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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풀이/히스토리아 역사 스토리

고사 속 역사여행 15 : <화씨의 벽>에서 <문경지교>까지

고사 속 역사여행  15

<화씨의 벽>에서 <문경지교>까지

한비자는 생각했다. 장인은 보석을 식별할 줄 알아야 하듯이

국왕은 사람을 식별할 줄 알아야 한다.

인상여는 말했다.

나는 너를 두려워해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너와 나의 싸움으로 나라가 희생되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피하는 것이라고...

 

  1. 한비자가 남긴 우화 : <화씨의 벽>

벽(壁)이란 단어는 구슬 옥(玉)이란 단어 위에 빛난다는 뜻을 얹어놓은 단어로 <최상품의 구슬>을 뜻한다. 여기에서는 쉽게 한글로 풀어서 <옥돌>이라고 부르도록 하자.

이 이야기는 중국 춘추전국시대라는 혼란의 시대를 살아갔던 여러 영웅들의 이야기가 모여서 이루어졌다. 먼저 법가사상의 대가였지만,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누명 속에서 불구가 되었던 철학자 한비자가 만든 이야기부터 한번 들어보자.

춘추시대의 혼란기, 남쪽 초나라에는 변화라는 인물이 있었다. 어느 날 변화는 초나라의 산기슭에서 조각하지 않은 순수한 옥돌을 하나 발견하고는 초나라 왕인 여왕에게 진귀한 옥돌이라면서 보여주었다.

그러자, 여왕은 옥돌가공 장인에게 그 돌이 어떤 돌인지 감별하라고 하였다. 옥돌가공 장인은 '그냥 일반돌인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여왕은 변화가 사기꾼이라고 생각해서 그의 왼발을 잘라 버렸다.

시간이 지나 초나라의 왕은 무왕으로 바뀌어 있었다.

변화는 무왕이 즉위하자 다시 그 옥돌을 왕에게 바쳤다. 무왕 역시 옥돌가공 장인에게 그 돌을 감별하라고 했다. 옥돌가공 장인은 귀찮다는 듯이 '이 돌은 그냥 일반돌입니다'라고 말해 버렸다. 무왕변화가 사기꾼이라고 생각해서 그의 오른발마저 잘라 버렸다.

시간이 흘러 초나라의 왕은 문왕으로 바뀌게 되었다.

변화는 새로운 왕이 즉위하자마자 그 옥돌을 품에 안고서 초나라 산에 올라가 3일동안 대성통곡을 하였다. 그의 통곡 소리가 산을 울렸고, 눈물은 다 말라 버렸으며, 눈에서는 피까지 흘릴 정도였다.

이 소식을 들은 문왕은 사람을 시켜 왜 울고 있는지를 물어보았다. 변화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저는 제 다리가 잘린 것이 서러워 우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보석을 돌이라 하고 충심을 다하는 백성을 사기꾼이라고 하니 괴로울 뿐입니다."

문왕은 옥돌가공 장인에게 이 옥돌을 소중히 다루어 가공하라고 지시했다. 이 옥돌을 가공해보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석이 되었다. 이 보석을 변화(卞和)가 피눈물로서 만들 보석이란 뜻으로 화씨의 벽(和氏之壁 )이라고 이름지었다.

한비자는 이 일화를 말하면서 피눈물을 흘리는 자신의 모습을 생각했다. 한비자가 겪은 고통이란 것은 무엇이길래, 이 일화를 자신의 책에 남기고자 한 것일까?

  2. 한비자의 눈물 : <한비의 눈물(韓非之淚)>

한비자는 춘추전국시대의 강국들이 끝없는 전쟁을 계속한다면 결국 고통을 받는 것은 국민들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국가를 통일하기 위해 <참된 권력>을 가지고 백성을 위할 수 있는 강인한 군주가 나라를 통일해야 한다고 말했다.

즉, 속좁은 학자들이 말로만 떠드는 유가니, 묵가니, 명가니 하는 것들을 모두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또, 농민들의 고혈을 빨아 유통의 이익만 남기는 상인들을 몰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임금의 눈을 어지럽히며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관리들도 모두 죽여야 국왕이 백성을 위한 통일전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한비자의 저서인 '고분', '오두' 라는 책이었다.

중국 전체를 최초로 통일했던 진시황제는, 나라를 통일하기 전 한비자의 저서를 읽고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내가 이 책을 저술한 한비자를 만날 수만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진시황은 초나라까지 사람을 보내어 한비자를 진나라로 데려왔다. 그리고 그를 곁에 두고 조언을 들으려고 했다.

진시황제가 재미있게 들었던 한비자의 이야기 중에 모순(矛盾)이라는 말이 있다.

어느 거리에서 창과 방패를 파는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이 창으로는 그 무엇도 뚫을 수 있습니다. 이 방패로는 그 무엇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러자, 지나가는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그럼 그 창으로 그 방패를 뚫어보시오. 어떤 결과가 나오던지 당신 말은 거짓말이 될 터이니..."

진시황제는 이렇게 그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들어면서 그를 옆에 두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한비자가 완전히 충성하는지를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높은 벼슬을 주지 않았다.

그러자, 한비자와 어렸을 때부터 같은 스승을 모시고 공부했던 이사가 한비자를 모함하기 시작했다. 한비자와 이사의 스승은 유명한 법철학자인 순자이다. 만약 진시황제가 한비자의 능력을 알아보고 그를 옥벽(玉壁 : 옥구슬)로 사용한다면, 이사와 같은 중신들은 2인자로 물러나게 될 것이다.

이사는 한비자가 초나라 출신이라는 지역주의를 물고 늘어졌다.

"한비자는 한나라 왕족과 연결된 자입니다. 지금 진시황제께서는 천하의 제후들을 통합하여 최초의 통일제국을 만들려고 하십니다. 한비를 등용한다 해도 한비는 결국 한나라를 위해 일할 것이고 진을 위할 사람이 아닙니다. 이것은 사람이라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다고 한비자를 한나라로 돌려보낸다면, 왕께서는 가장 큰 적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것입니다. 차라리 가장 가혹한 법을 적용하여 그를 죽여 버리십시오"

진시황제도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해서 한비자를 일단 감옥에 가두라고 하였다. 한비자는 진시황제를 만나기만 하면 자신에게 죄가 없다는 것을 설득할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한비자는 결국 진시황제를 만날 수 없었다. 얼마 후, 이사는 한비자를 속여 한비자 스스로 독약을 먹게 만들어서 죽여 버렸다.

한비자는 화씨의 벽 이야기에서 초나라, 진나라 어디에서도 뜻을 펼 수 없었던 자신의 처지를 담아 이야기를 했다. 자신은 초나라 출신이었지만, 화씨와 같이 자신의 보석같은 정치 주장들을 초나라의 왕들은 '일상적인 시시한 이야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보석이 돌이라고 배척당하는 그 심정을 누가 알아줄까?

그리고 진나라에서도 그의 뜻은 끝내 펼칠 수 없었다. 평소의 한비자의 글 내용으로 보아, 감옥에서 '화씨의 벽' 이야기를 다시 읇조린 그는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옥돌가공하는 장인은 옥을 식별할 줄 알아야 한다. 국왕은 누가 충신이고 누가 간신인지를 파악해야 성군이다. 허나, 증명되지 않은 돌이 보물이라는 것을 알아본 자는, 그 돌이 보물이 되는 순간까지 희생을 각오해야만 할 것이다.

한비자가 죽은 뒤, 어떤 일이 발생했을까? 진시황은 곧 한비자의 말이 옳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는 한비자를 감옥에 가둔 것을 후회하고 그를 사면하려고 했으나 한비자는 이미 죽고 없었다.

훗날, 진시황이 죽고 그의 아들 호해가 통일제국의 왕이 되자, 이사는 또 다시 2인자로 밀리지 않기 위해 환관 조고와 충성 경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번에 패자는 이사였다. 이사는 자신과 한비자가 만든 가장 가혹한 형벌로 고통스럽게 죽게 된다.

얼굴에 상처를 낸 뒤 먹물을 바르고, 코를 베어 버리고, 발뒤꿈치를 자르고, 성기를 자르고, 마지막에 허리를 자르는 잔인한 5단계 형벌을 오형(五刑)이라고 하는데, 이 법은 이사와 한비자 등 법가 사상가들이 법을 지키기 않은 이들을 죽이던 잔인한 형벌이다. 이 형벌은 몸을 6토막 내는 육시(六屍)와 함께 가장 잔인한 형벌인데, 당대 법가사상가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자신이 만든 이런 형벌들로 죽음을 당하곤 했다.

욕중에 육시럴~ 이라는 욕이 있다. 이 욕이 얼마나 잔인한 욕인지 이젠 상상이 가는가?

이사를 죽인 조고에게도 유명한 일화가 있다. 조고는 이사를 죽인 뒤, 호해 황제마저도 두렵지 않았다. 어느 날, 조고는 자신에게 반대하는 자를 고르기 위해 황제에게 사슴을 보여준 뒤 '이것은 말이다'라고 말하게 하였다. 이것에 반대하거나 분개한 사람들을 기억해 두었다가 모두 죽이게 되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고사성어이다.

  3. 인상여의 일화 : 완벽(完璧)하다의 어원

다시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서 진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하기 전 춘추전국시대로 돌아가보자.

한비자가 일화로 남긴 <화씨의 벽>이라는 보물구슬은 무현이라는 사람이 보관하고 있었는데, 조나라의 혜문왕이 무현을 협박하여 이 보물을 차지하였다. 이 보물은 워낙 유명한 것이라서인지 조나라가 이 티하나 없이 푸른(완벽 : 完璧) 구슬을 가졌다는 소문이 전국에 퍼졌다.

당시, 전국시대의 강대국으로 훗날 진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했던 '진나라'는 소양왕이 다스리고 있었다. 진나라왕은 화씨의 벽을 갖고 싶어서 조나라에게 성 15개와 보물을 바꾸자고 제안하였다.

예로부터 분수에 맞지 않는 보물을 가지고 있으면 항상 화근이 밀려오곤 했다. 만약 조나라가 보물을 주지 않으면 보복공격을 당할 것이다. 그렇다고 보물을 줘도 진나라는 강한 나라이므로 성 15개를 준다는 약속을 지킬리가 없었다.

조나라왕은 여러 신하들의 추천을 받아 인상여라는 식객에게 진나라에 가서 협상을 하고 오라고 했다. 식객(食客)이란, 높은 사람의 집에서 밥을 얻어먹으면서 조언을 해주는 밥손님을 말하는데, 인상여는 조나라왕의 충신 류현이라는 사람의 집에서 밥을 얻어먹었던 인물이었다.

인상여는 진나라 왕에게 완벽(完璧)한 보물을 넘겨주었다. 하지만 진나라왕은 보물만 받고 성 15개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럴 것이라고 미리 짐작한 인상여는 이렇게 말했다.

"그 벽은 완벽(完璧)한 구슬같지만 사실 한군데 희미한 티(불완벽)가 있습니다. 저에게 주시면 그 것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구슬을 돌려받은 인상여는 기둥 근처로 이동한 뒤 왕을 쏘아보고 이렇게 협박하였다.

"왕은 어찌 귀국과의 정의를 지키지 않고 벽만 가지려 하시오. 이제 벽은 이 사람의 수중에 되돌아왔소. 만약 3일 안에 성 15개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내 머리통과 함께 이 벽도 기둥에 부딪혀 깨질 것이오"

왕은 구슬이 깨질까봐 무서워 성 15개를 준다는 약속을 하였다. 그러나 그 약속도 거짓임을 안 인상여는 시간을 질질 끌다가 부하를 통해 구슬을 조나라로 보내 버렸다.

진나라 왕은 괴쌤했지만 이미 구슬은 사라진 뒤였다. 그리고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구슬을 빼았을 수도 있었다. 진나라 왕은 인상여의 지혜가 뛰어남을 알고 그를 정중하게 대접한 뒤 무사히 조나라로 돌아가게 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실수였다고 할까? 이 인상여가 바로 훗날 장군 염파와 함께 문경지교를 맺어 조나라를 강대한 국가로 만든 인물이 된다. 그리고 진나라는 그만큼 통일정책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4. 인상여의 일화 : 문경지교(刎頸之交)

인상여는 싸움을 잘하는 인물이 아니였다. 그렇다고 가문이 좋거나 특별히 학식이 뛰어난 인물도 아니었다. 그러나 IQ가 낮으면, EQ라도 높으라고 했던가? 그는 정서지능이 높고, 순간 판단력이 빠르며 정의감이 높고 충성심이 강한 인물이었다.

화씨의 벽을 찾아온 일로 벼슬을 시작한 인상여는 이후에도 진나라왕이 조나라왕을 괴롭히는 순간마다 특유의 재치와 말주변, 빠른 상황파악으로 왕을 도와주었다. 그 결과 인상여는 조나라의 이름난 장군인 염파보다도 더 높은 지위에 오르게 되었다.

염파인상여가 맘에 들지 않았다. 염파는 죽음을 각오한 수많은 전투를 하면서 나라를 지킨 인물이고, 인상여는 겨우 말 몇마디로 더 높은 자리에 오른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염파는 들으란 듯이 이렇게 말하고 다녔다.

"언젠가 내가 인상여를 만난다면 꼭 수치를 안겨주고야 말리라"

이 이야기를 들은 인상여는 염파를 피해다녔다. 조정에 그가 나오면 병이라 핑계대고 집안에 숨었고, 길에서 가마나 수레가 마주칠 것 같으면 길을 피해갔다. 상황이 이러니, 인상여를 모시던 제자들도 인상여를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묻기 시작했다.

"우리는 선생님의 높은 뜻을 사모했는데, 지금 선생님은 염장군을 두려워만 하십니다. 백성들도 아는 수치를 선생님만 모르십니까? 저희는 참을 수 없으니 떠나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그러나 인상여가 제자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우리 조나라의 염파 장군과 진나라왕 중에 누가 더 무서울까?"

"그야 강대국인 진나라의 왕이 더 두렵지요"

그러자 인상여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진나라 왕 앞에서도 당당했고 오히려 그를 면박주었다. 내 아무리 못났어도 염파 장군이 무서워서 피하겠는가? 그러나 생각해보라. 강대국인 진나라가 화씨의 벽을 빼았는다는 핑계를 대면서도 우리를 공격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염파 장군과 나 인상여가 둘다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 기둥이 싸워서 하나가 쓰러지면 어찌 되겠는가? 내가 염파 장군을 피하는 것은 국가의 보존이 첫째 사명이고, 개인의 수치스러움은 뒤의 일이기 때문이다"

이 말을 들은 염파 장군은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인상여의 집에 머물고 있는 식객에게 부탁해서 그를 만난 뒤 이렇게 말했다.

"내가 너무 어리석은 탓에 선생님의 관대한 뜻을 몰랐습니다. 진심으로 사과하니 나를 친구로 받아주시지오"

그 후, 그 둘은 '친구를 위해서는 목이 잘리더라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문경지교(刎頸之交)를 맺고 조나라를 지켰다고 한다.

- 사기 열전 한비자, 인상여 中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