. <삼국유사> 권5 효선 제9 신라 한기부 여권의 딸 지은은 편모 슬하에서 나이 32세가 되어도 시집을 가지 못하고 편모만 봉양하였다. 집안이 어려워 남의 집 일을 하고 그 삯으로 겨우 연명하여 갔다. 나중에는 부잣집의 종으로 몸을 팔아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후에 어머니가 그 내막을 알고 밥도 먹지 않고 모녀가 대성통곡하였다. 그때 지나가던 화랑 효종이 이 광경을 보고 자기집 조 백석과 의복을 갖다주고 몸을 판 그 집에 가서 변상을 하고 좋은 사람에게 시집 가게 해주었다. 이에 낭도 수 천명이 각기 조 한 섬씩을 보내니 진성왕이 듣고 벼 5백 석과 집 한 채를 주고 호세와 역을 면제해 주었다. <삼국사기> 열전 제8 효녀 지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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