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최악의 공약 - 사교육비 경감 대책이 국사를 영어로 수업하는 것?
1. 어의가 없는 공약 제 블로그에는 정치적인 글을 적은 적이 없습니다. 블로그 색깔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였죠. 하지만, 오늘은 글을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너무 어이가 없는 대선 최악의 공약을 접하고 나니, 조금 기분이 우울해 지네요. 대통령 후보로 유력시되는 모 후보께서 사교육비 경강 대책을 내놓으셨습니다. 그중 핵심적인 것이 <영어>교육에 대한 비용을 국가가 마련해야 한다는 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초등학교 때부터 제대로 된 영어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저학년부터의 영어 교육이 필요하며, 필요에 따라서는 국어, 국사 등 일부 과목의 초등학교 수업을 영어로 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 내용을 접하고 나니 놀랄 노자밖에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가장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대선 후보로 국민들의 지지를 얻고 있는 분께서 말씀하신 공약은 너무나 허망하고 너무나 교육과 국어, 역사를 모르는 처신이라고 생각이 드네요. 민족주의 사학자인 박은식 선생께서는 기술, 경제, 자본과 같은 것들은 국백이라 하셨고, 국어, 국사와 같은 것은 국혼으로 우리의 생명줄이라고 하셨습니다. 국백이 중요하나, 민족이 살아갈 길은 국혼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말도 다 배우지 못한 초등학생들에게 영어로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읽어주고 , 우리 역사를 막 시작하려는 아이들에게 영어로 이순신 장군의 업적을 설명한다고 생각하니 우리가 앞으로 어떤 민족으로, 어느 나라 국민으로 살아가야 할지 막막합니다. 그래서 그 공약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부족하나마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려고 합니다. 2. 영어가 교육을 지배하는 나라가 될 것인가? 먼저 우리 나라 영어 교육이 너무 다른 교육을 누르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 정부는 반성해야 합니다. 교육은 교육과정 전체에 대한 목표가 있고, 각 교과안에서 명시된 목표가 있습니다. 가령, 우리 나라 교육에서 가장 내세우는 이념은 <민주시민의 양성>입니다. 그리고 각 교과는 민주시민의 양성과 더불어 그 교과가 학생들에게 어떤 올바른 신념을 제공해야 하는지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나라 교육과정은 이미 대학에 가기 위한 도구로 전락한지 오래입니다. 대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반영하는 것은 영어, 수학 과목입니다. 최근 논술이 강조되고 있지만, 이것도 학생들에게 차분히 생각하는 힘을 기르게 하는 논술이 아니라 대학에서 나올 것들을 어떻게 찍어주는가, 어떻게 기술적으로 표현하는가에 대한 논술입니다. 생각해보면, 영어 교육이 한국 교육을 지배해야 할 이유에 대해서는 누구나 나서서 설명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저, 중요한 교과목이라는 타이틀로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하지만, 영어 교과가 왜 중요한 것인지에 대해서 진지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500만명의 학생들 가운데, 10년 이상, 심지어 조기 교육에 유학까지 다녀가면서 영어를 배운 학생 가운데 영어가 일생에 도움이 된 경우를 고른다면? 수능볼때와 기업 입사시험 볼 때일 것입니다. 영어가 필요한 일부 기업을 제외하고 일반인들이 일생에 영어를 사용하는 일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세계화 시대에 외국에 나가기 위해 영어를 배운다고 하기도 하지만, 그건 대학에서 필요에 따라 배우면 됩니다. 독일어 몰라서 독일 놀러갈 수 없는 것은 아니니까요. 대학이 왜 있는데요. 영어는 대학에서 기초적인 회화를 진행할 수 있을 정도의 기초 교육을 중고등교육에서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전문가는 대학에서 양성하는 것이지, 중고교에서 영어 전문가를 만든다는 것은 전국을 영문교육과로 만들겠다는 것과 다른 것이 없습니다. 실제 현장에는 영어를 전문가 수준으로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요즘은 뛰어난 통역이 많아서 자신은 본연의 임무에 집중하고, 통역을 구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과 직접 영어로 담화하지 않습니다. 기업에서도 아주 중요한 사안은 통역을 대동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전 국민이 영어를 배우지 않으면 큰 일 나는 것마냥 생각하고 있고, 영어는 단순한 제 1 외국어가 아닌, 국민 교육 최고 과목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도 입학하지 않은 아이들에게 국어와 도덕, 역사, 기초과학 교육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혀를 잘라서라도 영어 발음부터 교정시키는 세대가 지금 우리 세대입니다. 이런 아이들이 과연 10년, 20년 뒤에 어떤 모습으로 한국 사회에서 살아갈 지 생각하면 아찔해 집니다. 그리고, 이렇게 영어를 중심으로 하는 교육은 사교육비 조장의 1등 공신입니다. 유학의 대다수가 영어 연수를 위한 것이고, 영어를 위해 투자하는 비용이 사교육비에서 어마어마하니까요. 대통령 후보라면, 사교육비 경감 대책을 <국가가 나서서 영어 조기 교육을 시킨다>는 방향으로 잡아갈 것이 아니라, 과열된 영어 교육를 정상화시키기 위한 대책을 먼저 수립해야 합니다. 3. 과목에 대한 신념이 없는 공약은 현실성이 없다. 어떤 선생님이 학생들을 가르친다고 할 때, 그 선생님은 단순히 단편적인 지식만을 전달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무언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그 가르침 속에 숨어 있는 지식과 표현을 넘어선 문맥과 그 과목의 신념체계까지 전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로, 국사를 가르친다는 것은 단순히 연도와 사건을 암기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상황과 사건 속에서 꼭 알아야 한다고 교사가 생각하는 신념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가르치는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중요한 포인트와 그것을 왜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당위성을 생각하면서 가르치게 됩니다. 우리 나라에서 중등교과는 각 과목 선생님이 있어서 해당 과목 선생님이 책임지고 교과를 담당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어떤 과목이든지 그 과목에 대한 확실한 당위성과 신념을 가진 사람이 가르쳐야 그 과목을 왜 배워야 하며, 그 과목 속에서 어떤 가르침이 필요한 것인가를 학생들이 인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초등학교에서는 각 과목에 대한 신념을 학생들에게 주입하기 어려운 단계입니다. 학생들은 피상적으로 그 과목의 지식을 습득하고, 그런 일이 있었구나를 느끼게 됩니다.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단군신화는 단군신화의 숨은 뜻과 의미, 그리고 그 사회상과 시대정신까지 파악하도록 되어 있으나, 초등학교에서의 단군신화는 신화 자체의 내용 설명을 아이들에게 이야기식으로 전달합니다. 초등학교에서는 각 과목별 담당교사가 아니라, 초등학생이라는 연령의 아이들의 눈높이를 맞출 수 있는 전임 교사가 교육을 담당합니다. 초등교육에서 과목의 신념을 주입한다던가, 역사적 사고력을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이렇게 아직 국어나 국사에서 과목에 대한 이해체계가 잡히지도 않고, 피상적인 기초 수업을 진행하는 아이들에게 영어로 수업한다는 것은 국민교육이 이루어지기 전, 다른 나라의 문화부터 교육에 끌어들이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윤동주의 별헤는 밤을 어떻게 영어로 수업할 수 있으며, 그 문학작품을 아이들이 어떻게 한국의 문학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김구 선생님의 나의 소원은 통일입니다라는 말을 영어로 번역해서 아이들에게 수업을 진행한다면 아이들이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요? 어떤 과목을 가르친다는 것은 그 과목에 내포된 숨은 뜻과 상상, 그리고 <국혼>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구구단을 <이삼은육>식이 아니라 영어로 복잡하게 가르친다고 구구단이 더 빨리 외워지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국어와 국사, 영어와 같은 과목을 한번에 가르치면서 각 과목의 체계와 꼭 가르쳐야 할 중요한 지식의 선별까지 할 수 있는 전문가를 키우고, 교재를 만드는 일은 1, 2년에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설마 대통령이 되서 모 하천 복원사업처럼 이 문제를 몇 개월만에 추진할 수 있다면, 대단한 교육전문가라고 칭송받으실 것입니다. 4. 사교육에 대한 문제는 분리되지 않는 경쟁에서 비롯된다. 우리나라의 사교육 문제는 단순히 <사교육비 경감 대책>으로 해결될 만한 문제가 아닙니다. 어떤 사교육비 대책이 나와도 학부모들의 교육열이 불타고 있는 이상, 제대로 실현되지 못합니다. 공자님, 부처님, 예수님도 손대기 힘든 문제가 우리나라 교육문제라지요. 한국의 교육은 이미 인성교육과 자신의 적성에 맞는 직업을 찾기 위한 교양교육이 무너지고, 대학에 가기 위한 맞춤형 교육으로 자리잡았습니다. 대학에 가기 위한 교육이다보니, 인성이니 교육다운 교육이니 따지는 학교보다는 맞춤형 수업을 해주는 사교육에 치중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또 학교 역시 뒤쳐지지 않으려면 이런 추세에 발 맞추어 학부모와 학생들의 입맞에 맞는 학교로 탈바꿈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교육열의 끝은 서울대부터 시작되어 있는 대학의 서열구조 속에서 되도록 높은 서열의 대학으로 가기 위한 몸무림으로 결실을 맺습니다. 인성교육도, 적성교육도, 장래희망도 대학에 들어간 다음에 하면 된다는 식의 교육이 되어 버렸습니다. 즉, 중등교육에서 해야할 일은 대학에서 하게 되고, 대학에서 해야 할 일은 중등 교육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이런 모순이 얼마나 큰 낭비가 되고 있는지... 해결책은 대학이라는 관문을 꼭 통과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서열화된 높은 대학에 진학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있지 않고는 불가능 합니다. 예전에 대학 교수님들 포럼에서 이런 의견이 나왔다고 합니다. 국가가 주도해서, 경쟁력 있는 학과 중심으로 대학을 개편하는 방향을 이야기 한 적이 있었죠. 즉, 대학에 서열을 두는 것이 아니라 학과에 서열을 두는 것입니다. 국가는 경쟁력있는 학과를 지원하구요. 예로 법학과는 고대, 경영대학은 연대, 사범대학은 공주대, 국문학과는 이화여대, 컴공과는 포항공대 등등 과별로 특성화시키고 대학의 서열구조는 파괴하자는 안이었죠. 학생들은 대학이 아닌 과에 지망하는 것이며, 학과의 우월성은 공부할 수 있는 배경, 교수진의 수준, 연구 성과 등을 토대로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대학이든 과 하나 쯤 밀어줄 역량은 있을 테니까요. 또, 서울대 자체를 폐기하자는 논의도 있었습니다. 서울대는 학부생을 받지 않고, 각 대학에서 선별한 인재를 등용하는 서울대학원으로 개편하자는 논의였습니다. 그래서 어느 대학출신이든 능력있는 학생들을 서울대학원이 받아서 대학 중심이 아닌 대학원 중심의 교육구조로 개편하자는 것이었죠. 당시 서울대 총장이 주장해서 파문이 있기도 했죠. 하지만, 이러한 주장들은 현재 기득권을 가진 대학들이 존재하는 한 실현되기 어렵습니다. 교육의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대학 입시>로 귀결되는데, 대학 입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학에 들어가는 것만이 신분상승의 길이자, 한국 사회에서 살아님는 길>이라는 공식을 깨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인 듯 합니다. 그러나, 교육열로 온나라가 온난화되어 앞이 뿌옇고, 전 국민이 폭발 직전인 니라, 교육이 무서워 이민을 생각하는 나라에서 이 교육문제는 어떤 대선 후보도 현실성 있는 대안을 제시하기 어렵다는 점이 참 안쓰럽습니다. 아직 대선에 나올 각 후보들의 교육이나 역사에 관련된 구체적 공약이 눈에 띄지 않습니다. 하지만, 첫 번째로 <사교육 경감 대책>을 들고 나온 후보의 공약이 너무 수준 이하라는 점은 실망스럽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