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일본 헤이안 시대를 살다간 <미치나가>라는 유명한 사람의 이야기랍니다.
후지와라 가문... 일본 고대사에는 이 가문을 빼놓고 역사를 이야기할 수 없다라고 말할 정도로 유명한 가문이 있답니다. 그 가문이 바로 <후지와라> 가문이죠. 일본에서는 법(율령)이라는 것이 생긴 이래, 하늘의 자손인 <천황>이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불변의 진리라고 생각했답니다. 그것은 고대부터 메이지 유신까지 절대 변함이 없는 불변의 법칙이었죠. 그 법칙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 갖은 계략을 사용하여 천황 못지 않은 권세를 추구한 가문이 바로 귀족 중의 최고 귀족 <후지와라> 가문이었답니다.
710년, 후지와라 가문의 후히토는 법을 준수하는 국가, 즉 율령국가를 만들기 위해 천황을 설득해서 <헤이죠쿄>로 수도를 옮겼습니다. 후히토는 막강한 권력을 누렸죠. 그러나 후히토가 사망한 뒤 황족인 <나가야>가 왕권 강화를 주장하자, 후히토의 아들들인 후지와라 가문의 네 형제가 나가야 왕과 왕비를 자살로 몰아 죽였답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이 후지와라 가문의 천적은 <전염병> 이라는 거에요. 어이 없게도 네명의 형제와 식솔들이 모두 천연두에 걸려서 가문의 대부분이 몰살당해 버렸답니다. 결국, 정권은 다시 천황가문의 외척들에게 돌아갔죠. 그래도 후지와라 가문은 천황의 조언자로 계속 살아남았답니다.
그러고 8세기 이후, 후지와라 가문은 <셋칸 정치>라는 형태로 정권을 잡기 사작한답니다.
셋칸 정치라는 것은, 천황의 외할아버지가 나이 어린 천황, 또는 여성 천황을 대신해서 정치를 하는 것을 말한답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이런 <셋칸 정치>가 있었어요. 고려시대, 이자겸이라는 귀족은 자신의 딸 3명을 차례로 왕과 결혼시켜 강력한 귀족 가문이 된 일이 있었지요. 조선시대에는 안동 김씨 가문이 딸들을 왕과 결혼 시켜 정권을 잡았는데 우리 역사에서는 <세도 정치>라고 부르고 있죠. 이것과 비슷한 개념이랍니다.
천황이 나이가 어려서 외할아버지가 대신 정치할 때, 이 외조부를 <셋쇼>라고 부르고, 그 가문을 <셋칸가문>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 셋칸 가문을 이끌어간 집안이 바로 <후지와라> 가문이었죠.
그런데 만약 나이 어린 천황이 나이가 많아져서 어른이 된다면?
쉽습니다. 천황을 잘 구슬려서 계속 외할아버지가 정치를 하게 되는데, 이 때 외할아버지는 <셋쇼>라고 부르지 않고, <간파쿠>라고 부른답니다. 원래 간파쿠는 천황을 돕는 신하로서 대신 정치를 이끌어가는 사람을 말하는 개념이지만, 후지와라 가문은 이것도 정권 유지를 위해 이용한 것이지요.
자, 그럼 <셋쇼>가 무엇인지 알 것 같죠? 이제, 일본 고대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셋쇼>였던 <미치나가>라는 인물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께요. 이 이야기는 일본 11세기 초반의 이야기랍니다.
이 미치나가라는 사람은 참 운이 좋은 사람이었답니다. 대귀족 가문인 후지와라 가문에서 태어났고, 아버지가 <셋쇼>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대를 이어 셋쇼를 할 수 없었답니다. 왜냐면 넷째 아들이었기 때문에, 형들에게 우선권이 있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아까도 얘기했듯이 일본 고대사의 최대 반전은 <전염병>이라고 했죠? 첫째형이 전염병으로 죽었고, 연이어 둘째, 셋째 형마저 전염병으로 죽었답니다. 물론, 형들이 이미 천황에게 딸들을 시집 보냈지만, 그 딸들이 아들을 낳지 못했기 때문에 천황의 후사도 없었던거죠.
일본 드라마나 옛 이야기에서는 이 미치나가가 너무 잘생기고,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아서 여러 여자에게서 딸을 낳았다고도 합니다. 또 일본 고전 중 최고라는 <겐지 모노가타리>의 주인공 히카루 겐지는 바로 이 미치나가를 모델로 했다고도 합니다.
일본 최고의 고전 : 겐지 모노가타리
주인공 히카루겐지를 통해 일본 고대의 귀족사회의 일상과 삶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이 미치나가를 모델로 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한 것은, 저자가 후지와라 가문의 딸들을 교육하여 천황에게 시집보내도록 했던 가정교사였기 때문이다.
겐지 모노가타리 : 겐지는 주인공 이름. 모노는 영(靈)이란 뜻, 가타리는 스토리라는 뜻, 즉 제목자체가 일본 헤이안 시대 문화의 특징인 주술적인 이야기란 뜻을 내포하고 있다. (전염병이 많은 풍토의 일본 고대사에서도 특히 헤이안 문화는 악령 퇴치 등 주술적인 면이 매우 강한 토속적이고 불교적인 문화였다.)
자자... 이제 미치나가는 정권 유지 작전에 돌입합니다. 미치나가에게는 천만 다행으로 딸이 4명이나 있었던 거에요.
여기서 잠깐!!!!
왜 딸만 있는게 행운이었냐구요? 당연하죠. 나이 어린 천황이 남자니깐 딸들이 많아야 줄줄이 대를 이어 천황들에게 시집보내서 권력을 잡을게 아니겠어요? 그리고 그 딸들은 무조건 <아들>만을 낳아야 합니다. 손자는 후대 천황이 되기 때문에 권력이 영원히 이어지지만, 공주는 결혼을 통해 권력을 다른 이에게 넘겨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미치나가가 후지와라 가문의 영광을 영원히 이어가기 위해서는 이런 법칙이 필요했던 거랍니다. 이 법칙은 모든 <셋쇼 가문>에 해당하는 법칙이랍니다.
<그들만의 법칙 : 나의 자식은 무조건 딸이여야 한다. 딸의 자식은 무조건 아들이어야 한다.>
미치나가는 이 법칙에 맞게 4명의 딸이 있었기 때문에 반세기 동안 정권을 잡을 수 있었답니다. 첫째딸은 이치조 천황에게, 둘째딸은 산조 천황에게, 셋째 딸은 고이치조 천황에게, 넷째딸은 고슈사쿠 천황에게 시집보내었죠. 일본 역사상 전무후무한 외척 가문이겠네요.
그러나, 미치나가의 영광은 또 다시 좌절되고 말았는데 그것은 <딸의 자식은 아들이여야 한다>는 법칙이 마음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그들 가문의 저주가 발동되어 미치나가의 딸들이 <전염병>으로 생각보다 일찍 죽었답니다. 그리고, 결국 원했던 황태자도 태어나지 못했죠.
결국 미치나가가 원했던 후지와라 가문의 영광은 <아들>이 태어나지 않는 불운으로 마감하게 되었답니다. 그럼 정권은 누구에게 넘어갔냐구요?
당연히 천황의 외가가 망했으니, 천황의 친할아버지가 실권을 장악하겠죠. 우리 나라에서 세도 정치가 몰락하고 흥선대원군이 왕의 아버지로서 집권했던 것처럼 말이죠. 이것을 <셋칸 정치>의 반대말로 <원정 정치>라고 합니다. 천황의 친부나 친할아버지는 <원>이라는 공간에 <원청>이라는 기구를 만든 후, 용병들을 고용하여 귀족들을 견재했답니다.
요컨데, 일본의 고대사에는 후지와라 가문의 강력한 힘이 있었고, 그 중 미치나가 시기에 그 영광이 가장 화려했지만, 결국 황태자를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가문은 쇠퇴하였답니다.
그리고 가장 불쌍한 이들은, 가문의 영광을 위해서 정략 결혼의 도구로 이용된 여인들이지요. 후지와라 가문의 정략 결혼은 이후에도 일본 역사에서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답니다. 메이지 유신 이전까지도, 유력 가문의 여인들은 집안의 이익을 위해 운명처럼 정략 결혼해야만 했지요.
일본 최고의 고전 <겐지 모노가타리>를 쓴 저자 무라사키 시키부는 후지와라 가문의 여인을 천황의 마음에 드는 가장 완벽한 교양과 미모, 센스를 갖춘 여인으로 완벽하게 탈바꿈시키는 가정 교사의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후지와라 가문의 여인들을 다루며 살았으니, 일본 귀족사회에 대한 최고 작품을 쓰지 않았을까요?
겐지 모노가타리, 마지막 와카
마음 속 연인을 잃고 깊은 생각에 잠겼네 / 비애 속에 보낸 지난 세월,
나도 모르게 오늘이 왔네, / 나의 모든 것을 끝내려 하네.
그리고 이렇게 교양을 쌓아서 천황과 결혼한 여인들은 아들을 낳을 때까지 조마조마한 삶을 살아야 하고, 아들을 낳지 못할 경우 평생을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살아야 했겠지요. 그녀들의 이른 죽음은 전염병이라기 보다는 마음의 병이 더 큰 원인이었을 것입니다. (실제 아들을 못 낳은 미치나가의 딸들은 이유없이 병사했다고 합니다.)
가문이 영광의 길로 들어설 때마다 하늘이 <전염병>으로 가문의 앞길을 막은 것은 후지와라 가문의 여인들이 남긴 저주는 아니였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