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초기의 사회구조와 클리엔테스
1. 로마 초기의 사회와 로마의 사회구조 로마는 이탈리아 소국의 도시국가에서 출발합니다. 물론 로물루스와 레무스가 늑대의 보살핌 속에 살았다는 건국설화도 있지만, 역사적으로는 별로 중요치 않아서 생략합니다. 초기 로마는 수많은 이탈리아 반도의 국가 중 아주 작은 소국에서 출발합니다. 초기에는 에트루리아 계통의 왕이 다스리는 왕국이였지요. 초기 국가 형태도 그리스와 같은 집주형태로서 각각의 도시국가가 형성되어 발전하고 있었던 형태라고 보면 됩니다. 따라서 로마의 초기 역사는 아테네의 평민성장과정과 매우 유사한 형태를 띄면서 발전합니다. 따라서 중요한 사실은, 그리스와 로마는 지중해를 사이에 둔 중계무역과 식민도시 건설로 성장한 도시국가라는 유서점입니다. 초기의 로마는 왕정에서 출발합니다. 그러나 초기 소국을 유지하는 데에는 강력한 왕권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실제, 국가의 주도권은 강력한 군사력을 유지하면서 기병과 무기를 마련할 수 있었던 귀족에게 있었고, 로마의 영토확장에 이들이 나서게 되면서 로마는 귀족공화정의 형태로 변하게 됩니다. 2. 로마의 귀족 공화정의 중앙 정치 제도 로마의 초기 공화정은 귀족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로마 건국기에는 에트루리아 왕이 있었지만, 실제 종교와 정치적인 중요 업무를 처리하는 신관 수준의 역할이였고, 전쟁에 나가 싸우는 전사의 역할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왕은 곧 추방되고, 실권은 귀족이 장악하게 됩니다. 로마의 귀족 공화정은 아테네와 스파르타처럼 도시국가에 필요한 기구를 만들면서 확립됩니다. 그럼 초기 귀족공화정의 틀을 이루었던 기구들을 살펴볼까요? 우선 원로원이 있습니다. 로마의 원로원은 초기 국왕권 밑에서 세력을 키운 씨족장의 후예로서 국왕을 몰아내면서부터 로마 최고의 기관으로 군림합니다. 로마의 행정업무를 보는 정무관을 지낸 사람이 임기가 끝나거나, 나이가 들면 이 원로원에 소속되게 됩니다. 즉, 원로원이라는 기구는 형식상으로는 로마 행정기관(집정관) 밑에 속해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로마 공화정의 최고 권력기관입니다. 원로원은 법률과 행정력을 무시할 수 있는 <원로원의 충고>라는 강력한 권한이 있습니다. 어떤 실질적인 권력자도 이 원로원의 충고는 무시하지 못하며, 원로원에게는 예의를 표할 수 밖에 없는 구조가 확립되어 있었으니까요. 법적으로 로마 최고의 행정관은 <정무관>입니다. 정무관은 그 역할에 따라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일단 행정권과 군사권을 장악한 최고 권력자는 <집정관>이라는 정무관인데, 이 집정관은 2명이 한달씩 교대하여 업무를 처리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권력을 상호 견제하면서 최고권력을 균형있게 유지하는 것이 목적으로, 이 2명의 집정관은 임기가 1년으로 정해져서 더 이상의 독재는 할 수 없게 되어 있었습니다. 또, 전쟁 등 비상시에는 집정관이 <독재관>이 되어 군사업무 등을 총괄하는데, 아무리 급한 상황이라고 해도 독재관이 6개월 이상 재임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 집정관은 민회를 소집할 수 있으며, 원로원과 협의하여 <원로원의 충고>를 거울삼아 정치를 하곤 했습니다. 집정관 역시 임기가 끝나면 원로원에 소속됩니다. 다른 정무관으로는 법을 집행하는 <법무관>, 징병이나 인구조사, 풍기감독, 재산조사 등을 책임지는 <감찰관>, 재정을 담당하는 <재무관>, 건축이나 축제, 경기관람 등을 주관하는 <에딜레> 등이 있습니다. 모든 정무관의 공통적인 특징은 임기가 1년이며, 이들을 민회가 선출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정무관은 무보수의 직책이므로, 웬만한 재력가가 아니면 할 수 없다는 점도 특징입니다. 이러한 정무관들 말고, 고대 사회의 특징은 <신관> 역시 로마에 존재하기는 합니다. 특히 정치와 종교가 밀접한 고대 사회에서 신관을 무시할 수는 없죠. 이들 신관은 점을 통해 로마 지배층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 예로, 민회의 개최, 축제의 시작일, 전쟁의 날짜, 종교행사, 시민의 공공활동 등은 신관이 정해 준 날짜에 맞추어 하는 것이 이 당시 관례였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신관이 정해준 날짜에 의해 전쟁의 승패가 좌우되기도 하였으니까요. 3. 로마 초기 사회의 구조 로마 사회는 그리스 사회와 비슷한 구조입니다. 국가 규모 자체가 도시국가 수준이였고, 사회 구조 역시 비슷했습니다. 일단, 로마의 계급은 귀족, 평민, 노예로 구성되는 3계급 사회였죠. 특히, 귀족과 평민의 결혼 등은 엄격하게 구분하여 귀족의 특권을 유지하려고 했던 귀족 위주의 공화정이였습니다. 특히 귀족계급 은 사회적인 모든 특권을 모두 가지고 있었습니다. 원로원, 집정관, 신관 등의 주요 관직은 모두 이들 귀족의 차지였습니다. 특히, 초기 로마의 영토확장은 귀족들이 말을 타고, 창을 들고 싸우는 기병위주의 전투였으므로, 실제 전쟁에 참여하는 귀족들이 전쟁을 통한 전리품을 모두 차지하는 형태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초기 로마 사회를 귀족 공화정이라고 부르는 것이지요. 초기 로마에서의 평민들은 정치에서 제외된 자들입니다. 이들은 자영농민이거나 수공업자 였지만, 스스로를 지킬 힘이 부족한 자들이였습니다. 그래서 로마의 평민들은 유력한 귀족들에게 자신의 보호를 부탁하면서 귀족에게 자신이 가진 것들의 일부를 보상으로 지급하곤 하였답니다. 이렇게 평민과 귀족간의 보호-보상 관계가 이루어지는 제도를 클랜테이지라고 합니다. 특히, 보호받는 농민들을 클리엔테스(clinetes)라고 부릅니다. 클리엔테스는 가부장권이 절대적인 고대사회에서 보호자에게 보호를 받으며 신의를 맺은 평민입니다. 솔직히 이 당시 평민들은 법적인 인격을 보호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보호자가 법정에서 변호를 해줘야 했습니다. 보호자인 귀족이 평민을 지켜줄 경우, 평민은 보호자를 위해 종군(전쟁에 참여해주는 것)을 하거나 보호자를 위해 공물을 바치곤 했답니다. 그러나 이러한 보호-피보호 관계는 얼마가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로마라는 국가가 전쟁을 통해 점차 국가 규모가 커졌기 때문이죠. 로마의 영토확장은 곧, 수많은 병사를 필요로 하고, 이것은 수많은 평민들이 전쟁에 참여하게 됨을 뜻합니다. 평민들이 직접 전쟁에 참여하면서부터 평민들은 로마 귀족들에게 토지를 댓가로 요구하기 시작합니다. 여기까지 초기 그리스와 거의 유사하죠? 그리스에서도 식민도시 건설 속에서 평민이 <클레로스>를 받아 민주주의 사회로 진전되었음을 설명했었습니다. 로마 역시 평민들이 시민권을 요구하는 투쟁이 시작되며, 이것이 곧 로마라는 사회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됩니다. 그럼 다음장에서는 로마 시민들이 자신의 권리를 찾는 부분부터 한번 시작해보겠습니다. 로마의 시민성장으로 고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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