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옥, <개벽의 서>에 대한 감상
동학(東學)이란 주제는 한 폭의 그림이나 시인의 음풍이나 논객의 글귀에 담기에는 너무도 방대하고 처절하다. 눌민(訥敏) 임감독님이 당신밖에 더있겠냐구, 달콤한 꾐에 자진하여 넘어갔을 땐 그런 대로 자신도 있었구, 장끼인 오만을 부려볼때로 부려 볼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백골난망의 후회를 거듭거듭 내 품고 있는 나 도올의 고뇌는 난등(難登)의 거봉(巨峰)때문만은 아니다. 내 앞에 비친 주마등의 정경이 너무도 진지해서 내 간담을 서늘케 하고 내 붓끝을 동사시켰기 때문이다. 삶이라는 죽음속에서 처절하게 절규하는 아수라의 독혼(獨魂)은 너무도 무지(無知)했던 나의 심령을 일깨우고 이 조선땅의 황톳빛이 바로 핏빛이었다는 것을 새롭게 인식시켜주었기 때문이다. 해월(海月)과의 만남은 도올의 생애(生涯)에서 두번 다시 있을 수 없는 위대(偉大)한 만남이다. 너무도 위대한 만남이기에 나는 그 만남을 기리거나 그리는데 무지무지한 공포를 느끼고 있다. 해월이 도올에게 숭배나 존경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만난 그 해월이 너무도 평범한 한 인간이기때문에 공포스러운 것이다. 너무도 그는 처철하게 사람이기만을 고집하였다. 무섭도록 그는 사람일 뿐이었다. "동학(東學)은 동학(東學)이 아니다. 그것은 무극대도(無極大道)일 뿐이다." 이것은 손천민(孫天民)이 집필하여 계사(癸巳, 1893)년 2월 11일 광화문전(光化門前)에서 임금께 진상한 복합상소문(伏閤上疏文)의 한 구절이다. "동학(東學)은 혁명(革命)이 아니다. 그것은 개벽(開闢)이다." 이것은 제일 먼저 해월이 말하였고 그 다음엔 도올이 한 말이다. 이 작품이 말할려고 하는 모든 주제는 바로 이 두 테제에 압축된다. 더 이상의 구구한 췌설이 필요없다. 동학은 우린민족의 근대정신(近代精神, Modernity)의 출발이다. 이 작품은 넓게는 동학의 사상을, 그리고 좁게는 제2세 교조(敎祖) 해월(海月) 최시형(崔時亨, 원명 崔慶翔)의 일생을 대상으로 하고있다. 이 작품을 만들고 있는 작가가 이미 동학을 우리민족의 근대성의 출발로서 규정하고 있는 이상, 특정한 종교이념이나(천도교의 교리), 특정한 정치입장으로써 이 작품의 소재를 대하고 있질 않다. 따라서 이작품은 종단에서 말하는 이야기나 역사가들이 꿰맞추어 놓은 사실(史實)들을 참고로는 하였으되 전혀 그러한 사실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그렇다고해서 상상의 자유에 방임된 것도 아니다. 동학의 역사 그자체가 불행하게도 아무런 정론(定論)이 없으며 탐구해보면 해볼수록 그것은 "버려진 세계"일 뿐이라는 한심한 사태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사태에 대한 연민과 애정만 깊어질 뿐이다. (............) 나는 동학(東學)을 바라보는 두개의 좌우명을 가지고 있다. 1) 동학은 동학이 아니다, 무극대도일 뿐이다. 2) 동학은 혁명이 아니다, 개벽일 뿐이다. 전자는 동학의 보편주의(Universalism), 그리고 민족사의 굴레를 초월하는 범인류적 미래의 비젼을 의미한다. 후자는 동학의 이념(이데올로기)의 총체성, 그 총체성은 결코 정치사적 사건, 특히 동학란(갑오농민전쟁, 갑오동학혁명 등등으로도 명명)이라고 부르는 좌절의 사태에 의하여 평가될 수 없는 것임을 명백히 하고 있다. 여태까지의 동학의 역사적 이해는 불행하게도 청일전쟁의 도화선이 된 "동학란"이라는 정치사적 사건의 틀속에서만 이루어진 것이었기 때문에, 동학을 일으킨 사람들이 과연 어떤 사람들이며 이사람들이 구현하고자 한 인간과 사회가 어떠한 것인가에 관하여 일체의 정보가 차단되어 있었다. 이 영화는 동학란을 그리고자 한 영화가 아니다. 동학란은 분명 기나긴 동학운동의 한 계기였을 뿐이며, 또 난의 주체가 된 조직도 우발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삼십년의 역사적 과정을 통하여 눈덩이 뭉쳐 커나오듯 커나온 것이며, 바로 그 눈덩이를 굴린 주체는 녹두 전봉준이 아니라 해월 최경상이었음을 명백히 해두고자 한다. 역사적 사실이 일시적 이념의 편향 때문에 왜곡되는 그러한 불행한 사태는 있을 수 없다. 그렇지만 이 작품에서는 모든 가능한 입장들을 편견없이 있는 그대로 살려 드러내줌으로서 오히려 긴장감을 유지하는 태도로 일관하였다. 이 작품을 통하여 조선의 민중들에게 그들에게서 결코 멀지 않았던 과거의 의미가 되살아나고, 그들이 딛고 서있는 땅이 그다지도 처절한 투쟁의 족적이 서려있다는 사실의 인지를 통해 우리미래사회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획득하게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면서 서(序)를 대신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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