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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풀이/역사 사료와 데이터

치우설화와 단군신화는 깊은 연관이 있다...

 

치우설화와 단군신화의 관계

1. 헌원전의 기록을 옮기다

헌원이 살던 때는 신농씨가 다스리는 세상이 쇠퇴하여 제후들이 서로 침략하고 베어 죽이며 백성에게 포학질을 일삼았으나 신농씨가 능히 이를정벌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헌원이 방패와 창 등 병장기 쓰는 법을 익혀서 조공을 하지 않는 제후를 정벌하니 제후들이 모두 와서 복종하였다. 그러나 치우는 가장 난폭하여 정벌할 수가 없었다. 염제가 제후들을 불의에 습격하여 능멸하고자 하였으나 제후들은 모두 헌원에게 복속하였다. 헌원은 이에 덕을 닦고 병력을 정돈하여 5기를 다시르고 5종을 심어 만민에게 어루만지며, 4방을 제도하고 곰, 말곰, 비휴, 추호를 길들여서는 명제와 판천이라는 들에게 결전하였는데, 세 번을 싸운 후에야 소원을 이룰 수 있었다. 치우가 난을 일으켜 제명을 듣지 않으니 이에 황제는 제후들의 군대를 징발하여 치우와 탁록의 들에서 싸워 마침내 치우를 잡아 죽였다. 이리하여 제후들이 모두 헌원을 받들어 찬자로 삼아 신농씨를 대신하게 하니 이가 곧 황제다.

2. 용어하도의 기록을 옮기다

황제가 섭정할 때 치우라는 사람이 있어 형제가 81명이였으며, 몸은 짐승인데 말을 하였다. 구리로 된 얼굴에 이마는 쇠로 되었고, 모래와 자갈을 먹었으며, 전쟁에 쓰는 여러 기구와 칼, 창, 큰 활을 만들어 위세를천하에 떨쳤으나 법도가 없이 마구 사람을 죽이니 어질지 못하였다. 만민이 황제로 하여금 천하의 일을 다스려주기를 바라고 있었으나, 황제가 인의로서 치우를 저지할 수 없자 이에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였다. 하늘이 현녀를 내려보내 황제에게 군사를 움직이는 데 쓰는 신표와 신령스런 부절을 주고 치우를 제압하도록 하였다. 이리하여 황제는 이를 가지고 병력을 주관하여 팔방을 제어하였다. 치우가 몰락한 뒤에 천하가 다시 소란해지자 황제는 드디어 치우 형상을 그려 천하를 위협하자 천하가 함께 말하기를 치우는 죽지 않았다 하고 팔방의 모든 나라가 복종하였다.

3. 산해경의 기록을 옮기다

황제가 응룡을 시켜 치우를 공격하자 하자, 치우는 풍백과 우사에게 청하여 따르도록 하고 큰 바람과 비를 일으켰다. 황제는 이에 가물귀신이라는 천녀를 보내 그치게 하였다. 비가 그치자 마침내 치우를 죽였다.

                                                                                         - 사기, 오제본기 -

사료해석 : 최근 학계에서는 이설이 아닌 정설로서 치우설화를 연구하려는 분위기가 많은 듯합니다. 특히 사기에 나오는 치우가 동이족이며, 그 기록의 내용들로 보아 단군신화와 연계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치우 설화에 풍백, 우사 등이 나오며, 특히 형벌(불, 벼락)과 관계있는 운사개념이 포함되면서 단군신화의 구조와 비슷해지고 있습니다. 중국의 무씨사당 벽화라던가 용정하도의 치우설화 등은 더욱 그러한 주장에 대한 증거들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이 학계의 정설로 받아들여지려면 아주 오랜 시간의 연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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