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전용을 생활하하자 (1957)
1.돼지에게 던져진 진주여서야! 영국 사람이 남아프리카에 식민지를 만들기 시자할 때에 트란스발에서 아이들이 금강석을 가지고 노는 것을 보고 "얘들, 내 이 아름다운 구슬(유리로 만든)을 줄 테니 너희의 그 돌멩이(금강석)하고 바꾸겠느냐?" 하였더니, 그 아이들 말이 "이까짓 것이야 저 개천에도 쌓이었는데 바꾸기는 무얼 바꾸겠습니까? 거저 가져 가시지요." 하고 내어 주었다는 이야기를 오래 전에 어디에선가 읽은 기억이 아직도 새롭게 남아 있다. 그 금강석은 지금까지 영국 발물관에 보관되어 세계에 제일 큰 금강석이라고 자랑한다고 한다. 아무리 귀중한 보배라도 그 가치를 모르는 사람은 그것을 지니고 간직할 자격이 없고 오직 그 가치를 아는 사람만이 이를 지니고 간직하여 귀하게 쓰는 주인이 될 수 있다. 돼지에게 진주를 주어 보라. 곧 짓밟아 시궁창 속에 묻어 버리고 말 것이다. 오히려 가치를 알고 있는 쉰 바지 덩어리만도 못하게 여기는 돼지다. 우리는 세상에 둘도 없는 가장 귀한 보배를 하나 가지고 있다. 이는 트란스발의 아이들이 금강석을 거저 내어 주듯이 남에게 줄 수 없고 아무리 가난하여 팔아 먹으려 하여도 팔아 먹을 수 없는 것이다. 나라는 팔아 먹고 인견은 팔아 먹었지마는 이 보배만은 팔아 먹으려 하여야 팔아 먹을 수 없었다. 보통의 보물은 쓰면 줄어지고 없어지며 헐어지게도 되지마는 우리가 가진 이 보배는 쓰면 쓸수록 늘어나고 빛나고 가치가 많아지는 신기한 보배다. 다만 이 보배가 가치를 잃게 된다든지 없어진다든지 할 경우가 있다면 오직 이 보배를 가 진 주인이 이를 써 주지 않고 푸대접할 경우뿐이다. 이 보배가 무엇이냐 하면 곧 '한글(훈민정음)' 이다. 우리는 한글에 대한 인식이 남아프리카 아이들의 금강석에 대한 인식보다도 부족하였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어 놓고 발표도 하기 전에 소위 최고 지식을 가지었다는 최만리 일파의 집현전학자(오늘의 학술원 회원과 같음)들이 만리장서의 반대 상소문을 올리고 격렬히 이 보배를 깨뜨리어 버릴 운동을 일으키었던 것이다. 그 반대 이유야말로 참말 세종대왕의 말씀과 같이 '썩은 선비'의 미친 짓이었다. 이때 만일 세종대왕과 같이, 좋은 일이라면 꿋꿋이 버티고 나아갈 용기를 가진 임금이 아니었다면 한글은 낳기도 전에 낙태되어 버리었을는지도 모를 아슬아슬한 위기였다. 이것이 한글의 첫째 수난이었다. 한글이 반포된 지 85년 뒤에 연산군의 무도한 한글 파괴 폐지를 당하게 되었다. 그 이유야 다 잘 아는 바와 같이 자기의 색마광, 살인광, 문화파괴광의 악행을 어느 양심 가진 자가 한글로 폭로한 때문이었다. 한글을 가르치지도 말고 배우지도 말고 쓰지도 말라 하는 엄명이었다. 이것이 한글의 두 번째 수난이었다. 그 뒤 연산주는 내어 쫒기고 그의 악정은 다 바로잡히었지마는 일반 국민의 머리에서나 집정자의 머리에 한글을 존중하여 쓰고 장려하려는 생각(세종대왕부터 성종대왕 때까지와 같은)은 없어지고 반대로 한글을 멸시하고 천대하여 이를 쓰는 것은 '상놈'이나 '무식한 자'라고 낮보며 한문은 신주같이 귀중히 여기어 몸은 '한국'사람이면서 정신은 명나라 사람으로 완전히 변하도록 썩었던 것이다. 이 같이 저를 잃고 취생몽사의 생활로 390년이란 긴 세월을 지나게 되었다. 이것이 한글의 세 번째 수난이다. 이런 썩은 사회 상태가 권덕규씨로 하여금 동아일보 지상에 '가명인두상에 일봉'이란 통쾌한 논문을 쓰게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가명인'측의 맹렬한 반대로 사장 박영효씨가 사면하게까지 되었었다. 이는 왜정 때(동아일보가 난 지 얼마 안된)의 일이다. 그러나 아직도 '가명인'은 적지 않다. 우리 한글은 510년이란 역사를 가지었고 또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소리글임에도 불구하고 시궁창에 던진 구슬 모양이 되었다. 그 까닭은 이미 말하였다. 갑오경장 이후에 우리 민족은 좀 깨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꿈인지 생신지 구별을 하지 못할 정도로 버릇에 사로잡히어 있다. "쓰면 쓸수록 늘어나고 안 쓰면 안 쓸수록 쇠멸되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수수께끼 같은 물음의 대답은 '말과 글'이다. 우리말 우리글을 쓴다면 우리말 수는 늘고 우리들은 이에 따라 발전될 것이다. 2.글 없는 민족엔 문화가 없다 과거와 같이 한문을 숭상한다면 과거와 같이 한문에서 온 말만이 자꾸 늘게 될 것이요, 서양 말을 숭상하여 무제한으로 끌어들인다면 다시 한문말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한글로 쓰자!'고 외치어 온 지 오래다. 왜정 때부터 한글 동지들은 이를 외치어 온 지 35년이 되었다. 이를 위하여 왜정 당국자에게 목숨까지 바친 동지가 여러 분이다. 왜 이처럼 비싼 값을 내면서 외치는가? 이는 다름 아니라 우리 민족 문화가 발전하느냐 쇠망하느냐 갈래길이 되기 때문이다. "문화가 쇠망한들 못살 리야 있겠느냐? 아프리카나 남양군도의 야만들도 살고 있지 않느냐?"고 항의할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나 이는 야만이 되어도 좋다는 막다른 골목 같은 말이니 대답할 필요도 없거니와 문화가 있다면 그 민족은 번영할 것이요, 불행히 망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문화는 그 민족의 생명이기 때문에 다시 살아나게 될 원동력을 가지고 있다. 보라! 헬라가 다시 일어나고 애급이 다시 일어나고 인도가 다시 일어나고 한국이 다시 일어나지 않았느냐? 그러나 이 민족들이 일찍이 문화를 가지지 못한 야만이었더라면 결코 오늘날 다시 일어나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다 같이 식민지로 있던 아프리카의 각국 영토나 남양군도의 각국 영토만이 독립자주의 나라가 되지 못한 것은 오직 문화가 없기 때문이다. 문화는 민족의 생명이다. 문화는 민족 번영의 거름이다. 그러면 이 문화를 일으키는 이로운 연장(기계)은 무엇인가? 이는 두말할 것도 없이 글이다. 글 없는 민족이 문화를 가진 민족이 과거에 있었던가? 현재에 있는가? 글이 있어도 그것이 쉽고 이롭게 된 것인가, 어렵고 해롭게 된 것인가에 따라 문화 발전의 속도의 차이가 생긴다. 애급이나 중국이 4,5천년 이전에 문화를 일으키었던 민족이지마는 훨씬 뒤에 일어난 문화보다 뒤떨어지고 따라서 뒤에 일어난 문화에 압도를 당하여 쓰러짐은 이를 잘 설명하여 주는 사실이다. 쓰면 발전되고 안 쓰면 쇠퇴된다 함은 이미 말하였거니와 우리 한글과 같이 세계의 글 중에 으뜸가는 글이지마는 이를 쓰지 않으면 문화는 일으킬 수 없는 것이다. 혹은 "우리로서는 한문을 전폐할 수 없다"고 한다. 혹은 "소학을 졸업하고도 신문 한 장을 읽지 못한다"고 현 교육 방침(한글 전용의)을 비난함을 가끔 듣는다. 서양 사람들이 한문을 쓰지 않고 못 살겠다고 말함을 듣지 못하였다. 또 그들이 소학교는 고사하고 대학을 졸업하였어도 한문 신문을 읽지 못한다고 하여서 그 나라 교육방침이 틀리었다고 비난한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다. 어지하여 우리만이 한문 없이는 못 살겠다고 하는가? 서양 사람은 한문을 저마다 배우지 않되 동양문화는 우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우리도 어려운, 세계에 제일 어려운 한문을 저마다 배우느라고 소, 중, 대학의 대부분의 시간을 이에 희생당하여 다른 과학에 남보다 뒤떨어지게 하는 것보다는, 이는 전문가에게 맡기고 일반은 쉬운 한글만 배워서 한문 배우기에 희생될 허다한 세월의 시간을 다른 과학연구에 쓰자는 것이다. 한문에 중독된 사람들이 다 죽은 다음 세대에는 신문이나 잡지를 한문으로 박을 사람도 없을 것이요, 또 소학을 졸업하고도 신문 한 장을 못 읽는다는 한탄을 할 사람도 없을 것이다. 한문의 중독은 아편 중독과 같아서 이미 얻은 자기의 버릇을 쓰기에 편하다하여 억만대 자자손손에게 그 어려운 한문이 징역을 시키려는 것이다. 이는 잔인성의 횡포라고 느끼어진다. 그러나 아편 중독이 되지 않은 사람으로서 아편 중독자가 아편을 안 쓰면 못 살겠다는 말을 들을 때에 정신이상자의 말같이 들리는 것이다. 이미 말함 같이 우리는 문화를 급급히 향상시키지 않고서는 남과 같은 행복을 누릴 수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문화발전의 촉진을 위하여 우리는 한글을 전용하여야겠다. 해방 후 우리 정부가 서자 헌법 원문을 한글로 적었고, 그 해 10월 9일 한글날에 '한글전용법'을 발표하여 그 법은 엄연히 살아 있건마는 여태까지 한문은 더 성행되는 기세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전번에 이대통령께서는 각 언론기관에 한글 전용을 권한 일이 있었고 서울신문이 그 앞잡이가 되어 이제 순 한글판을 내고 있다(한글판만을 내었으면 더 좋았겠으나). 나는 이에 대하여 가장 깊은 경의를 표하여 마지않으며 가장 고마움을 표하여 마지않는다. 과거 독립신문이나 해외 동포들의 온갖 간행물이 순 한글로 아아옴을 보고 들은 바다. 그리고 미국에 있는 동포들이 국내에서 발행하는 신문이나 잡지나 단행본을 순 한글로 써주기를 갈망하고 한문을 많이 섞음에 대하여 불평을 말함을 들었다. 국내의 간행물에 한문을 많이 섞음으로 말미암아 국내의 한문을 모르는 대다수의 동포들과 해외의 동포들의 독자를 많이 잃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또 한문을 많이 섞어 써 버릇하는 일은 그만큼 우리의 순수한 국어를 구축하게 되어 우리말의 정화와 발전을 크게 방해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유명한 언어학자 예쓰페르센이 말하기를 "외국말을 자주 많이 써 버릇하면 독같은 뜻을 가진 순수한 자기 말에 대한 어감을 서툴게하여 결국은 자기 말을 죽이고 외국말을 끌어들이게 된다" 하였다. 또 여러 언어학자들은 자기 말을 충분히 배우기 전에 외국 말을 조교육시킴을 반대한다. 우리는 여기에 귀를 기울이고 크게 반성하여야 할 것이다. "쓰면 발달하고 안 쓰면 쇠퇴 또는 퇴보한다"하는 진리는 생물진화에만 적용될 진리가 아니요, 말과 글의 발전에 대하여도 적용될 진리다. 생물학자의 말을 들으면 생물의 그 지체나 어느 기관을 쓰면 쓸수록 발달되지마는 안 쓰면 안 쓸수록 쓰기가 어렵게 되고 마침내는 퇴보하여 못쓰게 된다 한다. 장님은 보지 못하기 때문에 보는 대신에 청각이나 미각이 놀랍게 발달하여 보통 눈 뜬 사람이 따를 수 없이 됨을 본다. 인력거군이나 우편 배달부는 늘 다리를 많이 쓰게 되므로 아킬리쓰 근육이 심히 발달하여 보통 사람이 따를 수 없을 건각자가 되고 대장장이는 늘 망치질을하여 팔을 많이 쓰기 때문에 팔 힘이 보통 사람이 따를 수 없이 세게 된다. 그 반대로 어릴 적부터 귀먹은 어린 아이는 남의 말을 듣지 못하기 때문에 말에 쓰이는 발성기관을 쓰지 않아서 결국은 벙어리가 된다. 어느 동굴 속 바닷물에 사는 고기를 잡아 보매 눈이 모두 멀었더라고 하는데, 동물학자는 설명하기를 이는 컴컴하여서 볼 필요가 없기 때문에 시각을 쓰지 않아서 눈의 작용은 퇴보되어 눈이 멀게 된 것이라 한다. 말과 글도 이를 사랑하여 쓰면 그 말과 그 글은 발전하기를 마지않지마는 천시하고 멸시하여 안 쓰는 그 말과 글은 퇴보에 퇴보를 거듭하여 결국은 폐기됨에 이른다. 이는 멀리 그 증거를 찾을 것 없이 우리말과 우리 한글을 보면 똑똑히 깨닫게 될 것이다. 과거의 우리 선조들은 한문과 한국에서 온 말을 존중하여 쓰고 우리말과 한글을 천대하고 박대하였기 때문에 우리말과 우리글의 쇠퇴를 만들어 낸 것이다. 명치유신 초에 일본의 삼유례란 문부대신(우리의 문교부장관과 같음)이 일본말과 일본글을 쓰지 말고 영어, 영문을 쓰자고 주장하였을 때에 어느 외국인 고문관이 무도한 짓이라고 반대하여 중지되었다 함은 오늘날의 한 웃음거리가 되었거니와 우리는 그를 흉볼 수 없는 그러한 잘못을 범하고 실천한 민족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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