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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당

봄과 여름에 비가 오지 않자 왕이 남당에 군신을 모으고 몸소 정사와 헝벌의 득실을 묻고 또 다섯 사지를 파견하여 백성의 고충을 살폈다.

- 삼국사기 권 2, 신라본기 2, 미추 이사금 7년 -

정월 초길에 왕이 남당에 앉아 정사를 보았다.

- 삼국사기 권 24, 백제본기 2, 고이왕 28년 -

사료해석 : 남당은 부체제의 초기 국가 속에서도 국왕이 어느 정도 지위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료입니다. 즉, 국왕은 공식적으로는 최고의 지위자로서 위치를 가지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예로 고구려는 독자적 가신을 거느릴 수 있음에도 가신들 명단을 국왕에게 보고해야만 했다고 하며, 국왕은 가신들의 서열을 정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신라의 국왕은 남당에서 직접 중요한 일들을 묻고 처리하는데, 이를 통해 국왕권도 어느 정도는 세력이 있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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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락 2010.03.16 14: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봉건왕조의 새대에 국왕권도 세력이 있었음을 알수있다...에서 당연히 국왕권의 세력이 있을텐데 ...있었음을 알수있다...라는 내용이 이해가 안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