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소포타미아의 초기 문명
1. 초기 역사의 전개 메소포타미아의 역사적 특징은 개방적 지형이라는 점입니다.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을 끼고 있는 이 지역은 평야지대로 민족의 이주가 많았고, 정복 전쟁이 잦았던 지역입니다. 지금의 이라크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이 이 지역이지요. 따라서 이들의 문화는 지배자 교체가 상당히 잦았으며, 다양한 문화를 수용하여 문화가 발달하였습니다. 보통 우리가 지구라트라고 부르는 성탑도 이 지역의 유산이지요. 이 지역도 이집트와 마찬가지로 왕권이 강하여 왕이 신관을 통솔하거나 신관을 겸직해 버리는 제정일치 사회였습니다. 초기의 이 지역에서는 유프라테스-티그리스강(이하 2강)의 상류와 하류를 사이에 두고 도시 국가가 발전했습니다. 하류에는 수메르 인들이 자리잡고 있었고, 상류에는 북쪽 지방에 아카드 인이 내려와 있었지요. 수메르인은 기원전 3500년경, 아카드인은 기원전 2500년경에 자리잡았습니다. 이 2강 사이에서는 외국산 물자에 의존하는 도시국가들이 수없이 많았는데, 초기의 도시국가들은 대립과 분쟁이 아주 심했습니다. 2. 수메르 왕조 - 바빌로니아 왕국 이러한 분열된 민족을 통일한 최초의 국가는 기원전 2000년경의 수메르 왕조입니다. 수메르인들은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남부를 통일하면서 강성했지만, 곧 아무르 인들의 침입으로 멸망합니다. 아무르 인들은 수메르인의 왕조를 멸망시킨 후 가장 강력한 국가인 <바빌로니아 왕국>을 건설합니다. 이 왕국은 함무라비 왕 때 전성기를 맞이한 통일왕국으로서 행정관과 사법관을 임명하고 법전을 편찬하는 등 체계적인 국가 조직을 갖춘 고대 전제국가입니다. 바빌로니아 왕국 하면 함무라비 법전이 너무나 유명하죠?(사료방에 함무라비 법전 전문 282조가 있습니다. 태그나 키로그, 사이트 내 검색을 통해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함무라비 법전은 총 282조로 민법, 형법, 소송법 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법전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보복주의를 채택하고 있는데, 이것은 고대 법의 공통된 성향입니다. 또 신분 차별이 엄격해서 신분에 따라 형벌이 다르게 적용됩니다. 또 한 고의적인 것과 우발적인 것을 구별하지 않고 처벌하였으나 법에 의하지 않는 복수는 엄격히 금지하였습니다. 3. 철기 국가의 등장 - 히타이트 한편, 이렇게 강국이었던 바빌로니아도 기원전 16세기 무렵 카시이트족이 침입하면서 점차 약해집니다. 이 당시부터 철기가 도입되면서 오리엔트의 대부분의 강국들이 모두 침체기에 들어가기 시작하는데요. 바빌로니아, 이집트의 신왕국 등은 부흥의 노력을 하지만 시대변화를 극복하지 못하고 주도권을 새로운 철기국가에 넘겨주게 됩니다. 새로운 철기 국가는 히타이트, 미탄니 같은 국가였습니다. 특히 히타이트는 기원전 2000년경 후반부터 등장하여 철기를 이용한 정복전쟁을 시작합니다. 이들은 소아시아, 시리아,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북부까지 내려왔으며 기존 절대적 동양전제군주제와는 다른 형식의 통치를 시작합니다. 기존 오리엔트의 통치방식은 신의 사자나 신의 아들(이집트의 파라오), 또는 신의 대리인(함무라비왕)을 칭하는 절대적 군주제도였습니다. 학자들은 이러한 통치방식을 중국의 진시황까지 포함하여 동양적 전제군주제라고 까지 합니다. 즉, 왕권을 절대시하는 왕정이지요. 그러나 히타이트는 다릅니다. 그들은 수많은 귀족들로 구성되어 있는 공화제의 성격이 강한 왕정 국가이며, 왕이란 귀족 중 최강자일뿐 왕이 신의 아들이나 대리인이라는 생각은 없습니다. 그리고 이 히타이트는 또 다른 강국인 미탄니와의 중계무역으로 경제권도 점차 장악해 갑니다. 히타이트의 침략으로 바빌로니아는 멸망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아시리아가 오리엔트를 최초로 통일하는 순간 바빌로니아는 지구상에서 사라집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히타이트라는 철제 국가가 등장한 것이 곧 철기 시대의 이행이라고는 볼 수 없다는 점도 알아야 합니다. 왜냐면 히타이트는 철제 무기를 오리엔트에 보급한 것이 아니라 다른 민족이 철제 무기를 사용하는 것을 경계하면서, 자국에서만 철제 무기를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오리엔트에 철기가 보급된 것은 히타이트가 멸망한 후입니다. 히타이트가 망하면서 제철기술이 오리엔트 전역에 보급되는 것이지요. |
함무라비 두상
함무라비 법전 1
함무라비 법전 2
함무라비 왕에 대한 지식 검색 결과(브리테니커)
바빌로니아를 통일한 고대 오리엔트 사상(史上)의 영주(英主)의 한 사람이다. 당시의 바빌로니아는 이신 ·라르사 ·바빌론이 패권을 다투고 있었는데, BC 1787년에 이신을 토벌하고, BC 1776~BC 1768년 사이에 강적 라르사에 대승하여 림신왕을 포로로 하였으며, 유프라테스강 중류지역의 마리도 격파하여 시리아를 세력하에 두어, 엘람고원에서 시리아에 이르는 통일국가를 건설하였다. 함무라비는 정복지에 총독을 두고, 수메르 이래의 전통인, 각 도시를 중심으로 한 메소포타미아의 지방분권적 경향을 억제하고 강력한 중앙집권 조직을 폈다. 이 동안에 바빌론에 성벽을 구축하고, 각지에 신전(神殿)을 건립하여 신상(神像)을 안치하고, 운하를 만들어 무역을 활발히 하는 등 국력의 충실을 도모하였다. 그리하여 수도 바빌론은 오리엔트 세계의 중심으로서 번영하고, 바빌로니아는 안정되었다. 또, 아카드어(語)를 국어로 채용하였기 때문에, 이때부터 아카드어는 오리엔트의 국제어가 되었다.
그 밖에 달력을 통일하고, 재래의 법률을 집대성한 함무라비 법전을 발포하였다. 종교면에서는 바빌론의 한 지방신(地方神)에 불과하였던 마르둑을 최고신으로 하는 신들의 세계를 조성하였다. 이렇듯 정치적 통일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바빌로니아 세계가 성립되어, 함무라비시대는 후세에 바빌로니아의 황금시대라고 일컬어졌다.
바빌로니아에 대한 지식 사전 검색 결과(브리테니커)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 메소포타미아 남동쪽을 포함하는 고대 문명지(지금의 바그다드 주변에서 페르시아 만에 이르는 이라크 남부지역). |
여러 세기 동안 바빌론 시가 이 지역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바빌로니아란 말은 바빌론이 세워졌던 BC 4000년경부터 이 지역에서 발달한 문화를 총칭하게 되었다. 그러나 바빌론이 정치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기(BC 1850경) 전의 이 지역은 남동쪽의 수메르와 북서쪽의 아카드로 나뉘어 있었다.
수메르와 아카드의 역사는 끊임없는 전쟁의 역사이다. 수메르의 도시국가들은 이 지역의 패권을 놓고 서로 싸웠는데, 이는 아카드나 아니면 동쪽의 인접국가 엘람이 침략할 호기를 제공했다. 수메르와 아카드는 자신들의 역사를 수놓았던 연이은 정치적 위기에도 불구하고 풍성한 문화를 발전시켰다. 수메르인들은 최초의 문자체계인 설형문자를 만들었고,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법전을 편찬해냈으며, 도시국가를 발전시켰다. 또한 도자기 굽는 화로, 범선, 씨 뿌리는 쟁기를 발명했으며 문학·음악·건축 양식들을 창조했는데, 이러한 것들은 서양문명의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문화유산은 수메르인 및 아카드인의 후손들과 아모리족에게 계승되었다. 아모리족은 서부지역에 사는 셈족으로 BC 1900년경에는 메소포타미아 전체를 장악했다. BC 1600년경까지 아모리족이 통치하는 가운데 바빌론은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 지역의 정치·상업 중심지가 되었으며, 바빌로니아는 메소포타미아 남부지역 전체와 북으로는 아시리아를 포괄하는 거대한 제국이 되었다. 이러한 발전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왕은 바빌론 제1왕조 제6대 왕 함무라비(BC 1792경~1750)였다. 그는 분리된 도시국가들의 연합을 유도하고 과학과 학문을 발전시켰으며 유명한 법전을 공포했다. 함무라비가 죽은 후 바빌로니아 제국은 계속 쇠퇴의 길을 걸었다. BC 1595년 히타이트족인 침략자 무르실 1세는 바빌로니아 왕 삼수디타나를 쫓아내고 바빌로니아 동쪽의 산악지역 출신 카시테족을 왕으로 옹립해 왕조를 세우도록 했다. 이 왕조는 그후 400년간 지속되었다.
카시테족 통치의 마지막 몇 세기 동안 바빌로니아에서는 종교와 문학이 꽃을 피웠다.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문헌은 바빌로니아인의 창작 서사시 〈에누마 엘리시 Enuma Elish〉이다. 그러나 이 시기에 아시리아가 바빌로니아의 지배에서 떨어져나가 독립된 제국을 건설해 바빌로니아의 카시테 왕조를 위협했고 몇 차례 일시적으로 지배하기도 했다. 엘람도 부강해져 결국 바빌로니아 대부분을 장악함으로써 카시테 왕조를 무너뜨렸다(BC 1157경). 계속된 전쟁 속에서 바빌로니아 제2왕조가 이신 시(市)에서 창건되었다. 이 왕조에서 가장 뛰어난 왕은 네부카드네자르 1세(BC 1124경~1103 재위)였다. 그는 엘람을 격파하고 몇 년 간 아시리아인의 진출을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네부카드네자르 1세 통치 이후 몇 세기 동안은 아시리아인·아람인·칼데아족이 바빌로니아의 지배권을 놓고 서로 경합했다. BC 9~7세기말 아시리아 제국이 멸망하기까지 바빌로니아를 가장 자주 지배한 것은 바로 아시리아 왕들이었다. 이들은 대체로 바빌로니아를 통치할 부왕(副王)을 임명했다. 아시리아의 마지막 왕인 아슈르바니팔은 바빌론에 있던 그의 친형제이기도 한 부왕과 내전을 벌여 바빌론 시와 그곳 주민들을 괴롭혔다. 아슈르바니팔이 죽자마자 칼테아인 지도자 나보폴라사르는 바빌론을 자신의 수도로 삼고 마지막으로 가장 위대한 바빌로니아의 패권시대를 만들었다. 그의 아들 네부카드네자르 2세(BC 605~562 재위)는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을 점령했는데, 그는 BC 587년 유다와 예루살렘을 파괴하고 유대인을 바빌로니아에 유폐한 것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또한 바빌론을 다시 부흥시켜 놀랄 만한 공중 정원을 만들고 마르두크 신전과 이에 부수된 지구라트를 재건했다.
BC 539년 키루스 대왕 치하의 페르시아 제국은 네부카드네자르의 마지막 후계자 나보니두스 때 바빌로니아를 점령했다. 이후 바빌로니아는 독립을 잃은 채 BC 331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점령할 때까지 갔는데,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바빌론을 자신의 제국 수도로 만들 계획을 세웠으며 죽을 때도 네부카드네자르 궁에서 죽었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죽은 후 셀레우코스 왕국 사람들은 결국 바빌론을 포기했으며, 이로써 역사 속의 위대한 왕국은 막을 내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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