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경제 침투
문을 지키는 것을 혁파한 뒤 다시 막을 방도가 없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번만하기는커녕 왜관에 모여들어 큰 장시를 이루었습니다. 따라서 매번 절도의 우려가 있고 일본 상인들은 잃어버린 물건이 있으면 곧 공간에 돌려달라고 요구합니다. 이것은 새로운 폐의 일단입니다. 관리관의 감독 아래 공간에서 무역하는 외에도, 그들(일본인)은 유상이라 말하고 10명이나 7-8명씩 무리를 지어 성부안을 빈번히 오가는데 그 행로가 30리나 됩니다. 장사하는 아녀자를 만나면 문득 소리쳐 놀라게 하여 창황하여 도망하게 합니다. 성안에 사는 사람은 두려워 겁나 문을 닫고 나가지 않으며 뱀과 벌레보는 것처럼 하여 진실로 민망합니다. 또한 그들이 왕래할 때, 우리나라 아동은 소리지르며 무리를 지어 그들을 따라가 어려움 없이 침월합니다. 심지어 돌을 던져 그들 가운데 두려워하는 이는 상해를 입습니다. - 승정원일기, 고종 14년 8월 4일 - |
참고글 : 일본의 거류지 무역, 개항장 무역이 점차 내륙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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