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의 철학이야기 - 자연철학에서의 전환
1. 그리스 철학의 큰 흐름 그리스 철학을 이해하는 가장 큰 흐름은 일단 <자연철학>중심으로 자연을 연구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인간철학>으로 흐름이 바뀌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자연철학은 초기 이집트 문명에서의 영향을 받던 것을 차츰 탈피하는단계이고, 인간철학은 그리스만의 독특한 철학 체계를 완성하는 단계이지요. 그리스인들은 이집트인들과 달리 실용적 목적에서 철학을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이집트는 나일강의 범람이라는 자연적 여건 속에서 필요한 학문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해나갑니다. 그러나 그리스인들은 <노예제도>가 확실히 정착되어 시민들의 자유와 권리가 한층 더 보장된 사회였습니다. 그들은 지식 그 자체를 사랑하였고, 실용적 학문보다는 <만물의 근원>이 무엇인라라고 하는 철학적 사색과 탐구에 더 집중하였습니다. 즉, 지식을 이론과 논리로 정리하면서 객관적, 합리적인 방법으로 지식에 접근한 것이지요. 이러한 합리성은 훗날 유럽 철학과 과학의 근원으로 자리잡습니다. 2. 초기 자연철학의 단계 자연철학은 초기 이오니아 지방에서 발생하였습니다. 그 기원은 보통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주장한 <탈레스>로부터 비롯된다고 합니다. 자연철학은 이집트와는 다르게 현실적이지 않은 것, 추상적인 것, 논리적인 것으로부터 탐구를 시작합니다. 이 추상적인 것을 연구하다보니 결국 철학의 목표가 <만물의 기원>은 무엇인가로 귀결되었습니다. 이들은 만물의 근원을 물, 불, 공기, 원자, 숫자 등으로 정리하면서 논리를 펴기 시작합니다. 대표적으로 만물의 근원을 정의내린 사람 몇 명만 뽑으라면 탈레스(물), 헤라클리토스(불, 변화론), 파르메니데스(전체론, 불변론), 데모크리토스(원자론), 피타고라스(숫자론) 등이 있습니다. 이 중 논쟁이 된 것은 헤라클리토스와 파르메니데스인데요. 헤라클리토스는 만물은 유전하기 때문에 영원한 것은 없고, 세상에 근원적인 본질이란 없다라고 주장합니다. 이에 파르메니데스는 세상은 완전한 실체로 되어있다고 주장하면서 변하지 않는 본질은 존재한다라고 주장합니다.(왠지 성리학에서 주리론, 주기론 논쟁이 생각나는 건 왜일까요?) 이러한 논쟁을 정리한 사람이 바로 데모크리토스였습니다. 그는 세상에는 변하는 것도 있고, 변하지 않는 것도 동시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걸 그는 <원자>라고 말했지요. 원자란 물질의 근원을 말하는데,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가장 근본적인 것을 원자라고 정의내립니다. 그래서 이 원자상태는 더 쪼갤수 없기에 물질의 근원이 되는 것이고, 원자가 뭉쳐서 물질이 되면 어떤 물건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에 물질은 변화하기도 한다는 주장이지요. 고대인들이 이런 철학적 논쟁을 했다는 자체가 신기하네요. 더, 서술하면 끝도 없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철학자 <탈레스>를 이 사이트에서 검색하면 아주 장문으로 고대 자연철학을 정리해 놓았으니, 필요하면 그걸 참조하세요. 3. 인간철학으로 전환시킨 소피스트 소피스트는 아테네가 페르시아 전쟁에 이긴 후 주목받기 시작한 민주정치기의 철학자들입니다. 그들의 특징은 이제, 아테네 민주정치가 완성되어가면서 더 이상 자연철학의 논의가 필요없게 됨을 주장한 이들입니다. 그들은 이제 자연철학을 벗어나, 시민의 정치적 교양을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수사술, 웅변술 등 아테네 시민들의 정치생활을 위한 기술에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시민들의 직업교사 역할을 했던 철학자들입니다. 즉, 이들이 등장함으로서 철학은 자연에서 인간으로 관심이 이동되었고, 그것은 고대 민주주의의 완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칩니다. 그들은 철학영역을 윤리학, 정치학, 물리학 등으로 확장하였습니다. 소피스트 중 한명인 프로타고라스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고 까지 주장합니다. 이 주장에는 3가지 의미가 있죠. 첫 번째는 이제 철학의 탐구대상은 인간 자체이다라는 점, 두 번째는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은 항상 변화하기 때문에 그 때 그 때 필요한 진리들을 습득해야 한다는 점, 세 번째는 인간의 기준에서 볼 때 진리 역시 변화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소피스트 들의 주장을 살펴보면 절대적 진리에 대해 회의적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철저한 상대주의적 진리를 주장하였습니다. 그리고 아테네 시민들에게 개인주의를 강조합니다. 그들의 주장은 당시 민주주의 시대의 개성과 다양성을 반영하는 최첨단의 사고방식이었죠. 그러나 이러한 극단적 개인주의와 상대주의는 자연상태에서의 <본질적이고 도덕적인 불변의 진리>가 있음을 간과하였다는 것에 문제가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점을 제기하면서 소피스트 사상을 비판한 사람이 바로 소크라테스입니다. 소피스트의 극단적 개인주의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대표적 소피스트인 <제논>의 일화입니다. 제논은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반박해보라면서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를 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거북이가 100m 앞에서 먼저 뛴다고 가정할 때, 토끼는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에 거북이를 따라 집을 수 있을까요? 정답은? 정답은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다>입니다. 토끼가 100m를 가면, 거북이는 10m라고 가 있겠죠? 다시 토끼가 10m를 따라가면 거북이는 1m라고 가 있겠죠? 다시 토끼가 1m를 가면 거북이는 0.5m라고 가 있을 겁니다. 따라서 토끼가 거북이를 따라잡기 위해 거북이의 위치까지 가는 동안 거북이는 조금이라고 앞서가기 때문에 토끼는 거북이를 영원하 앞지를 수 없답니다. 중국춘추철학으로 따지면, 좀 <백마는 말이 아니다>라고 말한 궤변론자들의 이야기와 비슷하죠? 이러한 지극히 개인적이고, 상대적인 논리는 소피스트들이 자유로운 인간철학으로 넘어왔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소피스트 이야기는 나중에 <소피스트>라는 키워드로 정리하여 이 사이트에 올리겠습니다. |
참고자료 : 탈레스와 자연철학 정리본 일부(2006. 1. 23 - 세계사 방)
1. 탈레스는 누구인가?
탈레스(B C 640-545) : 밀레토스학파의 선두주자, 통상 철학의 시조로 숭상됨
탈레스는 기원전 6세기 무렵 살았던 그리스의 철학자입니다. 그는 이오니아의 밀레토스 사람으로서 밀레토스 학파의 창시자라고도 부르죠. 그는 최초의 자연철학자라고도 불립니다. 아리스토텔레서는 그를 철학의 아버지라고 까지 말하기도 하였죠.
탈레스의 사상은 그 사상 자체의 위대함이라기 보다는 서양철학사에 있어 학문적으로 철학이 무엇인가를 밝혀준 최초의 등불같은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위대한 사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주와 만물은 무엇으로 이루어졌을까를 최초로 연구한 사람이 바로 탈레스이죠. 탈레스는 일단 우주의 생성원리를 물에서 찾은 최초의 자연주의 철학자입니다.
2. 아르케는 곧 물이다.
그는 존재의 가장 기본적인 것은 물이라고 하였습니다.(시작점, 원리 등을 아르케(arche)라고 하는데, 그는 아르케는 물이라 했죠) 그는 스스로, "만물의 아르케가 무엇인가? 만물의 아르케는 물이다" 라고 묻고 답하곤 했답니다. 쉬운 말로 만물이란 물에서 생겨 결국 물로 돌아간다는 뜻이지요.
그럼 만물의 근본이 왜 물이라고 생각했을까요?
아마도 그는 먼저 물은 모든 생물을 구성하고 있는 기본 물질이라는 점에 착안하였을 것입니다. 모든 생물은 수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을 포함해서 말이죠. 두 번째로 물은 고체, 기체, 액체로 그 형태가 변하듯 다양한 형질로 바뀔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고대 신화에서 물을 만물의 시조로 여기는 부분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는데, 이것도 영향을 준 듯 싶습니다.
탈레스는 만물은 물로 이루어졌다는 일원론적인 철학체계를 제시했습니다. 또 만물은 물이라는 물질에서 비롯된다는 유물론적 시각도 이때부터 시작된 듯 싶습니다. 탈레스의 입장에서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철학적 논쟁의 해답은 간단합니다. 결국 그것은 만물의 시초인 물에서 비롯된 것이니까요.
그러나 그가 왜 물을 모든 사물의 본질로 생각하게 되었는지에 관해서는 실제로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탈레스가 단순히 사건들을 관찰하다가 그런 결론에 도달했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만물의 영양소가 물이라는 사실, 그리고 열이 수분에서 발생하며 수분에 의해 유지된다는 사실을 보았기 때문에, 또한 만물의 씨앗들이 수분을 가지며 그 수분의 근원은 물이라는 사실로부터 탈레스는 그런 생각을 갖게 되었다."
탈레스는 주변의 현상들에 관심이 많았고 모든 사물들에는 공통적인 영원불변하는 연관되는 요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것은 곧 하나의 원리 속에서 규명되며, 하나의 원리는 곧 우주를 구성하는 근원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탈레스적인 해석이였습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탈레스의 사상보다는 탈레스가 제기한 문제의식입니다. 탈레스의 사상의 핵심은 만물을 물이라고 정의함으로써, 만물이 무엇으로 이루어졌는가라는 문제의식을 제기한 것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지요. 즉, 철학이라는 것이 고민과 성찰이라는 측면을 중요시한다고 했을 때, 탈레스는 철학적 사고와 의문을 제기한 최초의 인간이라는 뜻이지요.(물론 서양의 기준에서 보았을 때입니다.)
탈레스의 사상은 인류에게 크나큰 의미를 부여합니다. 인간이 본질이라는 절대적 측면과 현실이라는 측면을 나누어 생각하게 되었고, 이렇게 생각하였을 때 인간을 포함한 만물은 결국 무엇이냐라는 최초의 물음이 여기서 시작된 것이지요.
3. 밀레토스 학파란?
여기서 밀레토스 학파를 한번 짚어봅시다. 밀레토스 학파는 사물의 기원이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탈레스적 사고를 추구하는 학파입니다. 그들은 만물을 구성하는 것은 실재로 존재하며, 그 존재하는 만물의 기원을 아르케라고 부릅니다. 아르케는 모든 만물의 시작이며, 모든 만물이 다시 되돌아가는 근원입니다. 사람은 태어나고 죽지만, 그 기원은 아르케는 영원하다고 믿습니다. 즉, 아르케는 영원함을 가진 존재이며 영혼과 동일한 존재입니다. 탈레스는 "만물은 신들로 가득차 있다"라고 말합니다.
탈레스의 철학은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로 이어지게 되는데, 이러한 계통을 통해 밀레토스 학파가 완성되게 됩니다.
먼저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ros, B.B. 610~545)는 탈레스의 제자인 동시에 후계자로서 스승과 거의 동시대에 밀레토스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아낙시만드로스는 스승과 달랐습니다. 스승이 경험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물질적인 면을 강조하면서 만물을 물이라 하였던 것과 비교됩니다. 그는 만물을 연구함에 있어서 물과 같은 물질을 아르케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불, 흙, 공기 등 다른 물질들이 물에서만 발생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죠. 그는 물질이 아닌 개념적으로 추론하고, 논리적으로 이해되는 것으로 아르케를 삼으려고 노력하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스승처럼 단일한 본빌이 만물을 구성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물이 아닙니다. 물은 다른 수많은 요소들 중 하나의 요소일 뿐입니다. 그는 만물의 근원은 어떤 형태를 가지지는 않았지만 무한한 것이라고 파악했습니다. 형태를 갖춘 일반 사물들은 이미 그 형태가 있는 물질일 뿐 근원일 수 없습니다. 즉 만물의 본질은 "비결정적 무한성"을 가진 무엇인가라는 개념적인 추론을 통해 만물의 근원을 연구한 것이지요. 그는 이것을 "하나의 영원한 운동이 있었고, 이것을 통하여 삼라만상이 탄생하였다"라고 개념적인 정의를 내립니다. 그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만물의 근원은 무한자이다."
밀레토스 학파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인물 아낙시메네스(Anaximenes, 588-524, B.C.)는 아낙시만더의 젊은 친구였습니다. 그는 모든 사물의 근원으로서의 무한성이라는 친구의 개념에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그 개념은 애매모호하고 임의적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는 더욱 깊은 고민끝에 만물의 근원은 공기라고 주장합니다.
4. 만물의 근원은 도대체 무엇인가?
밀레토스 학파의 이러한 문제의식과 만물의 근원에 대한 탐구는 이후 계속 이어집니다. 이후의 학자들은 이 학파의 논의에 대해 새로운 시도와 끊임없는 정의를 시도합니다. 구체적으로 몇 명의 학자들의 주장만 적어봅니다.
1) 탈레스(Thales, 624-546 B.C.) : 존재의 근원은 신이 아닌 물질.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
2)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er, 610-546, B.C.) : 만물의 근원은 무한(aoriston)이다.
3) 아낙시메네스(Anaximenes, 588-524, B.C.) : 만물의 근원은 공기(pneuma)이다.
4) 크세노파네스(Xenophanes, 570-480, B.C.) : 만물의 기본 요소는 흙이다.
5) 헤라클레이토스(Herakleitos, 541-475, B.C.) : 모든 물질의 본질은 형상이 없고 변화하지만, 가장 활기찬 것은 불이다.
6) 아낙사고라스(Anaxagoras, 499-428 B.C.) : 감각으로 인식할 수 있는 물질 변화의 수만큼의 원소가 있다.
7) 엠페도클레스(Empedokles, 483-435 B.C.) : 4원소설(흙, 물, 불, 공기)을 주장하였습니다. 만물은 4개 원소의 각 부분이 '사랑(philia)'과 미움(neikos)'의 두 개의 힘에 의하여 혼합되거나 분리되어 형성된다고 합니다.
8) 플라톤(Platon, 427-347 B.C.) : 4원소설을 수학적, 기하학적으로 변형하였고, 4원소 이외에 제5원소로서 에테르(aither)를 언급하였습니다.
9)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384-322 B.C.) : 4원소는 하나의 원질(primary matter)로 되어 있고, 이 원질에 건(dry), 습(wet), 냉(cold), 열(hot) 4개의 촉감적 성질(quality)이 두 개씩 조를 이루어 부가되어 현실적 원소가 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10) 레우시푸스(Leucippus, 500 B.C.) : 만물은 원자로 이루어졌다.
11) 데모크리토스(Demokritos, 460-370 B.C.) : 원자설을 완성하였습니다.
① 세계는 더 이상 분할할 수 없는 것(atomos, 원자)과 공허한 공간으로 분리되어 있다.
원자는 모두 같은 원질로 구성되지만 형태, 크기 무게는 다르다.
② 무에서 새로 생기거나 존재하는 것이 소멸하지 않는다.
소멸처럼 보이는 것은 원자 운동으로 다른 것으로 변환된 것이다.
③ 원자의 운동은 기계적이며 필연적이다.
12) 에피쿠로스(Epikuros, 342-271 B.C.) : 데모크리토스는 원자의 운동이 신에 의하여 예정되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에피쿠로스와 루크레티우스는 그 운동은 무작위적이며 자유 의지 같은 무엇인가의 결과이며 신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13) 루크레티우스(Lucretius, 95-55 B.C.) : 기원전 57년에 라틴어 시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지었습니다. 이 시가 1417년에 발견되어서 원자설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http://historia.tistory.com 역사전문블로그 히스토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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