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무사 장정
지난 갑오 을미경장 이후 상권이 모두 외국인들의 수중에 넘어갔다. 각 전방은 폐지하지 않았어도 제 스스로 폐하고 거리가 쓸쓸하다. 시골의 부보 양 상인들은 의지할 곳도 없고 생업도 없으며 따라서 물화 유통의 길이 막히게 되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어찌 개탄하지 않으리오. 상로를 널리 열려면 그 세력이 나누어질 수 없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시종일관하면 지금부터 상권을 주도하게 될 것이다. 각 전방의 보상과 보상이 합해 하나의 상무사로 통합한다. 삼가 칙령을 받들어 장정을 만드니 그 조례가 다음과 같다. 무릇 우리 상민들은 이를 준수하여 의심함이 없이 위로는 황실을 보호하고 아래로는 재원을 풍부히 늘려 성은에 화답하면 어찌 다행한 일이 아니겠는가. |
참고글 : 19세기에는 전국적인 조직과 기동성을 바탕으로 보부상들이 성장하였습니다. 이들 보부상단은 막강한 세력을 형성하여 국가에 영향력을 행사할 정도의 거대한 경제조직체였습니다.
조선 정부는 1866년 보부청을 설치하고 보부상을 관장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장돌뱅이들(보부상)은 등짐장수(부상)과 봇짐장수(보상)으로 나뉘어 활동하였는데, 1883년 혜상공국이 설치되면서 이들을 군국아문에 부속시켜 국가 통제에 두기 시작합니다. 혜상공국이 하는 일은 전국의 보부상을 관장하면서 어려운 장사치들을 구휼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이 많은 폐단을 가져와서 조선 후기 많은 개혁 속에서 <혜상공국을 혁파한다>라는 조항이 들어간 개혁내용이 많습니다. 유념해서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업단체를 국가가 규제하는 동안 그 명칭이 많이 바뀌고 새로운 단체들도 많이 등장합니다. 상무회의소(1894년), 상무사(1899년), 공제소(1903), 진면회(1904) 등으로 바뀌다가 일제시대 일제 강점에 저항하는 정치색을 띄어서 소멸되어 갑니다. 또 황국협회, 황국중앙총상회 등의 조직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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