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기 러시아의 소국들은 엄청난 위기를 맞이합니다. 그것은 당시 세계적으로 성장하고 있던 몽골부족 때문이었죠. 당시 발전해가던 러시아는 몽골의 침입에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몽골의 기병이 워낙 뛰어난 것도 있었고, 말자 상속제로서 스스로 영토를 구하여 나라를 세워야 했던 몽골부족의 숙명에서 기인하는 것도 있지만, 러시아가 쉽게 무너졌던 것은 통일 국가가 아니였기 때문입니다. 즉, 러시아의 공후들은 단결되지 못하였고 서로 토지에 대한 더 많은 권리만 요구했을 뿐 단결하지 못하였기 때문이죠. 결국 몽골은 러시아의 발전하고 있던 아름다운 도시들은 모두 불태우고, 모든 러시아 공국들은 킵차크 한국에 종속시켰습니다. 바투의 대원정은 러시아의 역사를 바꾼 것이죠. 이 기간은 약 2세기입니다. 러시아 민중은 계속된 투쟁을 하였지만 그것은 잔인한 죽음으로 계속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종래 키예프, 노브고르드 중심의 러시아 사회는 모스크바 공국이 주도권을 잡는 형세로 바뀌게 됩니다. 이반 1세라 불리는 모스크바 공국의 주인은 킵차크 한국에 바치는 조공을 관리할 수 있는 권한을 얻게 되는데, 그 속에서 점점 모스크바 공국의 힘이 커져갔습니다. 또 러시아 교회의 수장이 모스크바로 거주지를 옮기면서 종교적인 권위도 갖게 되었고, 많은 금화를 축척해나가게 됩니다. 결국 바투가 침입한 지 1백년이 지나고, 이반 1세의 사후 드미뜨리가 킴차크 한국의 마마이를 대혈전끝에 대파하기 시작한 때부터 모스크바 공국은 킵차크 한국에 대항할 수 있는 러시아 공국의 중심국으로 발전합니다.
1462년 이반 3세가 즉위하면서 러시아라는 국가 명칭이 처음 등장하게 되는데, 모스크바 공국을 중심으로 몽골로부터 완전히 해방하면서 러시아는 강력한 국가로 떠오르게 됩니다. 이반 3세는 비잔틴 마지막 황제의 부인과 결혼하여 <비잔틴 제국의 계승자>를 자청하면서, 모스크바 대주교가 그리스 정교회를 계승한 사람으로 규정하였습니다. 러시아를 제 3의 로마로서 만들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제 러시아는 비잔틴의 계승자이자, 킵차크 한국의 계승자로서 중국, 중앙아시아, 유럽의 문화적 업적을 취합하여 빛나는 문화를 만들 기반을 마련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