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 선언(1943)
제2차 세계대전 말엽인 1943년 11월 22일 연합국측의 루스벨트 미국대통령, 처칠 영국수상, 장개석 중국총통이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 모여 회담하고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5일간에 걸친 회담의 결과 27일 발표한 이 선언에서 연합국은 전쟁발발 후 최초로 일본에 대한 전략을 공동 토의했으며, 전쟁에 승리한 후에도 연합국은 자국의 영토확장을 도모하지 않으며 오직 제1차 세계대전 후 일본이 타국으로부터 약탈한 영토를 원래 소속국가에 돌려줄 것을 결의하고 한국의 독립을 처음으로 보장했다. 카이로 선언의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3국은 일본에 대한 장래의 군사행동을 협정했다. ② 3국은 야만적인 적국에 대해서는 가차없는 압력을 가할 결의를 표명했다. ③ 일본의 침략을 저지, 응징하나 3국은 모두 영토확장의 의도는 없다. ④ 제1차 세계대전 후 일본이 탈취한 태평양 제도를 박탈하고, 또 만주, 대만, 팽호제도 등을 중화민국에 반환하며, 일본이 약취한 모든 지역에서 일본세력을 구축한다. 이밖에 특히 한국에 대해서는 특별조항을 넣어서 "현재 한국민이 노예상태에 놓여 있음을 유의하여 앞으로 적당한 시기에 한국을 자유독립국가로 할 결의를 가진다"라고 명시, 처음으로 한국의 독립이 국제적인 보장을 받게 되었다. 이 선언은 이상의 목적을 위해 계속 싸울 것을 천명했다. 카이로 선언은 1945년 포츠담 선언에서 조항이 재확인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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