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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풀이/역사 사료와 데이터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에 대한 프랑스의 반응 - 벨로네의 서한

 

벨로네의 서한

조선 국왕이 프랑스 주교 2인과 선교사 9인 그리고 조선인 신도 다수를 살해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잔폭은 패망을 자초하는것이다. 조선은 중국에 납공하는 나라이므로, 본국이 장차 군대를 일으켜 유죄를 정토하러 떠나기 전에 조선 원정을 알리는 것이 도리에 합당한 줄 안다. 조선 국왕이 프랑스 신부를 살해하는 날은 곧 조선국 최후 멸망의 날이 될 것이다. 수일 내로 조선 정복을 위해 출정할 것이다. 조선을 정복하여 국왕을 책립하는 문제는 프랑스 황제의 명령에 따라 시행할 것이다. 전에 수차 귀 아문을 방문하고 프랑스 석교사에게 호조(여권) 발급을 요청하였으나, 귀 아문은 모두 거절하였다. 그 이유는 조선이 비록 중국의 조공국이지만, 모든 국사를 자주로 처리한다는 것이다. 호조 발급은 천진조약에도 기재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이에 본관은 조선 문제에 간섭하지 않는다고 믿고, 이후부터 본국과 조선이 전쟁을 벌이더라도 간섭하지 않기를 선언한다.

- 청계중일한관계사료 제 2권 -

참고글 : 이 서한은 대원군의 쇄국정치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자료입니다. 19세기 중엽부터 서양 열강의 배가 한반도에 자주 출몰하게 되는데, 이것을 이양선이라고 하지요. 대원군은 초기에는 서양의 천주교에 관대하였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서양의 배를 이용하여 러시아를 견제하려고 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프랑스 선교사들의 알선으로 프랑스 세력을 이용하려던 대원군의 정책이 실패하자, 대원군은 유생들의 강력한 요구를 수용하여 천주교를 탄압하기 시작합니다. 이를 병인 옥사라고 부릅니다.

프랑스는 이를 구실로 쳐들어왔습니다. 대원군은 굳은 항전의 의지로 일관하였고 양헌수 부대, 한성근 부대의 활약으로 프랑스군을 격퇴하는데 이를 병인양요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