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식의 한국 통사, 서문
대륙의 원기는 동쪽 바다로 달려 백두산에 극하고, 북쪽으로는 요야를 열고 남쪽으로는 한반도를 이루었다. 한국은 중국 요제의 시대에 건국하여 인문이 일찍이 열렸고, 그 백성은 윤리가 돈독하여 천하가 군자의 나라로 칭하였으며, 역사는 면면히 계속하여 4300여 년이 되었다. 오호라, 옛날의 문화가 극동 3도에 파급하여 저들의 음식, 의복, 궁실이 우리로부터 나왔고, 종교와 학술이 또한 우리로부터 나왔다. 그러므로 저는 일찍이 우리를 스승으로 삼아왔는데 지금은 이를 노예로 삼는가. 나는 재앙이 닥쳐왔을 때에 태어나서 나라가 망하였음을 애통하였는데 이미 죽지 못하고 있다가 마침내 도망하게 되었다. 경술년(1910)모월 모일 아침에 서울을 떠나 저녁에 압록강을 건너 다시 북안을 거슬러올라가 위례성을 바라보며 멈추었다. 예와 지금을 아래 위로 살펴보니 공허한 느낌이 더하여 머리를 숙이고 거닐며 연연하여 오랫동안 떠나질 못했다. 외국에 망명하여 사람을 대하기가 더욱 두려우니 가종과 시졸이 돈통 나를 망국노인 자라고 욕하는 것 같다. 천지가 비록 크지만 이 욕을 짊어지고 어디로 가겠는가. 때에 운하의 가을이 저물어 쑥이 꺾어지고 풀이 마르고 원숭이가 슬퍼하고 부엉이가 운다. 내가 울면서 고향을 떠나 아직 눈물이 마르지도 않았는데, 이런 모습들을 보니 슬픔이 더하여 견딜 수가 없다. 고국을 바라보니 구름과 연기처럼 아득하다. 아름다운 산천이여, 우리 조상이 여기에 살았고, 무성한 삼림이여, 우리 조상이 이를 심었고, 기름지고 넓은 땅을 우리 조상이 경작하였으며, 금, 은, 철은 우리 조상이 이를 채취하였고, 의관으로 짐승과 구별하였고, 기명으로 생활을 도왔고, 예악과 형정으로 문명을 이룬 것이 모두 우리 조상의 손으로 된 것이다. 대저 우리 조상은 무한한 뇌와 피와 땀을 다하여 우리 자손들에게 생산과 교육의 기구를 끼쳐주어 모두 갖추어졌다. 이로써 능히 세세토록 전수하여 우리의 생활이 넉넉하게 되고 우리의 덕이 바르게 되어 개명의 길이 전하였거늘, 어찌하여 하루아침에 타족에게 호탈을 당하여 사방에서 겨우 호구를 하고 황겁히 유리를 하여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또한 멸절의 환난에 빠지려 하는가. 또한 대저 세상의 강포한 자는 잘로 약소국을 침략하고 약한 종족을 도태시키는 것을 일로 삼아 그 참독을 받는 자가 많으나, 우리 한민족과 같음은 없는 것 같다. 고금의 망국으로 비교하여 말하면, 스웨덴이 노르웨이와, 오스트리아가 헝가리와 모두 합병했다고 말하고 있으나 그 민족의 대우에는 차별이 나타남이 없었는데, 한국인도 그러한가, 터키가 비록 이집트를 병합하였으나 오히려 그 왕을 존속시켜 조상에 제사지내는 것을 쉽게 하게 했는데, 우리 한국의 황제는 일본의 왕작이 되었다. 영국이 캐나다 등지에서 헌법을 갖도록 허락하여 그것을 보장하고 의회를 세워 이를 유지케 하고 다른 나라와 맺은 조약을 모두 일일이 보존케 하거늘, 한인이 능히 이것을 획득하였는가. 저가 한국에 정치를 실시하는 것은 대만에서 실시하는 것을 그대로 하여 차이가 없게 했는데, 대만은 나라가 아닌데 동등하게 대우되니 이는 망국으로서 가장 낮은 것이다. 대개 국교, 국학, 국어, 국문, 국사는 혼에 속하는 것이요, 전곡, 군대, 성지, 선박, 기계는 백에 속하는 것이다. 그런데 혼의 됨됨은 백에 따라서 죽고 사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국교, 국사가 망하지 않으면 그 나라는 망하지 않는다. 오호라, 한국의 백은 이미 죽었으나 이른바 혼은 살아 있는가 없는가. 내가 단군 개국기원 4190년에 황해의 바닷가에서 태어났는데 고고의 소리를 지르며 태어나던 그날 이미 국민으로서의 책임을 짊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늙어서 머리가 희어진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 직분을 다하지 못하여 우리 조상들을 제사하지 못하게 되니 이러한 큰 죄를 짊어지고 어디로 갈 수 있겠는가. 본조는 문을 숭상하며 다스린 지 5백년에 사람을 길러내어 은택을 입힘이 깊고 두터우니 문헌의 저술은 응당 적임자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러한 적임자가 아니니 어찌 감히 대신할 수 있겠는가, 이에 머뭇거리며 주저하기 몇해를 넘기었는데 그래도 저술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못들었다. 세월은 유수와 같아 나로 하여금 조금도 미룰 수가 없게 한다. 내가 또한 이 직책을 다하지 않는다면 곧 4천년의 문명을 가진 전통 있는 나라가 역시 장차 발해의 국가가 망하자 역사도 망한 것과 같은 따위가 아니겠는가. 비록 천하의 사람들이 나를 만용이라고 꾸짖더라고 어찌 그만둘 수 있겠는가. 그러나 4천년 전체의 역사는 고루하고 쇠둔하여 능히 감당할 수 있는 바가 아니며 또한 짧은 기간에 이룩할 수 없는 것인즉 이는 능력있는 자에게 희망을 걸어볼 일이다. 다만 내가 세상에 태어난 이후에 목격한 근사는 힘써 노력해볼 만한 일이다. 이에 갑자년(1864)으로부터 신해년(1911)에 이르기까지 3편 114장을 지어 이름하여 '통사'라 하니 감히 정사로 자처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행히 우리 동포들이 국혼이 담겨 있는 바임을 인정하여 버리지 말고 내치지 않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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