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문명의 탄생 - 신석기 황하문명
1. 중국 문명의 성립 중국 문명은 보통 황하 유역을 중심으로 삼황, 오제 및 하, 상, 주 3대의 성왕들에 의해 발생한 것이라고 근대 이전 중국인들은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20c에 접어들면서 이러한 생각은 점차 깨지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청대 고증학의 발달과 서구 근대 사학의 문헌고증학이 유행하면서 중국의 학자들은 전한 고문헌의 신빙성을 의심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새로운 시대의 역사학자들은 삼대 및 그 이전의 역사를 가상의 역사로 생각하며, 사마천의 사기 기록이 거짓이라고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실제, 상왕조(은나라)가 발견되고, 하나라의 유적지로 생각되어지는 이리두 유적 등이 발견되면서 중국사의 기원은 훨씬 윗 시대로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보통 중국사에서 논쟁이 되는 것은 신석기 황하문명의 문제입니다. 1번째 논쟁점은 과연 황하문명이 중석기나 구석기와 연결된 문명인가라는 점이 논쟁거리입니다. 2번째 논쟁거리는 황하문명이 추운 지방인 화북지방에서 발생하였다는 점입니다. 중국문명은 비옥한 양자강 지방이 아닌 추운 화북지방에서 시작되었는데, 그 이유는 양자강 유역이 고온 다습하여 당시 석기나 초기 청동기로 농사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즉, 양자강이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철기시대 이후라는 것이지요. 황하의 황토지대는 석기로도 개발이 가능했다는 점이 문명 발생의 원인으로 지적됩니다. 보통 문명의 발생이라고 하면 강의 범람과 관련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실제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성립은 강이 범람하는 지역에서 발생하였으니까요. 그러나 황하문명은 강의 본류지역이나 범람지역이 아닌 홍수의 위험이 적은 언덕 지역에 사람이 모여살면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다른 문명과 차별됩니다. 중국 고대문명으로 유명한 앙소문화, 용산문화는 모두 언덕 지역이였습니다. 2. 신석기 시대 문명의 기원 논쟁 중국 사회에서는 중국 민족의 기원을 신석기 시대 황하문명으로 봅니다. BC 5000년 경의 중국 신석기 문명은 채도 중심의 앙소 문화를 중심으로 발전하다가 흑도중심의 용산문화로 넘어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안델슨이라는 학자가 앙소문화를 서아시아 채도문화라고 규정하면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내용은 중국 최초의 앙소문화란, 서아시아의 페르시아 계통에서 건너온 서방의 채도문화다는 것이죠. 이것을 소위 <서방전래설>이라고 합니다. 또 황하중심이 앙소문화가 용산문화, 이리두 문화로 전파되어 중국 신석기 문화의 계보가 형성되었다고 합니다. 중국인들은 이러한 안델슨의 서방전래 이론을 부정합니다. 앙소문화가 채도, 용산문화가 흑도라는 것은 편의상의 규정일 뿐이고 실제 이러한 문화들은 다 중국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한 것이다라고 주장합니다. 특히, 중국은 각 지역마다 신석기 문화가 독자적으로 발달하였으며, 구석기 시대의 문화를 물려받은 곳도 있기 때문에 상당히 다양한 신석기 문화라는 주장이 대두되었습니다. 중국문화의 <다원성>을 주장하는 내용은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1. 화중문화는 양자강 유역의 문화로서 춘추전국시대 초, 월, 오의 문화로 계승된다. 2. 화북문화는 황하강 유역의 문화로서 훗날 상왕조(은나라)의 문화로 연결된다. 3. 앙소, 용산문화는 다양한 중국문화 중의 하나로서 중원중심적인 황하문명기원론은 중화사상의 잔재일 뿐이다. 4. 단, 용산문화는 앙소문화를 받아들여 더욱 발전한 문화이다. 3. 모계사회에 대한 주장 중국에서는 신석기 시대의 사회가 모계중심의 사회라는 주장이 일반적입니다. 황제, 전욱, 제곡, 제요, 제순의 시대로 넘어가는 고대 이상시대는 모두 모계사회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모계씨족사회가 부계씨족 사회로 넘어가게 된 계기는 하나라를 세운 <우>부터라고 합니다. 우는 제순으로부터 왕위를 선양받고 치수사업에 큰 공을 세웠지만, 다른 현명한 이에게 선양으로 왕위를 물려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우는 자신의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어 <하>왕조가 시작된 것입니다. 즉, 아들에게 왕위가 세습된 시기를 중국에서는 부계사회가 시작된 것으로 봅니다. 이것은 부계가족중심으로 사회가 재편되면서 사유제산이 발생하고 계급이 분화한 당시 사회를 보여주는 예입니다. 하 왕조는 원래 전설상의 왕조라고 생각되었지만, 최근 이리두 유적이 발견되면서 실존 왕조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이리두 유적은 하왕조의 위치, 시가와 일치하는 유적입니다. 일반적으로는 앙소문화 - 용산문화 - 이리두문화가 서로 연결된다고 말합니다 요즘 중국에서는 신석기 유적지 가운데 은문화와 동일하지 않는 유적을 하나라의 문화로 여기고 있습니다. 4. 하, 은의 시대에 이미 거대한 도시국가였다는 중국주장 크릴이라는 학자는 외적으로부터 보호받고, 선진문명권에 참여함으로서 이익을 얻기 위해 중국의 주변 민족들은 중국 왕조의 책봉체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즉, 주변국들은 중국 왕조의 책봉에 참여하여 선진문물을 수용하였고, 중국 황제가 보증한 권위를 배경으로 각 국가에서 권력을 유지한다는 것이지요. 중국의 이러한 전통적 사상을 조공 - 책봉에 입각한 봉건질서라고 합니다. 실제 중국에서는 고대부터 왕권에 의한 거대한 읍의 건설, 잉여노동에 의한 지배층의 재화축척 등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왕권에 의한 대외무역의 통제와 독점이 있었고, 무역에 중요한 원료를 얻기 위해 동서남북으로 전쟁을 많이 했다고 하네요. 원료를 얻은 후에는 생산성의 재고를 위해 노동을 조직, 배분하고 정치적 통합을 견고히 할 필요가 있었는데, 이러한 필요성에 의해 성립한 것이 바로 봉건제도라고 합니다. 봉건제도는 나중에 자세히 설명할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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