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퀴즈풀이/재미있는 역사 퀴즈

매일매일 역사퀴즈 2010. 1. 5 (화요일) - 출제범위 : 한국근현대사

매일매일 역사퀴즈 (2010. 1. .5  화요일)

오늘의 출제 범위는 <한국 근현대사> 입니다.

  - 반드시 컴퓨터용 수동 마우스를 사용해 주시고, 제출하기를 꼬옥~ 눌러주세요.
  - 점수와 후기를 댓글로 남겨주시면 다음 회 난이도를 조절할 수 있답니다.

1. 다음 노래를 잘 듣고 물음에 답하세요~

 

1. 위 노래와 관련된 가문에 대한 설명으로 바르지 못한 것을 골라보세요.
① 위 인물의 가문은 서인 중에서도 노론 집권가문에 속하는 유력 세도가문이였다.
② 위 가문이 일당 독재체제를 구축한 것은 1800년 정조가 사망하면서 나이 어린 왕들이 등극한 것과 관련있다.
③ 순조기에 효명세자는 위 가문의 독재를 막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했었다.
④ 위 가문은 삼점의 문란을 시정하기 위해 정적들을 제거하고 백성들의 세금을 감면해주었다.
⑤ 위 가문의 집권기에 평안도, 함경도 등 중앙과 멀어진 지방의 한미한 가문들은 상대적인 차별을 받았다.

 

2. 다음은 강화도 조약 이후, 일본과 맺은 후속 조치들입니다. 지문을 잘 읽고 물음에 답해주세요~

*** 조일수호 규칙(1차 통상장정)

    - 조선국 항구에 머무르는 동안 일본인은 쌀과 잡곡을 수출할 수 있다.

    - 일본국 소속의 선박은 항세를 내지 않으며, 수출입 상품에도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다.

*** 조일 수호 조규 부록

    - 일본화폐를 사용하여 한반도에서 무역을 할 수 있다.

    - 양국의 무역에 장해가 발견될 때 조약의 개정을 1년내에 제기해야 하며, 기한이 지날 경우 조약은 더 이상 개정될 수 없다.

*** 조일 수호 조규 속약

   - 부산, 원산, 인천항 밖으로의 이동 거리(강행이정)을 사방 50리로 하고, 2년 후를 기해 다시 각 100리로 한다. 1년 뒤에 양화진을 개시한다.

   - 일본 공사 영사와 수행원이 조선 내지에서 자유롭게 유력(여행)을 허가한다. 여행지방을 지정함은 예조에서 하되, 증서를 발급하고 지방관은 증서를 검사하고 여행자를 호송한다.

*** 1883년 조일통상조약(조일통상 잠정협약, 개정 통상장정)

  - 천재지변과 변란 등으로 식량부족 문제가 발생할 경우 조선은 방곡령을 실시할 수 있다

  - (일본 화폐가 아닌) 조선화폐에 의한 관세 및 벌금 납입이 가능하다.

  - 일본 상인에 대한 최혜국 대우를 해야 한다.

 

2. 위 내용에 따라 강화도 조약을 평가할 때, 지문을 잘못 해석한 사람을 골라보세요...
① 구하라 : 일본은 개항장에서 일본인의 통행거리를 설정하는 데 신경을 많이 쓰고 있었네.
② 임윤아 : 일본 화폐를 사용하느냐, 조선화폐를 사용하느냐하는 문제가 양국에서 첨예하게 대립하였군
③ 나르샤 : 개항장에서 양곡의 수출입을 허용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도 양국의 입장에서는 중요했던거 같아
④ 현   아 : 개정통상조약의 내용으로 미루어보아 결국 우리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관셰안이 개정된거 같아.
⑤ 씨   엘 : 일본인들은 개항장 밖으로 일본인들의 활동범위를 넓히려고 끊임없이 조약을 개정하려고 했었네

 

3. 다음은 1920년대 이후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했던 단체에 대한 내용입니다. 잘 읽고 물음에 답해주세요.

- 1923 : 갑오개혁 이후, 양반, 상민, 노비와 같은 신분 차별이 사라졌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직도 <백정>이라는 직업을 노비와 같이 취급하고 있다. 일제에 저항하는 우리에게 어찌 양반, 노비와 같은 차별을 강요하는가? 우리의 형평운동은 차별에 대한 항거이자, 형평을 통한 정당한 대우를 요구하는 것이다. 조선형평사는 단지 같은 민족으로서 정당한 요구를 할 뿐이다.

- 1924년, 형평사는 조선노농총동맹과 연대하여, 사회운동, 노동운동을 전개한다. 일제는 식민지의 모든 노동자, 농민에게 부당함을 안겨주었다. 20년대 이후, 공산주의의 국내 유입으로 제국주의 반대운동에도 참여하게 된다. 이 활동은 30년대까지 계속되었다.

 

3. 위 지문의 사료와 내용이 말하려는 근본적인 취지가 무엇인지 골라보세요.
① 일제시대에도 양반, 노비와 같은 신분차별이 심했기 때문에, 한국인들은 독립운동을 제대로 전개할 수 없었다.
② 형평운동은 초기에는 사회 차별에 반대하는 운동으로 전개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일제에 반대하는 민족운동으로 전개되었다.
③ 형평운동은 신분차별을 강조함으로서 우리의 독립운동에 장애물이 되었다.
④ 형평운동이 노동운동과 결합하면서 원래의 순수함을 잃고, 좌파들에 의해 변질되었다.
⑤ 형평운동은 최하층 계급의 신분 투쟁이였으므로, 민족 독립운동과 연관시켜서는 안된다.

 

4. 다음은 일본 제국주의에 항거했던 역사가에 대한 내용입니다.

- 기자 조선에 대한 내용은 허구이다. 우리가 알고 있었던 <대한>이라는 것은, 일본의 임나일본부를 수용한 것에 불과하다. 우리 고대사는 한반도 안에 가두어진 <삼한>에 대한 조작된 내용이 아니라, 만주에서 비롯된 위대한 부여족의 이야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 만약 묘청이 김부식을 물리치고, 금나라에 대한 사대 외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면 민족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묘청의 난은 조선 1천년래 대사건이다.

- 역사는 我와 非我의 투쟁이다.... 제국주의가 보여준 사회진화론은 결국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잡아먹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 아와 비아의 투쟁을 극복하면서 민족과 민중이 자기 모순을 극복하는 것이 역사의 발전과정이다.....  독립 운동은 그들보다 강해지기 위함이 아니다.  그들의 정부를 부정하고, 식민지 지배 자체를 부정하는 것 자체가 독립 운동인 것이다. 외부적으로 강하고, 강하지 않음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4. 위 지문에서 설명하고 있는 독립운동가이자, 역사가인 분의 저서가 아닌 것은 무엇일까요?
① 독사신론
② 조선상고문화사
③ 조선사연구초
④ 조선상고사
⑤ 한국통사

 

5. 다음은 해방 후, 우리 민족국가를 설립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건국준비위원회의 강령입니다.

- 우리는 완전한 독립 국가의 건설에 기할 것이다.

- 우리는 전민족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기본 요구를 실현할 수 있는 민주주의 정권의 수립을 기할 것이다.

- 우리는 일시적 과도기에 있어서 국내 질서를 자주적으로 유지하여 대중 생활의 확보를 기할 것이다.

 

5. 이 강령과 관련있는 <건국준비위원회>의 핵심 인물은 누구일까요?
① 김  구
② 김규식
③ 여운형
④ 이승만
⑤ 박헌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