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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율령격식의 변화

율령을 반포하고 백관공복 제도를 처음으로 제정하였다.

- 삼국사기 권4, 신라본기 4, 법흥왕 7년 정월 -

이방부령 양수 등에게 명하여 율령을 자세히 참작하여 이방부격 60여조를 수정하도록 하였다.

- 삼국사기 권 5, 신라본기 5, 태종무열왕 원년 5월 -

2월 21일 군신을 모아놓고 교령을 내렸다.

<도둑질한 자는 몸을 풀어주되 훔친 물건을 변상할 재산이 없는 자는 징수하지 말라. 백성이 가난하여 남의 곡물을 빌린 자는 농사를 짓지 못한 경우에는 원곡과 이자를모두 갚지 않아도 되고, 올해에 수확한 자는 원곡만 돌려주고 이자는 갚지 않아도 된다. 소사는 이달 30일에 한하여 받들어 시행하라.>

- 삼국사기 권 6, 신라본기 6, 문무왕 9년 2월 21일 -

사료해석 : 신라는 법흥왕 때 율령을 반포하였습니다. 법으로 나라를 통치하겠다는 것이죠.

그런데 통일기 무열왕은 율령을 임시 중단시키고 임시법인 격을 발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법원리를 격으로 제시하는 데 그것은 바로 고대법과는 다른 새로운 법원리였습니다.

즉 고대 8조의 법처럼 사람을 죽인 자는 죽이고, 상처를 입힌 자는 곡식으로 갚고.... 식의 법이 아니라

너무 가난한 자는 갚지 않아도 되고, 도둑질한 자도 풀어주고....입니다.

즉 고대의 법이 좀더 상황에 맞는 합리적인 법으로 바뀌어 중세 사회의 법원리를 천명하고 있다는 학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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