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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풀이/역사 사료와 데이터

신라 사로국의 건국, 육촌설화(삼국유사)

 

사로국의 건국

진한 땅에 옛날에 6촌이 있었다. 전한의 지절 원년인 임자년 3월 초하루에 6부 시조들이 저마다 자제를 이끌고 알천 기슭 위에 모두 모여서 의논하여 말하기를 <우리들이 위에 군주가 없어 백성을 다스리려 하니 죄다 거리낌 없이 제멋대로 굴고 있소. 어찌 덕 있는 사람을 찾아 군주로 삼고 나라를 세워 도읍을 정하지 않을 수 있겠소?

                                                                                         - 삼국유사 -

사료해석 : 이 사료의 가치는 신라(사로국)의 건국이 어떤 상황에서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논의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에 있습니다.

예전에는 신라의 발전을 논할 때 거서간-차차웅-이사금-마립간으로 왕호가 변천하면서 왕권이 강화되고. 이것은 영토확장과 연결된다고 보는 입장이었습니다. 즉 왕호변천은 곧 신라사회의 확대를 상징하는 것이므로 신라의 발전은 정복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관점이지요.

그러나 이 사료는 6촌이라는 진한 소국 연합이 곧 혁거세를 추대함으로서 신라 자체가 처음부터 큰 국가의 규모로 출발함을 보여줍니다. <뿌리깊은 한국사>를 보면, 신라는 철기문화의 보급이 이루어지는 시점부터 하호층이 동요하여 지배계급의 위기가 찾아왔답니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려고 진한 지배층이 연합하여 사로국을 건국했다는 군요. 그 증거로 당시 국가 경계가 애매하였다는점, 또 골품제도의 "찬"계열은 모두 족장연합계열로 볼 수 있다는 점 등을 증거로 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