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의 고대 문명
1. 고대 이집트의 역사 전개 이집트의 고대 역사는 선왕국-고왕국-중왕국-신왕국으로 나누는 것이 보통입니다. 이집트는 사하라 사막과 지중해 등이 위치하는 특수한 지리적 여건 때문에 주변 민족의 침입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폐쇄적인 지형 속에서 오랫동안 통일을 유지하면서 강력한 전제왕권을 구축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먼저 선왕조기는 최초의 문명이 시작된 시점을 말합니다. 초기 도시 중심의 조그마한 지역 국가들이 이집트에 많았죠. 마치 그리스의 폴리스나 우리 고대사의 삼한처럼 말입니다. 그러한 도시 중심의 소국가를 이집트에서는 <노메스>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노메스를 메네스 왕이 통일하면서 통일 왕조를 만들었다고 전설로 전해져 내려옵니다. 이것이 이집트 최초의 문명인 전설시대의 상왕조(선왕조)입니다. 그런데, 선왕조기는 전설속의 시대라 실제 역사보다는 신화에서 많이 인용되는 시기네요. 그 이후 실제 역사 시기에 들어선 왕조를 고왕조라고 합니다. 고왕조는 수도를 멤피스로 정하고 동양적인 고대국가체제를 완성하였습니다. 이 고왕국기의 특징은 전제군주의 군주권이 아주 강했다는 점인데,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절대적인 파라오는 이 시기의 왕들을 말하는 것이지요. 또, 고대 신화 중 가장 유명한 오리시스 신화도 이 시기의 신화입니다. 오리시스 신화의 주 내용은 부활, 내세라는 이집트적 특징을 상징하는 것들이 주를 이룹니다. 피라미드, 미이라 등등 이집트 만의 독특한 문화는 이 신화 내용을 바탕으로 하여 제작된 것이죠. 영혼불멸의 사상을 담고 있는 이집트의 <사자의 서>도 바로 오리시스 신화를 바탕으로 합니다. 중왕국기에는 사회가 혼란스러웠습니다. 소아시아의 힉소스가 쳐들어와 중왕국을 점령하면서부터 이집트는 폐쇄적인 자기만의 마이웨이를 걷는 길에서 탈피하게 됩니다. 아시아의 국가들이 이집트라는 국가의 존재감을 알고 덤비기 시작한 것이지요. 신왕국기가 되면 이집트는 이제 통일왕국들이 지배하는 세계 국가 속의 이집트가 됩니다. 즉, 아시아의 통일왕조는 페르시아, 거대한 제국을 건설한 알렉산더, 그리고 로마제국이 바로 신왕국을 정복한 세계제국들입니다. 신왕국은 26왕조의 부흥운동 등 독자적인 자립운동을 시도하였지만, 모두 실패하고 맙니다. 2. 고대 이집트의 정치와 사회 고대 이집트의 정치형태를 말하라고 하면 <가장 전형적인 동양적 전제주의>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즉, 극단적으로 강한 왕권 속에서 강력한 제도를 통해 사회를 유지한 국가입니다. 파라오는 신의 후손으로서 절대적 권력을 누립니다. 정치, 종교, 토지, 경제는 모두 왕권 밑으로 일원화 된 국유제 사회입니다. 왕 밑으로는 승려, 관료, 서기 등이 국가의 지배층으로 구성되어 국가의 통제가 완벽한 단원적인 사회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글자를 적을 줄 알았던 서기직책이 핵심 지배층이라는 사실이 눈에 띄네요. 글자를 안다는 것은 이 당시 사상과 문화를 이해할 줄 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러한 이집트의 정치체제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만 피라미드 구조로 이루어진 계급사회라고도 할 수 있겠죠? 이들의 계급구조는 인도의 카스트제도처럼 완전 불변한 것은 아닙니다. 정권과 지배층이 바뀌기도 하니까요. 문제는 사회적 변동이 있다 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농경사회의 기본틀입니다. 보통 사회가 발전하고 변하면 새로운 지배층이 탄생하기도 하고, 몰락하는 계층이 있어야 정상입니다. 그러나 이집트는 폐쇄적인 지형 안에서 그 변화하는 생산력이나 사회 분위기를 수용하지 못하는 편이었습니다. 그리스가 민주주의로 나가는 동안, 이집트는 그리스만큼의 생산력이나 경제력이 발전하면서도 그 잉여생산물이 사치품을 만들거나, 왕권을 강화해주는 쪽으로만 발전합니다. 거디한 피라미드나 궁궐, 미이라를 만들 시간이면 그리스에서는 새로운 철학이 3번을 나왔을 시간입니다. 이집트는 기본 사회구조가 <노메스>라는 행정구역으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파라오는 지방장권을 임명하여 철저하게 지방을 감시하였습니다. 또 나일강의 범람으로 인한 치수사업에 치중해야 하는 지리적 요건은 민주주의니 하는 것이 엄두도 나지 못할 사회적 형편이었습니다. 3. 고대 이집트의 문화적 특징 이집트의 종교는 다신교였는데, 오리시스 신화를 상징으로 하는 내세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오리시스 신화 편을 참조하세요) 이러한 내세적 세계관 속에서 미이라, 스핑크스, 투탕카멘의 무덤, 피라미드 등이 출연하게 된 것이지요.(이와 관련된 글을 사자의 서 편를 읽어보세요.) 이러한 사회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노력했던 이집트의 왕도 있었답니다. 그는 바로 이크나톤(아멘호텝 4세)입니다. 그는 경직된 이집트 사회를 바꿔보기 위해 기존의 관습, 신앙을 부정하는 새로운 체계를 세워보려 했습니다. 그가 하려고 했던 것은 다양한 신을 모시는 다신교를 버리고 아톤(태양신)을 중심으로 한 일신교적 개혁이었습니다. 태양신을 내세워 농경사회의 윤리체계를 체계적으로 세우고 왕권을 강화하려고 한 것이지요. 그러나 이러한 그의 개혁은 일신교를 반대하는 당시 사회분위기와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것이었습니다. 또 그러한 개혁 자체가 파라오라는 강력한 왕권을 추구하는 국왕의 신성성 근본을 건드릴 수도 있는 것이었기에, 그 개혁은 실패합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관개농업에 필요한 천문학, 측량술, 산수 등이 발달하였습니다. 피라미드 건축을 위한 기하학도 고도로 발전하였죠. 죽음의 서 등에서 보여지는 신성문자(그림문자)와 파피루스도 이집트 하면 빼 놓을 수 없겠죠? 마지막으로 고대 이집트의 예술은 그냥 전통적 예술을 답습하는 수준입니다. 단, 전통적 양식을 깨고 자연주의적 경향의 미술을 추구하려는 시도가 개혁적 국왕인 이크나톤에 의해 시도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예술 개혁기를 아마르나 시대라고 하는데, 이크나톤의 부인인 네페르티티의 두상이 가장 유명한 예술품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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