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신라습격과 왜의 지원
신공 49년 3월 황전별과 녹아별을 장군으로 삼아 구저 등과 함께 군대를 거느리고 건너가 탁순국(대구, 창원쪽의 가야국가)에 이르러 신라를 습격하려 하였다. 그러나 군사가 적어 신라를 깨뜨릴 수 없다는 의견이 있어, 사백과 개로를 보내 군사를 늘려달라고 요청하니, 즉시 목라근자와 사사노궤에게 명하여 정예군을 거느리고 사백, 개로와 함께 가도록 하였다. 모두 탁순에 모여 신라를 쳐서 깨뜨렸으니, 비자발, 남가라, 탁국, 안라, 다라, 탁순, 가라 등 7국을 평정하였다. 그리하여 군대를 옮겨 서쪽으로 고해진(전남 강진)을 돌아 남쪽 오랑캐 침미다례(전남 해남)를마구 죽이고 이를 백제에게 주었다. - 니혼쇼키 권9, 신공황후기 49년 3월 - |
사료해석 : 이 내용은 4세기의 상황을 반영하는 글입니다. 4세기는 근초고왕이 동아시아 주도권을 잡았던 시기입니다. 즉, 근초고왕은 낙랑, 대방군이 고구려, 백제에 의해 사라진 이후 그 곳의 무역권을 장악하기 위해 고구려와 한 판 대결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근초고왕은 평양성 싸움에서 승리한 이후, 새로운 동아시아 교역체계를 수립하려 하였습니다. 이 때 백제 - 갸야 - 왜로 이어지는 교역로를 확보해야 했는데, 이 신공황후기 사료는 서남해 강진과 해남 지역을 공격하여 뱃길의 주요한 거점을 확보하였다는 증거 사료로 인용되는 사료입니다. 물론 신공황후기 자체가 믿을 수 있는 사료인지 의심이 많이 가기 때문에 완벽하게 신빙성 있다고 하기는 좀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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